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기후변화 팔걷고 나선 세계 중앙은행들
2021-07-19 20:26
최근 정부와 통화당국(한국은행)의 행보가 불안하다. 세계를 보고 듣는 눈과 귀가 어두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7월 9일~10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했던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로부터 세계가 돌아가는 어떤 보고도 없었다. 참석한다는 짧은 내용의 보도자료뿐이었다.
이에 앞서 7월 2일 두 사람의 회동이 있었지만 의례적인 G20 회의 대응 방안과 거시경제 대응 방향에 대한 의견교환이라는 보도자료 이외는 별 내용이 없었다. 7월 15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의도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현 수준(0.5%)에서 유지하기로 했다는 발표뿐이었다.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두 컨트롤 타워에서 ‘세계’를 보는 눈이 실종된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캐롤러 바인더 박사는 세계 주요 118개 중앙은행을 2010~2018년 동향을 분석한 결과 연평균 10%의 중앙은행이 무엇인가로 부터의 정치개입을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FRB뿐 아니라 다른 국가들의 중앙은행도 앞으로는 금융완화에 그치지 않고 격차와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개입이 늘어날 것은 분명하다. 그린(green)화 대응에 앞서가는 영국 잉글랜드은행과 유럽 중앙은행(ECB), 이를 뒤따르는 일본은행도 그렇고,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최근 포스트 코로나를 겨냥한 여러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그 방향은 두 갈래로 좁혀진다. 하나는 백신 접종 진전에 따른 경제의 빠른 회복에 따른 대응이다. 인플레 우려를 안고 있는 FRB가 양적완화의 축소(테이퍼링)를 향해 시장과의 대화를 시작했고, 개도국들도 금리인상을 포함한 완화축소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재빨리 움직이고 있는 일본은행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행은 지난 16일 탈(脫)탄소 대응 투자와 융자를 촉진하는 신(新)제도의 골격과 보유 외화자산에 대한 그린 국채(green bond)의 구입 방침을 발표했다. 일본은행이 이날 금융정책 회의에서 결정한 신제도의 핵심은 금리 제로(0%)로 장기 자금을 공급하는 구조다. 이 제도의 이용을 촉진하기 위해 금융기관의 일본은행 당좌예금과 관련된 금리가 0%가 되는 부분을 늘려 마이너스 금리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우대조치도 마련했다. 연내에 시작해 2030년도까지 실시한다고 한다. 구로다 하루히코(黒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제도가 지렛대가 되어 기업의 탈탄소화 대응이 확산되는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은행 등의 적극적인 대응도 기대하면서 “기업들도 온실가스 삭감을 위해 장기적으로 대규모 투자와 인재확보 계획을 만들어 가속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은행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대응 방침도 제시했다.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위해서는 금융청과 제휴해 대형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공통 시나리오 분석’을 시험할 예정이다. 예를 들면 자동차 산업이 전기자동차(EV)로 전환되면서 가솔린차 수요가 급속히 침체해 관련 기업에 대한 융자의 불량 채권화가 진행되었을 경우,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은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는가를 검증한다는 것이다. 국제금융 분야의 경우 일본은행이 보유하는 외화 자산으로 외국의 그린 국채 등을 구입한다. 아시아 중앙은행과 협력해 역내의 환경채 투자도 추진한다.
유럽중앙은행(ECB)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일본보다 앞서서 정책 대응 영역을 환경 분야로 넓히고 있다. 환경 분야로 자금을 유도해 온난화에 의한 경제의 불안정화 리스크를 경감하려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정책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보 공시의 충실화 등 대처해야 할 과제는 많다. ECB는 지난 8일 금융정책의 틀을 검증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2024년까지의 행동 계획을 정리해 회사채 매입 대책을 수립하고, 담보 수락 시 기후 관련 정보 공시를 확충시키는 한편 리스크 분석을 진행시킨다고 밝혔다.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은 금융정책의 사명(使命)에 탈탄소 사회로의 이행을 추가했다. 기업의 온난화 가스 배출 삭감 계획 공표를 회사채 매입 조건으로 한다.
다른 국가 중앙은행들도 미국, 영국, 유럽연합(EU) 중앙은행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헝가리국립은행은 총액 2000억 헝가리포린트(약 7200억원)를 투자해 친환경 주택융자 채권을 매입한다. 싱가포르 중앙은행인 금융통화청은 이미 지난 1월에 환경사업 융자를 촉진하는 지원 제도를 시작했다. 중앙은행은 화폐 흐름을 좌우하는 금융정책에 중립성이 특히 중요하다는 관점에서 환경처럼 특정 분야에 관여하는 것은 피해왔다. 다시 말해 자원 배분에 관한 정책은 재정의 몫이라는 생각이 주류였다.
주요국 정부들이 ‘녹색성장’을 내걸고 온실가스 배출 삭감 목표를 잇달아 내세우면서 기후변화 리스크는 중대한 국제적인 과제로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유럽을 중심으로 중앙은행도 정책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분야 투융자를 통해서 국가의 잠재 성장력이 올라가면 중앙은행이 목표로 하는 경기·물가의 안정으로 연결된다고 하는 계산도 담겼다. 중앙은행 자신이 보유한 자산 가치가 기후변화 영향으로 훼손될 리스크가 커지고 있어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압박감도 있다. 예컨대 중앙은행이 금융정책의 일환으로서 국채와 회사채를 대량으로 매입하고 있는데 만일 화석연료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기업의 회사채가 시장에서 가격이 급락하면 중앙은행 자체의 재무 상황에 나쁜 영향이 미칠 수도 있다. 이러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보유 자산의 그린화를 진행하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일본경제신문 금융분석팀은 향후 과제로서 투명성과 타당성의 확보를 지적하고 있다. 일본은행의 신제도에서는 지원 대상으로 하는 투융자의 내용이 그린인지 어떤지 판단을 각 금융기관에 맡기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국제적인 공개 규약인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 태스크포스(TCFD)의 제안에 따른 정보 공개를 금융기관에 요구할 태세다. 다만 기업과의 개별계약인 투융자의 내용을 어디까지 공시해 그린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될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어떤 금융자산과 투융자를 그린으로 봐야 할 것인지 국제적인 합의가 아직은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중앙은행 자신이 일정한 판단 기준을 마련하지 않으면 겉치레의 대책에 머물러 기후변화 정책의 유효성에 의문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니온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는 금융정책에서 그린인지 아닌지를 일본은행이 결정해 투융자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적절하지 않다고 한발짝 물러서고 있다. 일본은행은 현재 금융정책과는 별도 기준의 자산운용으로 해외의 환경채를 매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아무튼 국제적으로 탈탄소 움직임이 높아지면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그린이라는 새로운 정책 영역에 일제히 돌입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물가와 금융 시스템의 안정을 목표로 하는 사명과 탈탄소를 지원하는 것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라는 신중론도 나온다. 게다가 세계를 석권하고 있는 급진적인 탈탄소(탄소제로) 목표에 대해 향후 보다 과학적으로, 보다 현실적으로 검토해 갈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중앙은행 관여에 비관적인 의견을 내는 전문가도 있다.
선진국 중앙은행은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부여받고 있다. 금융정책은 재정정책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 코로나19 팬데믹, 기후변화 위기의 뉴노멀 시대에 중앙은행의 역할은 확대일로다. 중앙은행의 거대화는 시대적 추세다. 그러나 그럴수록 독립성에 대한 도전이 심해지는 패러독스가 있다. 중앙은행이 정부의 하부기관이 아니라는 주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과 경제 정책을 집행하는 기획재정부는 눈과 귀를 세계로 활짝 열고, 새로운 세계의 트렌드에 대처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특히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으로서 뉴노멀 시대를 맞아 새로운 역할과 독립성을 고민하면서, 새로운 침로(針路)를 설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