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대선폭풍 앞둔, 마지막 제이노믹스의 운명
2021-06-30 06:00
상반기가 끝나면서 정치는 대선정국의 깊은 심연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경제는 지난 28일 발표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으로 머리띠를 두른 채 정치에 끌려갈 것이다. 관료들은 긴장감과 약동감을 잃고 제3 지대로 물러나 여름을 지낼 참이다. 강단 있는 경제정책이 아니라 경제정책 방향이라는 두리뭉실한 자세에서 정책의 전망을 읽을 수 있다. 임기 말의 정권은 민심을 집약하거나 결집시킬 힘이 없다. 대통령과 총리, 부총리 그리고 관계 장관이 돌아가며 현장을 둘러보지만 뒷소리는 냉랭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올 하반기를 이끌어 갈 경제정책 방향을 어느 때보다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빠르고 강한 경제정책 회복'과 '선도형 경제로의 구조 대전환'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밝혔다. 그 과정에서 고용(일자리 확대)과 포용 회복(격차축소)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도 실었다.
이러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의 핵심은 30조원 대의 2차 추경을 편성해 세 갈래로 현금을 뿌리는 것이다. 첫 번째는 ‘소득 하위 80%’에 대해 1인당 25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소상공인·자영업자와 같은 코로나19 피해계층에 최대 300만원까지 지원하는 방안이다. 세 번째는 신용카드 사용액의 일정 부분을 돌려주는 ‘캐시백’에 1조원을 투입하는 것이다. 국민지원금, 피해지원금, 상생소비지원금 등 이들 3종 패키지로 내수 소비를 활성화시켜 올해 4.2%의 성장률을 달성한다고 한다. 초과세수로 재정여력이 생겨났고, 수출회복이 이뤄지고 있다는 계산에서다. 신규 취업자 25만명 증가, 수출 6000억 달러 돌파도 제시했다.
이제부터는 재정에 의지하는 양(量)의 정책을 산업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를 유도하는 질(質)의 정책으로 연결하는 강력한 정책실행력이 요구된다. 일자리 확대와 격차축소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양에 머무르는 정책은 미래가 없고, 양이 없는 질은 공염불이다.
이런 점에서 어설프게 섞여있는 양과 질을 가지고 있는 우리 경제는 기로에 서 있다 할 수 있다. 선도국가로 가느냐, 나락으로 떨어지느냐가 ‘K-경제’의 현 위치다.
경제전문가들이 이번 경제정책 방향에서 가장 주목하는 내용은 '선도형 경제로의 구조 대전환’이다. 이것이 정책의 질을 총체적으로 담보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앞서 K-배터리 경쟁력 강화방안을 7월에 발표한다. 차세대 배터리 기술개발, 배터리 소재·부품 지원 대책이 담긴다. 제2 벤처 붐을 견인하기 위해 스톡옵션, 세제지원 확대 등을 담은 벤처생태계 보완방안을 9월 중에 마련한다. 또 벤처기업법을 고쳐 스톡옵션 부여 대상 범위와 세제지원을 확대한다. 이밖에 백신 접종을 통한 경제 정상화 방안도 밝혔다. 추경예산을 활용해 올해 백신 1억9200만회 분을 도입한다. 산업 및 분야별 로드맵이다. 이들 내용은 제4차 산업혁명 관련 산업을 총망라하며 세계 경제를 선도할 신성장동력 산업을 키우겠다는 기대를 담고 있다. 시스템· 인공지능·차량용 반도체는 물론, 전기차·바이오신약·클라우드·블록체인·지능형 로봇·메타버스·5G 융합 서비스·클린에너지 산업 등이 모두 육성 대상이다.
경제계는 이 특별법을 꽤 반기는 분위기다. 특별법 논의를 통해 경제계와 정부가 소통을 확대해 기업에 절실한 지원 방안을 촘촘하게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우리 경제가 지금의 회복세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산업규제 혁신, 세제 개편 및 지원 확대, 임금·근로시간 유연화 등 근본적으로 기업의 기(氣)를 살리는 경제, 산업, 고용노동 정책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논평했다. 대한상의도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이 실제 정책으로 이행돼 국내 산업과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길 바란다”며 “신산업부문 벤처·창업 활성화, 미래산업분야 인재 양성 등에 정부와 경제계 간 팀플레이가 더욱 활발히 일어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논평에도 불구하고, 경제계는 현 정부의 반시장·반기업적 사고를 크게 경계하고 있다. 이런 사고부터 전환하지 않으면 선도형 경제는커녕 후진형 경제로 낙오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실제로 시장 자율을 억압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왔다. 예컨대 최저임금 급등으로 자동결제 키오스크를 도입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획일적인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속수무책인 중소기업이 부지기수다.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중대재해 처벌법 등 입법 규제가 강화되고, 친노조로 기운 ‘노조 3법’ 시행도 코앞이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은 “대·중소기업을 가릴 것이 아니라 국가 경제와 안보·전략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산업과 기술에 대해 파격적으로 지원하겠다”며 경제계의 우려를 차단했다.
현 정부는 정권 말기에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엊그제 30대 기업 CHO(최고인사·노무책임자)들과 만나 대기업의 공개채용을 더 늘려달라고 주문한 것은 그 상징적인 사례이다.
주요 언론들은 대다수 재정 일자리 사업이 단순 ‘알바’만 양산하는 현실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할 곳은 결국 기업밖에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에서 신입 공채는 이미 옛일이 됐다. 인크루트에 따르면 2년 전만 해도 49.6%에 달하던 기업 공채 비율이 올 상반기 30.1%로 급감했고, 수시채용은 반대로 49.9%로 급상승했다. 4대 그룹 중 정기 공채를 실시하는 곳은 삼성이 유일하다. 글로벌 경쟁에서 대규모 인력을 일괄 채용하는 것은 오히려 기업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디지털 전문인력과 우수 인재를 수시 채용하는 쪽으로 채용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정부가 기업활동에 간섭할수록 기업 비용과 고충을 키우고, 경직된 제도가 신규 채용을 기피하게 만든다. 정부의 투자 인센티브 발표에도 경제계가 친노동 정책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기업 투자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비판하는 이유도 명백하다.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정책(제이노믹스)은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서 시작하여 한국형 뉴딜정책으로 마무리된다. 나라를 뒤흔든 부동산 사태는 정치·경제·사회의 옴니버스 형태로 새로운 국가정책 영역으로 승격했다. 2017년 5월 24일 대통령의 집무실에 설치했던 일자리 현황판은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으로 선도형 경제, 미래전략산업, 국가핵심전략 특별법, 친기업적, 노동 유연성, 규제혁신·세제개편, 백신 2억회 등을 큰 교자상에 차려놨다. 이제 문재인 정부의 승부수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올곧게 밀고 나가는 길이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국민 체감 정책’이 되려면 가장 먼저 손이 가는 메인 메뉴가 있어야 한다. 그게 없으면 의미있는 식사 수순이나 설명이 있어야 한다. 바둑의 승부가 결국 반상(盤上) 장악력에 있듯이 지금은 정책을 장악해 준비한 메뉴로 국민을 설득하고 실행하는 국가 COO(최고 운영책임자)의 역할이 절실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정책이 정치에 휘둘리지 않게 대통령인 국가CEO가 COO에 보호막을 쳐주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