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산업계의 오뚝이 정진호 카텍에이치 대표 '운칠기삼' 비켜라

2021-07-15 08:00

운칠기삼(運七技三). 사람의 일은 재주나 노력보다 운에 달려 있음을 뜻하는 말로 정진호 카텍에이치 사장에게 딱 어울린다. 아쉽게도 노력이나 능력에 비해 운이 따르지 않아 실패한 경험이 많은 쪽이다.

정 사장의 사회생활 첫발은 교수였다. 1990년대 디자인을 배우고 싶어 영국 유학길에 올라 천신만고 끝에 런던의 유명 대학교 브루넬에서 2004년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평탄할 것 같던 그의 인생길은 이듬해 당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대학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험난한 굽잇길로 변했다.

외국인 신분이었던 그는 구조조정의 분위기 속에서 버티기 힘들어 결국 한국행을 택했다. 국내 여러 대학에서 그가 와주길 기대했으나, 평소 관심이 많았던 사업으로 인생의 방향을 틀었다. 2005년 전문 분야인 디자인컨설팅 관련 창업을 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원천 디자인 제조(ODM) 요청으로 투자를 받아 본격적으로 사세를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은 한순간에 또다시 물거품이 됐다. 북한 개성에 공장을 마련하는 개성 프로젝트를 시행한 게 패착이 됐다. 2016년 2월 당시 박근혜 정부가 잘 돌아가던 개성공단을 하루아침에 문 닫을지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정 사장은 포기하지 않았기에 전화위복이 됐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 경쟁력 있는 신발 신소재를 찾아 헤매다가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 주요 기업이 탐내던 탄소섬유 강화플라스틱(CFRP)의 재활용 기술을 2016년 말 확보했다. 운에 눌렸던 그의 탁월한 사업 선구안이 비로소 빛을 찾은 셈이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는 그간 노력으로 카텍에이치를 일으켜 세웠다. 다시 찾은 기회를 놓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사업초기에는 그의 반려자까지 힘을 보탤 정도로 모든 자원을 쏟아부었다.

친환경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시너지로 사업이 날로 성장하고 있지만, 그의 노력은 진행형이다. 정 사장은 현재 주력 사업장인 경기 화성공장의 직원숙소에서 숙식을 하며, 일주일에 반 이상을 지내고 있다.

실패의 경험은 정 사장을 외유내강으로 만들었다. 사업으로 만난 거래처 등의 대표들은 초면에 그를 보고 교직에 있을 사람 같다고 하지만, 몇 번 거래하면 평가가 확 달라진다고 한다. 우유부단해 여러 가능성을 두고 장고할 것이라 보지만, 맺고 끊음이 정확하고 결정이 빨라 놀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에는 얼굴에 나타나는 인자한 모습 그대로다. 그의 인재관은 ‘누구나 가능성이 있다’이다. 적재적소에 배치만 하면 본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이를 정확히 봐주고 맞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리더의 역할이라고 본다. 직원들이 실수하더라도 정 사장이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 사장의 궁극적 목표도 연장선상에 있다. 회사가 친환경 소재 기업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자리 잡는다면 훌훌 털고 즐겁게 은퇴하는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 물려줄 만한 기업을 만들자는 게 그의 철학이자 최종 목표다.
 

정진호 카텍에이치 대표. [사진=유대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