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시각차] 전문성 확보 VS 처벌 위주 정책 기구

2021-07-09 05:00
산업안전보건본부 우선 신설로 산업안전보건청 설치 진행

한국청년연대와 청년정의당 등 청년단체 회원들이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온전하게 마련하라'며 청년학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과로질환'에 빠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은 '면죄부'라고 주장했다. [사진=연합뉴스]


산업 현장의 안전 도모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정부도 관련 전담부처를 확보하려는 모양새다. 특히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의 후속조치로도 관련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꾸준히 나왔다. 하지만 중대재해법과 더불어 산업안전 관련 부처의 설립에 경영계는 부담스럽다는 인식이 크다. 사업주의 관리·감독만으로는 근로자 안전수칙 위반으로 인한 사고 예방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산업안전보건본부 징검다리로 산업안전보건청 설치 첫발

정부가 산업재해 예방과 감독 등을 전담하는 관련 본부를 신설할 방침이다. 고용노동부 내 산재 전담 조직을 확대·개편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정부는 우선 산업안전보건본부를 신설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안전보건청을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지난달 29일 노동부와 행정안전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직제 일부 개정령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조치는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법을 뒷받침하기 위한 조치다. 신설되는 산업안전보건본부는 산업안전보건 기준과 정책 수립, 감독, 예방지원 기능을 맡아 체계화한다.

현장에서는 사망사고가 집중되는 건설현장 등의 밀착관리 담당 조직·인력을 확충해 산재사고 예방을 지원한다.

산업안전보건본부 출범은 산업안전보건청 설치의 사전 작업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확대·개편된 본부를 중심으로 독립된 외청 형태의 산업안전보건청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지난 2월 국회에서는 고용부가 2023년 1월 산업안전보건청을 독립 출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안전보건본부 출범에 따라, 기존 산재 전담 조직인 산재예방보상정책국(1국 5과 47명)은 1본부 2관 9과 1팀 82명으로 개편한다. 또한 지방관서 조직은 63과 2팀 821명 체제로 바꾼다.

본부에는 안전보건감독기획과, 산재예방지원과, 건설산재예방정책과, 중대산업재해감독과, 직업건강증진팀 등 4개 과 및 1개 팀이 신설되고 35명이 증원된다. 지방관서에는 건설업 안전관리 강화를 위한 건설산재지도과(13개) 등 17개 과가 신설되고, 기업의 안전보건체계 구축 및 예방적 현장지도‧감독 확대 등에 현장인력 106명이 증원된다.

고용부의 설명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본부는 보강된 기능과 인력을 통해 산업안전 관련 관계부처‧지자체 협력을 확대할 예정이다. 아울러 산재 빅데이터 구축‧산재 정보시스템 운영 등 국민과의 접점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산재사고 예방을 위해 사업장 스스로 안전보건체계를 갖춰나갈 수 있도록 산재예방지원 사업을 확대한다. 사업장에 대한 감독‧수사를 강화하는 등 전방위적 활동도 추가한다.

이와 함께 산업안전감독관 역량 제고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령 및 수사·감독에 관한 교육 강화와 전문인력 충원 등 산업안전보건의 전문성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촉구의 목소리는 국회에서도 나왔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지난 1일 의견문을 통해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출범했다”라며 “수십 년간 정부 부처 1개 국이 담당하던 산업안전보건행정이 비로소 확대 재편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 영국 등 선진국가들처럼 전문적 산업안전보건행정기구가 필요하다”라며 “산업안전보건청 신설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비롯해 여러 법안들이 제출돼 있다. 일정을 확정해달라”라고 요청했다.
 
경영자단체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에 떨떠름

기업들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의 효과라거나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등에도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의 산업재해 예방 효과에 관해서 국내 기업 10곳 가운데 7곳은 체감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내 기업 486개사를 대상으로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대한 평가와 개선과제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산안법은 2018년 태안 화력발전소의 하청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의 사망사고를 계기로 전면 개정돼 지난해 1월부터 시행됐다. 이 법의 주요 내용은 하청 노동자의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조사 기업들은 현행 산안법의 산재 예방 효과에 대해 71.9%가 ‘영향이 없거나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부정적인 이유로는 사업주에 대한 규제와 처벌 수위만 대폭 강화됐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가장 시급하게 개정해야 할 규정으로는 원청 및 건설공사 발주자 관련 제도(51.0%), 중대재해 발생 시 고용부 장관의 작업중지 명령·해제제도(28.1%)가 꼽혔다.

산재를 줄이기 위해 근로자의 의무 규정을 확대하고 처벌을 강화해야 할지를 묻는 말에는 55.5%가 이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응답했다. 사업주의 관리·감독만으로는 근로자 안전수칙 위반으로 인한 사고 예방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산안법의 개편 방안에 대해서는 원·하청 간 안전관리 역할과 책임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또 근로자가 준수해야 할 안전수칙에 대한 상세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서류작성·보고 절차 등 행정규제 완화, 현장 적합성을 고려한 안전보건 규정 정비, 업종·기업 규모를 고려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산업안전보건청 설립에 대해서는 43.8%가 반대했다. 27.1%는 찬성 의견을, 29.1%는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시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항으로는 처벌보다 예방 중심의 감독정책 수립이라는 응답이 48.8%로 가장 많았다. 업종·규모·재해유형별 맞춤식 감독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기업의 자율적 재해 예방능력 제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은 각각 22.3%씩을 차지했다.

이동근 경총 부회장은 "사업주의 책임만을 대폭 강화한 전부개정 산안법은 산업재해 예방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라며 "안전 규정이 철저히 준수되는 기업문화가 조성되려면 안전에 대한 근로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