'DLF 1심' 후폭풍…시민단체 “금융사 면죄부 안될 말, 즉각 항소해야”

2021-09-13 08:00

[사진=연합뉴스]
 

금융감독원이 DLF(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에게 중징계(문책경고)를 내렸다 촉발된 ‘DLF 제재’ 소송 후폭풍이 계속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여전히 항소 여부를 고심 중인 가운데 시민단체들은 이번 판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금감원의 즉각적인 항소를 요구하고 있다.

◆ 금감원, 항소 여부 고심 중...경실련 등 시민단체 “즉각 항소” 촉구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이 항소 기한(17일)을 나흘가량 남겨둔 현재까지 항소 여부에 대해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경실련, 참여연대를 비롯한 6개 시민단체가 최근 공동성명을 내고 DLF 소송 결과에 대한 금감원의 항소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금감원이 이번 판결을 금융회사와 그 임직원에 대한 솜방망이 제재의 빌미로 삼으려는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즉시 항소해 금융소비자 보호와 준법경영 관행의 정착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개 단체는 행정법원의 1심 판결 결과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재판부가 금융회사 및 대표이사 등에 대해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이 규정한 내부통제를 ‘마련’할 의무는 있으나 ‘준수’할 의무는 없다는 궤변을 앞세워 영업성과 확대에만 주력하다 금융소비자 보호 의무를 저버린 금융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해당 단체는 “이번 판결은 지배구조 관련 규정의 취지를 부당하게 축소해 금융회사의 준법감시 의무를 부당하게 축소해석해 준법감시제도 자체를 실질적으로 형해화하고 내부통제기준을 앞서 도입한 나라들이 실효적 작동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을 무시한 처사”라며 “이를 통해 금융사고를 일으킨 당사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법원의 판결 결과를 토대로 금감원이 다시 한번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재판부가 내부통제 미비에 대해 CEO의 책임을 인정했고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 따라 금감원에 은행 CEO에 대한 중징계 재량권이 있다고 판시한 만큼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부여한 입법 취지와 법률 준수 기대와 관련해 법원의 판단을 구해볼 여지가 있다는 시각이다.

단체는 이어 “이번 판결이 이대로 확정될 경우 금융회사들은 앞으로 내부통제기준만 장황하게 마련해 놓은 채, 운영 시 이를 준수하지 않아도 감독당국이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금감원이 항소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들의 이같은 움직임에 이어 지난 10일에는 금융정의연대가 금감원에 항소 촉구 진정서와 법률의견서를 별도로 제출하기도 했다. 해당 법률의견서 상에는 ▲법원이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위반행위의 범위를 협소하게 보아 판단기준을 제시한 점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판단기준을 위반사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예측가능성 등 실무상 문제점을 간과한 점 등이 항소의 명분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금융정의연대 측은 “사모펀드 사태 등 금융소비자 피해가 날로 커가는 상황에서 법원의 부실한 판결은 비판받아 마땅하다”면서 “금감원 역시 문제가 많은 이번 판결에 항소해 상급법원의 판단을 받는 것은 고민할 여지가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 시민단체, ‘금융권 내부통제제도 발전방안’도 비판...“반성의 기미 없어”

한편 금융시민단체들은 이번 DLF 1심 판결을 명분으로 6개 금융협회가 금융당국과 국회 등에 건의하고 나선 ‘금융산업 내부통제제도 발전방안’에 대해서도 “금융회사들이 사실상의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며 조목조목 비판하며 강하게 질타하고 나섰다.

금융정의연대와 참여연대 등 4개 단체는 최근 논평을 통해 “사모펀드 사기·불완전 판매가 무리한 수익추구에서 비롯한 것임이 자명하다는 점에서 이를 방지할 책임이 있던 금융기관들이 이제 와서야 자체적인 내부통제 방안을 마련한다고 하니 만시지탄”이라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특히 금융권이 제안한 내부통제 개선안을 두고 금융기관들이 사모펀드 피해 사태를 반성하고 스스로 규율을 강화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시민단체들은 “금융기관들이 자율적으로 내부규제를 강화하겠다면서도 내부통제 관련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지배구조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며 “이는 그간의 과오에도 책임 부담을 최대한 회피하겠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단체는 금융권이 주요 개선안으로 제시한 ’내부통제 강화 관련 이사회 역할 강화’와 관련해 “사모펀드 사기사건 당시에도 금융회사 이사회는 리스크 관리 관련 사항을 정기적으로 보고받았고 위험사항을 충분히 살펴 견제할 수 있었음에도 역할 수행을 하지 않았다”며 “지난 수년간 금융회사 이사회가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현 시스템 상에서 이사회에 권한을 부여한들 실질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또한 금융협회들이 금융사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관리 의무에 ‘실효성’ 등의 삭제를 요구한 행태에 대해서도 “법률 입법 취지를 몰각하는 것”이라며 “사실상 금융회사 자신들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내포됐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특히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 상 내부통제관리 의무 내용 및 제재사유 명확화 요구에 대해서는 내부통제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른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시민단체들은 "내부통제관리의무 위반으로 ‘다수피해’, ‘시장질서 저해’ 등이 발생한 경우에만 제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건의하겠다는 금융권의 입장에는 문제가 있다"며 "금융기관의 내부통제 규정은 금융사고가 발생할 리스크를 줄이고 사전에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사후 제재 여부 결정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주요은행 성과평가지표(KPI) 개선안에 대해서도 고객보호에 대한 배점을 더욱 강화하는 방식으로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단체들은 "금융협회들이 KPI 배점에서 고객에 관한 사항을 높이는 것은 일견 긍정적이나, 고객만족도가 고객수익률을 중심으로만 이루어질 경우 또다시 각 영업점의 고위험상품 판매 동기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제도 추가 개선의 필요성을 밝혔다. 

한편 이들 단체는 “금융협회의 내부통제 발전방안은 사실상 금융당국의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본인들의 책임을 최대한 회피하려는 내용이 주요 골자”라고 평가했다. 이어 “판매실적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금융기관에게 소비자보호 책임의 전권을 맡겨선 안 된다”며 “금융당국과 국회는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우를 범하지 말고 더 적극적인 금융감독을 위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