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국기 대신 오륜기... “우리는 난민팀입니다”

2021-07-26 15:20
IOC·유엔난민기구 후원으로 만든 난민팀, "전 세계 8250만 난민 대표"
리우 올림픽보다 3배 커진 팀 규모... 총 29명 선수가 12개 종목 출전
각자 사연으로 고난 끝에 출전한 선수들, 고국 꺾는 진풍경도 나와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자신의 나라 국기 대신 오륜기를 들고 입장한 팀이 있다. 사용하는 언어와 출신 국가가  다른 선수로 구성된 이 팀은 바로 ‘난민팀’이다.
 
두 번째 올림픽 출전하는 '난민팀'... 국기 대신 오륜기 들어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에서 난민팀이 입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6일 스포츠계에 따르면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근대 올림픽이 처음으로 열린 그리스 다음, 두 번째로 입장한 팀은 오륜기를 든 ‘난민팀(EOR)'이다.

난민팀은 말 그대로 ‘난민’인 선수로 구성된 팀이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외국이나 다른 지방으로 탈출한 사람들이다. 난민팀 약자인 EOR는 난민 올림픽팀을 의미하는 프랑스어(Équipe nationale Olympique des Réfugiés)의 머리글자를 딴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유엔난민기구는 모든 난민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올림픽 난민팀을 준비했다. IOC는 난민 선수를 위한 올림픽 장학금 프로그램을 통해 56명의 선수 중 수영, 태권도, 가라데, 유도 등 12개 종목에 29명을 최종 선발해 도쿄올림픽에 출전시켰다.

이번 난민팀은 아프가니스탄, 카메룬, 콩고 민주 공화국, 에리트레아, 이란, 이라크, 콩고 공화국, 남수단, 수단, 시리아, 베네수엘라 등 12개국 출신 난민 29명으로 이뤄졌다. 이 중 현재 내전을 겪고 있는 시리아 출신이 9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이란 5명, 남수단 4명, 아프가니스탄 3명 등이다.

제임스 매클리오드 IOC 올림픽연대국장은 “올림픽 난민팀은 전 세계 8250만명의 강제 실향민과 난민을 대표한다. 이 문제가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선수가 출전을 기대하고 다른 엘리트 수준의 선수들처럼 올림픽에 집중했다”면서도 “선수들이 메달 압박을 받지 않고 참가 자체를 즐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유엔난민기구는 “박해와 분쟁 상황들을 이겨내고 수년간의 훈련 끝에 세계 무대에서 경쟁을 펼칠 수 있게 된 여러 선수가 난민팀으로 선발됐다”고 밝혔다.

난민팀은 지난 11~12일 카타르 도하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최종 점검에 나섰다. 당시 난민팀 단장이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우려가 나오기도 했지만, 선수단은 도쿄로 무사히 입성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개막식 연설에서 “폭력, 굶주림, 혹은 다르다는 이유로 난민은 집을 떠나야 했다. 우리는 두 팔을 벌리고 선수들을 환영하고 평화로운 가정을 제공할 것이다. 올림픽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난민팀의 올림픽 출전은 지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리우) 올림픽에 이어 두 번째다. 리우올림픽에는 10명(남수단 5명, 시리아 2명, 콩고민주공화국 2명, 에티오피아 1명)의 선수가 육상, 수영, 유도에 출전한 바 있다. 도쿄올림픽 난민팀 규모가 직전 대회보다 3배 가까이 커진 셈이다.
 
고난 끝에 출전한 난민팀 선수들... 고국 꺾는 진풍경 보이기도

이란 선수와 대결하는 이란 출신 올림픽 난민팀 선수 키미아 알리자데(왼쪽).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난민팀 선수들은 각자 고국을 떠난 사연이 있다. 이들은 갖은 고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다.

난민팀에서 가장 주목받은 선수는 태권도에 출전한 키미아 알리자데 선수다. 이란 출신인 알리자데는 리우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이란 최초의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였다. 하지만 알리자데는 여성 억압을 이유로 2020년 고향을 떠나 독일에서 훈련하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당시 알리자데는 본인 SNS를 통해 “나는 이란에서 억압받는 수백만명의 여성 중 한 명”이라며 난민 신청 이유를 설명했다.

알리자데는 도쿄올림픽 태권도 여자 57㎏ 경기에 출전해 이변을 일으키며 또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알리자데는 고국 대표이자 동갑내기 선수인 나히드 키야니찬데를 32강에서 만나 18-9로 제압했다. 16강에서는 세계 랭킹 1위인 영국 선수 제이드 존스를 12-16으로 꺾으며 메달권을 노렸지만 4강전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연패해 아쉽게 메달을 놓쳤다.

18살에 베네수엘라 국가대표 복상 선수로 발탁된 엘드릭 셀라 로드리게스는 2014년 베네수엘라 경제가 붕괴되자 링을 떠났다. 로드리게스는 혼란을 겪는 베네수엘라를 떠나 트리니다드 토바고로 망명해 다시 글러브를 꼈다. 엘드릭은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다시 살아난 것만 같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 사이클 선수 마소마 알리 자다는 젊은 여성들과 함께 사이클링 단체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국가대표로 발탁됐음에도 지속적으로 신변 위협을 당했다. 결국 자다는 2017년 프랑스로 망명해 공부와 사이클 훈련을 병행하며 올림픽을 준비해왔다. 자다는 한 프랑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참가를 통해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거나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무슬림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다"고 밝혔다.

육상 선수 안젤리나 나다이 로할리트, 유도 선수 포폴 미셍가 등 5명은 리우에 이어 도쿄올림픽에도 난민팀으로 출전한다. 시리아 출신 수영선수이자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유스라 마르디니도 2회 연속 난민팀으로 출전한 선수다. 마르디니는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이 작은 팀은 난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청년에게도 큰 희망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올림픽에서 자국 국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팀은 또 있다. 러시아 선수들은 국가명 'RUSSIA' 대신 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의미하는 'ROC'를 사용한다. 메달권에 들어도 자국 국기를 내걸지 못하고 금메달을 따도 자국 국가 대신 러시아 음악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이 나온다.

이는 러시아는 2020년 12월 스포츠중재재판소로부터 도핑 샘플(표본) 조작 혐의를 인정받고 2년간 주요 국제스포츠대회 참가를 제한하는 징계를 확정받았기 때문이다. 이번 징계에 따라 러시아는 도쿄올림픽을 시작으로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카타르 월드컵축구대회 등에 국가 자격으로 나서지 못한다.

앞서 러시아는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도핑 테스트 결과를 조작해 IOC로부터 징계를 받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를 의미하는 OAR를 팀명으로 사용한 바 있다.

대만은 올림픽에서 국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나라다. 이는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중국이 국제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결국, 1981년 대만은 IOC와 ‘차이니스 타이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에 합의했으며 1984년 첫 출전부터 이 명칭을 사용했다. 또한 대만 선수는 국기 대신 오륜기가 담긴 차이니스 타이베이 올림픽위원회기를 사용한다.
 

[사진=아주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