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연 칼럼] 그린스완 경제재난, 강건너 불구경인가

2021-07-13 17:16

조수연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

전 세계 인구 40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와 우리는 싸우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고 접종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곧 종착역에 들어설 거란 희망을 갖게 된다.

코로나19는 이제 ‘불확실’을 넘어 인류의 사고 지평선에서 계산 가능한 ‘위험’의 영역에 들어왔다. 위험 계산이 가능해야 주류 경제학자들은 비용 편익 분석을 통해 정책효과를 측정하고 정부나 정치 권력에 정책 패키지를 판매할 수 있다.

분산이 측정 가능한 통계확률함수의 세계에서만 비용 편익을 계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 세계에서는 주류 경제학자는 할 일이 없다. 2008년 금융위기에 이어 이번 코로나19의 발발과 같은 불확실성이 자주 발생하는 상황을 그들은 두려워한다.

코로나19에서 보듯 과거에는 의미가 없을 정도로 미세한 확률의 불확실한 사건이 자꾸 등장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 나심 탈레브는 이러한 상황을 ‘블랙스완’으로 정의했다. 즉, 예측 불가능하고 희귀하며, 확률통계 추론이 가능한 확률 분포 밖에 위치한, 발생 후에만 알 수 있는 불확실한 사건이 그것이다.

이러한 블랙스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위축되고, 제대로 활동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미래 투자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며, 기업은 현금 비중을 높인다. 금융위기 이후 지속한 세계 성장 정체의 원인으로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감 증가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간의 미래에 대한 태도에 증가한 불확실성과 트라우마는 치명적인 영향을 주고, 경제적인 결과도 악화한다.

한편 금융위기 약 10년 후 닥친 코로나19는 또 다른 블랙스완이다. 완전히 예측 불가능했고, 특히 코로나19 발생 후에도 인지가 지연됐으며, 인명까지 살상하는 불확실성은 인간의 트라우마를 더욱 악화하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코로나19는 불평등을 확대하는 K형 경제 회복을 진행 중이다. 또한 열등한 부와 경제적 지위의 서민들은 코로나19에 충격을 크게 받고 회복도 더 어렵다. 축복으로 알았던 세계화된 시대에 절대다수 서민의 불행은 ‘아랍의 봄’처럼 특정 국가를 넘어 세계적인 정치적 불안정의 시대를 불러올 수 있고, 그나마 힘겹던 경제 성장은 더욱 작은 올가미에 걸려들 수 있다. 필자는 코로나19를 수많은 인명을 빼앗아간 블러드 스완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러면 코로나19 이후의 불확실성은 향후 10여년 없을 것인가? 불행히도 인류에게는 새로운 불확실성이 예고되었다. 영국 중앙은행의 마크 카니 전 총재는 ‘시간표의 비극(a tragedy of the horizon)'이라 했고, 국제결제은행(BIS)은 '녹색백조(green swan)'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불확실성, 바로 기후변화다.

이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체결된 파리 기후협약으로, 2021년부터는 195개국(세계 탄소의 약 95%를 배출)이 참여하는 신기후체제가 시작되었다. 이는 산업혁명 이후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해서 지구 온난화의 비극을 막는다는 전 지구적인 공조 운동이다.

미국, 중국, EU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한국도 국가별 자발적 이행목표(NDC)를 제출하면서 지구의 탄소 중립 목표 달성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다.

그러나 최근 북미 지역에 1000년 만의 폭염이 보고되는 등 곳곳에 극단적 기후가 출현하고 있으며, 과학자들은 이미 기후변화는 시작되었고 곧 최악이 닥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현재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대기 중 탄소량은 400ppm 이상으로, 과거 산업혁명 이전 평균 280ppm을 한참 넘어섰다.

지구의 온도는 이미 산업혁명 이후 1℃ 상승했고, 각국이 파리협약을 차질없이 이행해도 2100년에 지구 온도는 2.6~3.2℃ 상승할 것으로 국제기구는 전망한다. 기후변화 국제기구인 IPCC는 이미 2013년에 기후변화는 가능성이 매우 높은(extremely likely) 것으로 평가했다. 이것은 확률로 95~100% 가능성이며, 기후변화는 회피할 수 없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한편 기후변화는 전 지구적이고 장기적인 불확실성이며 블랙스완의 특성을 가진다. 게다가 기후변화는 불가역적(irreversible)이라는 특징이 있는데, 이것은 탄소가 한 번 대기에 누적하면 제거에 수십년에서 수천년까지 소요될 수 있어서 조만간 지구가 돌이킬 수 없는 전환점(the tipping point)에 다가선다고 과학자들은 지적한다.

또한 기후 변화의 아킬레스건은 기후 변화가 100년, 1000년 단위의 시간표를 가지고 있고, 정책 또는 투자 의사결정자의 시간표는 길어야 5년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마크 카니가 지적하는 시간표의 비극이다. 행동경제학에서도 인간이 미래보다 현재를 선호하는 시간 인식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지적들이 기후변화의 충격이 확실하게 다가온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기후변화에서 공론화된 위험은 물리적 위험과 이행 위험이다. 물리적 위험은 인간과 자연의 취약성에서 발생하는, 직접적·물리적 손상을 가져오는 위험이다. 물리적 위험은 기후변화의 시기, 규모의 불확실성과 관련돼 있으며, 기후변화 회의론자와 논쟁도 있다. 2100년의 온도 상승을 현재 일처럼 인식하기 어렵고, 회의론 주장에 기대어 트럼프는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물리적 위험보다 이행 위험이 주목받고 있다. 이것은 기후변화 억제 정책 이행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금융 충격으로 정치·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가장 주목받는 것은 좌초자산(stranded asset)이다. 대표적으로 탄소 배출의 주범인 석탄과 원유 등의 생산 제한에 따라 관련 자원과 산업 설비가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화석연료에 의한 좌초자산은 1조~4조 달러에 이를 수 있다. 한국경제도 좌초자산이 12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탄소 가격제도가 본격화되고 탄소 국경세가 조만간 EU를 중심으로 도입될 것으로 보이는데, 탄소 의존 산업이 주력인 한국 등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행 위험으로 자원, 자산, 산업에 대한 손실과 비용이 곧 증가한다는 인식은 미래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현재가치화 평가과정의 할인율을 높인다. 현재가치 평가는 산업, 자산, 프로젝트의 현재 공정 가격을 산출하는 방법이며, 할인율이 급증하면 공정 가격은 폭락한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 감염될 경우 신용공황(민스키 모멘텀)에 빠지며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 이것이 국제결제은행(BIS)이 기후변화를 그린스완으로 평가하는 골자다. 특히 한국경제는 이행리스크가 크다. EU가 탄소 국경세를 2023년 1월 도입할 계획을 고려하면, 한국경제의 기후변화 위험은 곧 시작될 것이다.

조수연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 석사 △하나금융투자 상무 △ 금융투자분석사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