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족 재테크]발품 대신 손품, 부동산 손품 전성시대
2021-07-06 07:00
#. 직장인 한아름씨(40)는 최근 주택을 구입하면서 '발품' 대신 '손품' 덕을 톡톡히 봤다. 아무리 발품을 팔아 사고 싶은 집을 발견해도 집주인과 세입자 각각의 시간을 맞춰 방문 날짜를 잡기 어려워 졌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 탓에 집 방문을 꺼리는 사람들이 늘면서 원하는 집을 직접 보고 계약하기란 더 힘든 상황이다. 고민 끝에 한씨는 아파트 단지를 직접 방문하는 대신 한 프롭테크 업체가 VR(가상현실)로 구현한 단지 시뮬레이션을 보고 계약에 성공했다. VR 방문을 통하면 아파트 각 호수의 평면도부터, 직접 살아보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일조량, 조망 등까지 간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청약을 준비하는 신혼부부 김대관씨(35)도 발보다 손이 더 바쁘다. 예전 같으면 청약 관심 아파트의 모델하우스를 직접 방문했겠지만 요즘에는 클릭 몇 번이면 주택 현관부터 거실, 주방, 각 방, 화장실 등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다. 실제 주택을 360도 카메라로 촬영해 VR 영상으로 구현한 사이버 모델하우스 덕분이다. 인테리어 용품부터 마감재까지 꼼꼼하게 보는 데도 한 시간 남짓이면 돼서 하루에 서너곳의 모델하우스 방문도 가능해졌다. 김씨는 "기존 모델하우스는 멀기도 하고 사람도 많아 하루에 한 곳 보기 빠듯했는데 요즘에는 편하고 빠르게 볼 수 있어 집을 구매할 때도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좋은 부동산을 고르려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부동산 격언이 달라지고 있다. 코로나19로 부동산 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바뀌면서 손품이 더 중요한 세상이 왔기 때문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작한 비대면 집들이가 인기를 끌면서 아예 현장 대신 사이버 모델하우스에 공들이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면서 "실제 모델하우스를 짓는 것보다 물적, 인적 비용이 훨씬 절감되고, 환경오염도 적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 취지에도 부합한다"고 말했다.
현재 직방은 3D단지 투어, 빅데이터로 보다 고도화된 부동산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관심 단지 아파트명과 동, 특정 호수를 선택하면 가격부터 아파트의 구조, 실제 창가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 등까지 보여준다. 앞이 어떤 건물로 막혀 있는지, 강이나 산, 공원 등 어떤 뷰를 지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계절과 시간대별로 채광이 달라지는 모습도 구현한다. 직접 해당 가구를 가보지 않아도 아파트 전망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카사(Kasa)는 몇번의 클릭으로 부동산 지분을 사고팔수 있게 한 모바일 플랫폼이다. 건물에 대한 권리를 주식처럼 쪼개, 투자도 하고 배당도 받는 엄지족을 위한 부동산 재테크 플랫폼인 셈이다. 지난해 말 국내 최초로 댑스(부동산 디지털 수익증권) 거래 플랫폼을 선보인 카사는 지난해 12월 1호 건물인 서울 강남역 인근 '역삼 런던빌' 상장에 성공해 6개월 만에 투자자가 70% 급증했다.
카사에 따르면 공모 당시 101억8000만원이던 역삼 런던빌의 예상 매매가는 현재 주변 시세를 고려하면 110억~120억원 선이다. 두자릿수 수익률이 기대되는 셈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역삼 런던빌'과 도보 8분 거리에 있는 A빌딩은 2019년 10월 191억7300만원에 매입돼 최근 270억원에 팔려 78억2700만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연평균 상승률로 보면 21%에 달한다.
카사는 이달에는 서초구 서초동에 위치한 '서초 지웰타워' 12층의 개인 투자자 공모에 돌입한다. 서초 지웰타워는 2008년 9월 지하 5층, 지상 15층 규모로 완공된 빌딩으로, 카사에 상장되는 12층은 법률사무소 등이 7년간 공실 없이 장기 임차 중이다.
업계에서는 부동산 산업의 모바일화는 서비스의 질과 다양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것이라고 분석한다. KB금융연구소 관계자는 "부동산 산업의 디지털 변혁이 본격화될 경우 전통적으로 인력에 의해 제공되던 서비스들이 사라지고 무인화로 인한 저비용 고품질의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특히 대량의 데이터와 체계화된 프로세스에 의해 관련 비즈니스 간 융합이 증대될 것이란 분석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 계약이 확산되면 부동산 거래의 자동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투명성 증대와 데이터 공개, 분석예측 등을 통해 부동산 급등과 폭락 같은 시장 비효율적 현상은 줄어들 것"이라면서 "부동산 시장의 정보 비대칭성이 사라지는 과정에서 앞으로 프롭테크 스타트업의 출현과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