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선의 중국보고] 이틀만에 사라진 20여년 경력...中 '황제의딸' 지우기

2021-08-30 13:45
'황제의 딸' 드라마로 유명한 국민여배우 자오웨이
20여년 쌓아온 연기경력…이틀 만에 인터넷서 '삭제'
마윈·알리바바 투자 의혹 등…구체적 이유 불분명

드라마 '황제의 딸' 여주인공 자오웨이.


자오웨이(趙薇)란 중국 여배우를 처음 알게 된 건 중학생 때다. 당시 인천방송(현 경인방송)에서 방영됐던 '황제의 딸(원제: 還珠格格)'이란 중국 드라마를 통해서다. 중국 본토에서 최고 시청률(62.8%)을 기록하며 중국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경신했던 드라마다. 그해 인천방송을 먹여살렸던 시청률 '톱3' 중의 하나가 황제의 딸이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나 인기가 높았는지 실감할 만하다. 자오웨이는 황제의 딸에서 천방지축, 말괄량이 ‘제비’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판 김희선’이라 불리며 남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이후 저우싱츠 감독의 2002년작 영화 '소림축구'에서 그는 또 한번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얼굴이 온통 곪은 상처투성이였던 만두가게 아가씨 아매 역을 열연했는데, 마지막에 대머리 골키퍼로 등장하는 신까지 시종일관 못생긴 모습으로만 나와서 웃펐던 기억이 난다. 

자오웨이는 2000년대 미모와 연기력을 겸비하며 중국 연예계를 주름잡은 여배우였다. 중국 언론이 뽑은 4대 여배우로, 장쯔이·저우쉰·쉬징레이와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당시 중국 밖 영화에 출연한 적도 없는 그를 2006년 미국 피플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100인'에 선정했다. '화피', '적벽대전', '뮬란' 등 대작 영화에서 실감나는 연기를 펼쳤다. 

배우는 물론 가수, 영화감독까지 섭렵한 그는 중국 연예계의 팔색조라 불렸다. 재테크 방면에도 수완이 좋아 중국에서 ‘여자 워런 버핏’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 등 재계 큰손 인맥과 싱가포르 부호로 알려진 남편 황유룽 등의 도움으로 엔터·문화기업 등에 투자해 큰돈을 벌었다.

특히 마윈이 자오웨이의 딸을 '수양딸'로 삼았다고 하니 마윈과의 두터운 친분을 알 만하다.  실제 자오는 알리바바에 투자해 떼돈도 벌었다. 알리바바 산하 영화사인 알리픽처스의 2대주주였던 그가 알리픽처스 상장 후 곧바로 주식을 처분해 약 8억 홍콩달러에 가까운 차익을 실현한 것.

전성기 때만 해도 산하에 가지고 있는 기업만 14곳, 영화·엔터·투자·과학기술 등 각종 분야의 기업 대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7만㎡ 면적의 포도주 농장도 사들인 자오웨이는 연간 10만병 생산량 규모의 와인 사업도 벌였다. 2018년 그는 중국 부자연구소 후룬 글로벌 '자수성가' 여성 부호 '톱100' 순위에 63억 위안의 자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동시에 대만 독립세력 지지, 여론 조작 통제, 일장기 패션 등 각종 의혹과 논란도 있었다. 결정적으로 실망스러웠던 건 2018년 주가 조작 스캔들이다. 자오는 당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자기 돈은 단돈 6000만 위안만 들이고 은행에서 30억 위안을 빌려 50배에 달하는 고(高)레버리지로 시가총액 120억 위안짜리 상장사를 매입하려다 당국에 적발됐다. 특히 자오가 투자한다는 허위 공시만 믿고 회사에 투자한 개미투자자들은 거액의 손실을 입었다. 금융시장 질서를 어지럽힌 위법 행위로 그에겐 수억원대 벌금과 5년간 중국 주식시장 투자 금지란 처분이 내려졌다. 

최근 중국 인터넷에서 당국의 지시로 자오웨이 '지우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26일부터 단 이틀 만에 자오가 지난 20여년 쌓아왔던 연예계 경력이 모조리 사라졌다. 출연한 드라마·영화 등 출연진 목록은 물론, 그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감독명에서도 이름이 빠졌다. 시청도 불가능하다. 절친 연예인이었던 황샤오밍 등은 SNS에 올렸던 자오와의 '추억'을 모두 지웠다. 

당국은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선 침묵 중이지만, 세간에선 마윈과의 친분으로 벌인 각종 투자가 발목을 잡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근 항저우 당서기가 긴급 체포된 것도 알리바바와의 정경유착 비리가 문제가 됐다는 설이 있기 때문이다. 자오웨이가 중국 연예계 정풍운동의 주요 타깃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3년 전 탈세 혐의로 넉 달간 실종됐다가 나타난 판빙빙 스캔들이 문득 떠오른다. 그 역시 '황제의 딸' 여주인공이었다. 20여년 전 '황제의 딸' 열혈 시청자로서 드라마 속 여배우들의 잇단 '수난'이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