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빛나는 순간' 지현우 "고두심에게서 소녀를 발견하다"
2021-07-06 00:00
서울에서 온 다큐멘터리 PD 경훈은 제주 해녀 진옥을 취재하려 한다. 회사의 사활이 걸린 다큐멘터리를 성사하기 위해 진옥의 마음을 얻는 게 급선무. 하지만 진옥은 경훈에 관한 경계심을 풀지 않고 경훈은 더욱더 살갑게 그에게 다가간다. 진옥과 경훈은 가슴 속 깊숙한 곳에 같은 상처를 묻어두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은 30대 청년 경훈과 70대 여인 진옥의 사랑을 담았다. 개봉 전부터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파격 통속극'이라 불렀다. 통속 영화 속 남녀의 나이 차이가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속 경훈과 진옥은 허물을 벗고 내면의 진정성을 꺼내 관객을 설득한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배우 고두심과 지현우의 깊이 있는 연기 덕이었다.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로 '국민 연하남'이라 불리며 큰 인기를 얻었던 지현우(37)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송곳',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룬 '원티드' 등에 출연하며 작품의 메시지와 진정성을 깨우는데 골몰해왔다. '빛나는 순간' 역시 마찬가지. 그는 쉽지 않은 사랑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경훈의 모습에 공감했고 용기 있는 선택으로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나눈 지현우의 일문일답이다
'빛나는 순간' 대본을 받고 어떤 고민을 했나?
-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잘 썼다'였다. 배우로서 든 고민은 '나는 경훈과 진옥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데, 보는 분들도 이해할 수 있을까?'였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로 연상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는데
- 하하하. 군 제대 후 연기 활동을 하면서 속으로 '이제 연하남을 할 수는 없겠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또 한 번 '연하남'이 됐다. 하하하.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PD고 '연하남' 역할이었다. '올드미스 다이어리' 지 PD와 '빛나는 순간' 경훈은 어떤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나?
- '올드미스 다이어리'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신입이었기 때문에 대본에 적힌 대로만 연기했다. 당시 상대 배우였던 (예)지원 누나는 제가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연기에 관해 한마디도 지적하지 않았다. 무척 감사한 부분이다. 즉흥 연기를 자주 하시는 편이라 긴장하긴 했지만 돌이켜 보니 그저 고맙다. '빛나는 순간' 고두심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어느 위치가 되면 상대의 마음에 안 드는 연기를 지적하지 않는 게 참 어려운 일이던데. 선생님도 저의 연기를 그저 받아만 주신다.
'빛나는 순간'의 또 다른 주인공은 제주도다. 이번 촬영을 진행하며 제주도의 이면을 알게 된 부분이 있었다면?
- 해녀들의 모습이다. 쉬는 날이면 해녀 삼촌(제주에서는 남녀불문 나이 많은 이에게 삼촌이라는 존칭을 쓴다)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해녀 삼촌들이 '무섭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소녀 같은 면이 많으시더라. 목소리도 큰 이유도 파도를 뚫고 대화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나이 들었어도 문득 발견되는 순수한 얼굴은 참 아름다웠다. 대본을 읽었을 때도 '엄마이기 전에 여자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관객들도 같은 생각을 하길 바란다.
멜로 연기는 어땠나? 고두심에게서도 소녀 같은 얼굴을 발견했나
-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고두심 선생님 얼굴에 완전히 몰입했다. 나이가 들면 그의 인생이 얼굴에 담긴다고 하지 않나. 인터뷰하는 장면도 유심히 보니 소녀 같으면서도 잔잔하고 포근한 얼굴이 있더라. 아마 감독님도 고두심 선생님의 저런 모습들에서 진옥을 생각했을 것이다.
멜로 영화다 보니 '사랑의 성질'에 관한 고찰도 있었을 것 같다
- '빛나는 순간' 촬영 전 '어린왕자'를 다시 읽어보았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다시 읽으니 달리 다가오더라.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정말 와닿았다. 시각적인 게 아니라 내면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빛나는 순간'과도 닿아있는 것 같다. 최근 그럴듯하게 개·보수(리모델링)한 건물을 보면서 '성형수술'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건물의 내부를 다 알고 있는데 외형만 그럴싸하게 바꾼다고 그 건물이 새것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사람도 외형보다 내면이 중요하고 그걸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작품을 통해 사랑의 가치관이 바뀌기도 했나?
- 작품 속에서 느낀 사랑은 알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현우에게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면
- 개인적으로는 다 잊고 사는 것 같다. 지나고 나면 '아, 그때가 전성기였지' 싶더라. 지 PD로 사랑받았을 때도 '왜 나를 좋아하지?' 의문이었고 팬들이 늘어나는 것도 어리둥절했었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니 모두 감사하고 한 분 한 분 찾아가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야 그 마음을 알겠더라.
어느새 데뷔 18년 차다. 배우로서 고민거리도 많을 텐데
- 항상 '중간'이 어렵지 않나. 연기하기 위해서 직접 현장을 찾아가 관찰하기도 하고 인터뷰도 하는데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나?' '너무 열심히만 하려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풀기도 하나
- 김무열 씨와 가끔 이야기한다. '그래서 재밌는 거 아니야?'라고 대답해주더라. 정답이 없는 일 같다.
객관적으로 연기에 관해 연구하고 고민하나 보다
- 제가 봐도 '올드미스 다이어리' 때는 그저 귀엽더라. 풋풋한 매력이 있다. 연기를 못해도 이해가 되는 때다. 20대 후반까지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30대 이후에는 '귀여움'으로 넘길 수가 없다. 외면은 점점 늙어가고 풋풋한 맛도 사라지는데. 다른 걸 잘 해내야 할 때다. 음식으로 치면 '맛'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배우는 연기를 잘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찾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40대의 지현우에게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 것 같나
- 고두심 선생님께 질문한 적이 있다.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데 어느 경지에 올라서면 이런 마음이 사라지느냐고. 선생님께서 '지금도 그래, 어쩔 수 없어'라고 하시더라. 다들 아닌 척한다고. 그 말이 위로가 됐다.
영화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은 30대 청년 경훈과 70대 여인 진옥의 사랑을 담았다. 개봉 전부터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파격 통속극'이라 불렀다. 통속 영화 속 남녀의 나이 차이가 쉬이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속 경훈과 진옥은 허물을 벗고 내면의 진정성을 꺼내 관객을 설득한다. 이 모든 게 가능했던 건 배우 고두심과 지현우의 깊이 있는 연기 덕이었다.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로 '국민 연하남'이라 불리며 큰 인기를 얻었던 지현우(37)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송곳',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다룬 '원티드' 등에 출연하며 작품의 메시지와 진정성을 깨우는데 골몰해왔다. '빛나는 순간' 역시 마찬가지. 그는 쉽지 않은 사랑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경훈의 모습에 공감했고 용기 있는 선택으로 많은 이를 놀라게 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나눈 지현우의 일문일답이다
-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잘 썼다'였다. 배우로서 든 고민은 '나는 경훈과 진옥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데, 보는 분들도 이해할 수 있을까?'였다.
'올드미스 다이어리'로 연상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는데
- 하하하. 군 제대 후 연기 활동을 하면서 속으로 '이제 연하남을 할 수는 없겠다. 이제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또 한 번 '연하남'이 됐다. 하하하.
- '올드미스 다이어리' 때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신입이었기 때문에 대본에 적힌 대로만 연기했다. 당시 상대 배우였던 (예)지원 누나는 제가 신인인데도 불구하고 연기에 관해 한마디도 지적하지 않았다. 무척 감사한 부분이다. 즉흥 연기를 자주 하시는 편이라 긴장하긴 했지만 돌이켜 보니 그저 고맙다. '빛나는 순간' 고두심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어느 위치가 되면 상대의 마음에 안 드는 연기를 지적하지 않는 게 참 어려운 일이던데. 선생님도 저의 연기를 그저 받아만 주신다.
'빛나는 순간'의 또 다른 주인공은 제주도다. 이번 촬영을 진행하며 제주도의 이면을 알게 된 부분이 있었다면?
- 해녀들의 모습이다. 쉬는 날이면 해녀 삼촌(제주에서는 남녀불문 나이 많은 이에게 삼촌이라는 존칭을 쓴다)들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해녀 삼촌들이 '무섭다'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소녀 같은 면이 많으시더라. 목소리도 큰 이유도 파도를 뚫고 대화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나이 들었어도 문득 발견되는 순수한 얼굴은 참 아름다웠다. 대본을 읽었을 때도 '엄마이기 전에 여자인데'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관객들도 같은 생각을 하길 바란다.
멜로 연기는 어땠나? 고두심에게서도 소녀 같은 얼굴을 발견했나
-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고두심 선생님 얼굴에 완전히 몰입했다. 나이가 들면 그의 인생이 얼굴에 담긴다고 하지 않나. 인터뷰하는 장면도 유심히 보니 소녀 같으면서도 잔잔하고 포근한 얼굴이 있더라. 아마 감독님도 고두심 선생님의 저런 모습들에서 진옥을 생각했을 것이다.
멜로 영화다 보니 '사랑의 성질'에 관한 고찰도 있었을 것 같다
- '빛나는 순간' 촬영 전 '어린왕자'를 다시 읽어보았다. 다 아는 이야기지만 다시 읽으니 달리 다가오더라.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정말 와닿았다. 시각적인 게 아니라 내면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빛나는 순간'과도 닿아있는 것 같다. 최근 그럴듯하게 개·보수(리모델링)한 건물을 보면서 '성형수술'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건물의 내부를 다 알고 있는데 외형만 그럴싸하게 바꾼다고 그 건물이 새것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사람도 외형보다 내면이 중요하고 그걸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작품을 통해 사랑의 가치관이 바뀌기도 했나?
- 작품 속에서 느낀 사랑은 알겠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지현우에게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면
- 개인적으로는 다 잊고 사는 것 같다. 지나고 나면 '아, 그때가 전성기였지' 싶더라. 지 PD로 사랑받았을 때도 '왜 나를 좋아하지?' 의문이었고 팬들이 늘어나는 것도 어리둥절했었다. 지금에 와 돌이켜 보니 모두 감사하고 한 분 한 분 찾아가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야 그 마음을 알겠더라.
어느새 데뷔 18년 차다. 배우로서 고민거리도 많을 텐데
- 항상 '중간'이 어렵지 않나. 연기하기 위해서 직접 현장을 찾아가 관찰하기도 하고 인터뷰도 하는데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나?' '너무 열심히만 하려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풀기도 하나
- 김무열 씨와 가끔 이야기한다. '그래서 재밌는 거 아니야?'라고 대답해주더라. 정답이 없는 일 같다.
객관적으로 연기에 관해 연구하고 고민하나 보다
- 제가 봐도 '올드미스 다이어리' 때는 그저 귀엽더라. 풋풋한 매력이 있다. 연기를 못해도 이해가 되는 때다. 20대 후반까지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데 30대 이후에는 '귀여움'으로 넘길 수가 없다. 외면은 점점 늙어가고 풋풋한 맛도 사라지는데. 다른 걸 잘 해내야 할 때다. 음식으로 치면 '맛'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배우는 연기를 잘하지 않으면 관객들이 찾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40대의 지현우에게는 어떤 변화가 찾아올 것 같나
- 고두심 선생님께 질문한 적이 있다.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데 어느 경지에 올라서면 이런 마음이 사라지느냐고. 선생님께서 '지금도 그래, 어쩔 수 없어'라고 하시더라. 다들 아닌 척한다고. 그 말이 위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