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후계자들]②'아들만? 딸도 있다!'…경영 진두지휘 오너家 여성파워

2021-08-30 14:46
장자 세습 일반적 제약업계에서 일부 오너 일가 여성들 종횡무진 활약
섬세한 시각, 특유의 포용력 및 소통능력 바탕으로한 부드러운 카리스마 무기

[데일리동방]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기업문화로 유리천장이 유난히 견고한 국내 제약업계에선 오너家 일원이더라도 딸들은 아들과 달리 경영권을 물려받기 어려웠다. 장자 세습이 일반화된 국내 제약바이오업계는 창업주에 이어 2∙3세 아들 손자가 경영 전면에 등장해 딸들은 나설 자리가 거의 없는 것이다.   

지난 8월 3일 데일리동방이 주요 제약사 12곳의 사업보고서를 통해 여성임원 및 여성직원의 비율을 확인한 결과, 여성임원 비율은 전체 임원의 10%에 불과했다. 전체 직원 중 여성직원 비율도 27%밖에 되지 않았다.

 

[왼쪽부터 임주현 사장, 최지현 전무, 윤현경 상무]

 
그런 가운데서도 경영일선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오너 일가의 딸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보령제약의 김은선 보령홀딩스 회장, 한미약품 임주현 사장, 하나제약 조예림 이사, 삼진제약 최지현 전무, 동화약품 윤현경 상무 등이 그 주인공이다.

김승호 보령제약그룹 회장은 슬하에 아들 없이 딸만 넷이었다. 장녀인 김은선 보령홀딩스 회장은 1986년 보령제약에 입사해 경력을 쌓은 뒤 2000년 사장으로 승진했고, 2001년 보령제약 부회장을 역임하는 등 경영 일선에 나섰다. 2009년 경영권을 승계한 김은선 회장은 지난 2018년 12월까지 대표이사를 지내며 보령제약을 제약업계 10위권으로 올려놓았다.
 

보령제약 장녀 김은선 보령홀딩스 회장과 막내 김은정 메디앙스 대표[사진=보령제약 제공]

창업주 고 임성기 회장의 장녀인 임주현 사장은 지난해 12월 임원인사를 통해 사장으로 승진했다. 1974년생으로 미국 스미스칼리지 음악과를 졸업한 후 2007년 한미약품 인재개발팀(HRD) 팀장으로 입사했다. 주로 한미약품이 개발하는 신약에 대한 글로벌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한미약품의 지속 가능성 및 경쟁력 향상을 위해 글로벌 수준의 정보보호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하는데 일조했으며, 한미약품이 지난 2019년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제정하는 정보보호 경영시스템 국제표준인 'ISO27001' 인증을 받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마취제와 마약성진통제를 주력으로 하는 하나제약의 조예림 이사는 1979년생으로 하나제약 창업주 조경일 명예회장의 차녀다.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하나제약 마케팅부에 입사했으며 이후 개발부서, 글로벌사업팀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제품 수출 등에 관여해왔다.

회사 내부에서는 지난 2013년 독일 바이오벤처 파이온으로부터 전신마취제 신약인 레미마졸람을 기술 도입하는데 조 이사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보고 있다.
 

[사진=하나제약]

하나제약은 이후 레미마졸람의 국내 임상을 완료하고 2019년 12월 식약처에 품목허가를 신청했으며 올해 초 품목 허가를 획득했다. 마취제 신약이 허가를 받은 것은 프로포폴 이후 30여년 만이다.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하며 실적 고성장을 이끌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1974년생 삼진제약 최지현 전무는 공동 창업주 최승주 회장의 장녀로 지난 2009년 입사해 2015년 이사, 2017년 상무를 거쳐 2019년 전무로 승진했다.

최 전무는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과 홍대건축도시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삼진제약 입사 이후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의 차녀인 최지선 상무도 광고기획사 인큐버스 대표와 우성식품 홍보·마케팅팀 부장으로 근무한 이후, 7월부터 삼진제약에 합류해 홍보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1897년 설립된 동화약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업력을 지닌 제약회사다. 역사가 길다 보니 4세 경영 참여도 빠르다. 3세 윤도준 회장의 장녀 윤현경 상무는 1980년생으로 경희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2008년 입사해 광고홍보실장, 커뮤니케이션팀장을 거쳐 더마톨로지사업부를 맡으며 10년 넘게 경영수업을 쌓고 있다.

윤 상무는 2017년 출시한 화장품 브랜드 ‘활명’ 사업을 직접 지휘하고 있다. 2019년 삼청동에 문을 연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 중이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동화약품의 심볼인 부채살을 형상화한 계단과 122년 전 활명수를 만드는 데 사용된 우물을 모티브로 설계됐다.

또 이 같은 설계 콘셉트와 디자인을 인정받아 지난해 홍콩 ‘디자인포아시아 어워드 2020’에서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사진=언스플래시닷컴]

사원급, 팀장급으로 물밑에서 경영 수업을 받고 있는 여성들을 감안하면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이 제약업계 경영진으로 등극할 가능성이 있다는 시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여성리더들은 섬세한 시각과 특유의 포용력 및 소통능력을 기반으로 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통해 화장품 사업이나 홍보, 마케팅 분야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슬하에 딸만 있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도 있고, 뒤늦게 입사한 차남이 장녀를 추월하는 경우도 많아 아직까진 여풍을 운운할 정도는 아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많은 제약사들이 복지 시스템과 사내 문화를 정비하면서 여성 리더를 배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있어 오너와 특수관계인이 아니면서도 최고 경영자에 오르는 여성들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