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글로벌 핵심산업에 투자 올인해 한국 존재감 키워라

2021-06-15 09:13

[이학노 동국대 국제통상학 교수]

미국 주도의 베이징 포위작전이 시작되었다.

금년 1월 출범한 미 바이든 행정부는 5개월 만에 제조업의 미국 내 수요공급 완결체계 구축을 위한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야심찬 3종 종합경제정책 패키지를 완성하였다. '미국제품 우선 구매 명령'(1월), '일자리 계획'(3월), '제조업 부흥정책'(6월)들이 그것이다. 3종 패키지의 중심은 제조업 부흥정책으로, 반도체 등 4대 핵심산업의 안정적인 공급기반 구축과 제조업 부흥을 통하여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회복 정책을 넘어 위험한 국가인 중국을 공공연한 적으로 삼고 있어 가히 대중국 경제전쟁 선전포고라고 할 수 있다.

이 작전의 효과적인 목표 달성을 위하여 연합국의 공동전선이 결성된다. 미국 기업은 물론이고 연합국과 기업들이 반도체, 대용량 배터리, 희토류, 필수의약품 등 핵심 산업 및 군수 물자의 투자와 생산에 적극 동원된다. 미 상무부 애로타개반(T/F)이 공급망에 지장을 주는 국가나 기업을 보고하면 무역대표부(USTR)의 기동타격반(S/F)은 관세 인상 등 보복조치를 시행한다. 행정부에 발맞추어 미 상원도 반도체, 드론, 와이브로(WiBro), 인공지능(AI) 등 주요 첨단분야 연구개발(R&D)에 2000억 달러를 지원한다는 '미국 혁신 및 경쟁력 제고법(US Innovation and Competition Act)'을 통과시켰다.

이러한 생산계획은 일자리 만들기로 이어진다. 제조업 부흥에 인프라 건설 등을 추가하여 수백만명의 미국인 일자리를 만든다는 '미국인 일자리 계획(American Jobs Plan)'은 6조 달러의 2022년 미국 예산안에 2조2000억 달러 규모로 반영되었다. 공급 사이드 계획은 바이 아메리칸 법(Buy America Act)의 강력한 시행을 위한 '미국제품 우선 구매 명령'으로 완성된다.

이와 같은 미국의 베이징 고립을 통한 경제 부흥 노력은 정치적인 계산과 경제적 고려가 혼재하고 있다. 모든 나라의 중요한 정치와 경제적 현안인 일자리 부족을 타개하여 지지도를 높이는 한편, 중국을 외부의 적으로 삼아 내부적 단결을 도모한다는 계산이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비하여 희토류 등 핵심 원료가 부족하고 반도체 등 생산능력도 미흡한 상황이 계속되면 미국의 경쟁력이 영원히 밀릴 수 있다는 절박한 상황 인식도 있다. 많은 나라들이 R&D 지원을 하고 있는데 미국도 산업정책을 통하여 맞대응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에 반발하여 중국은 6월 11일 전국인민대표자회의 상무위원회 회의를 소집하여 '(반중) 외국 제재법(反外國制裁法)'을 통과시켰다. 총 16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이 법은 중국을 위해하는 국가들에 대한 보복은 정당한 자위권임을 천명하고 중국 제재에 동참하는 국가의 기업(조직)과 개인들은 물론 배우자와 직계가족의 자산동결과 사법처리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미·중 간의 갈등은 크게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는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주의의 현저한 약화이다. 미국은 미국이 주도한 다자무역체제인 GATT/WTO를 스스로 벗어나고 있다. 미국은 30년 전 힘이 빠진 GATT체제에 덤핑, 세이프가드, 보조금협정 등 3대 무역협정을 보강하여 WTO를 출범시켰지만 이제 그 틀 자체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 둘째는 미국과 중국의 뚜렷한 편가르기가 시작되었고, 연합국에 들든 들지 않든 어느 한쪽으로부터는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다자무역체제 이탈은 세 가지 경로로 나타난다. 미국은 미국에 불리하게 운용되어 왔다고 여겨지는 덤핑 등 WTO 분쟁해결제도의 무력화를 위하여 상소기구(AB) 위원의 임명을 지연, 현재 7명 위원 전원이 공석이 되어 분쟁해결체제의 작동은 사실상 멈추었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 급증에 대한 산업보호를 위한 최후의 조치인 세이프가드 조치를 미국 안보를 이유로 발동함으로써 세이프가드협정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이제 미국은 강력한 산업정책을 천명하면서 중국 등 개도국의 산업정책을 견제하기 위하여 강화한 WTO 보조금협정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동맹 강화와 편가르기가 노골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미국은 오랜 우방인 유럽과의 무역 분쟁 휴전을 모색하고 있고, 미 해군의 주력이었던 태평양-대서양 중심에서 인도양-서태평양을 추가하는 인도-태평양 전략의 채택과 쿼드(QUAD)의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전략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 차단을 통한 중국 고립화 의도가 담겨 있다. 19세기 청나라 시대에 아편전쟁으로 홍콩과 마카오를 잃고 중국몽의 실현을 위하여 절치부심하고 있는 중국이 쉽게 물러설 리가 없다. 미국에 가담하면 좋지 않을 것이라는 베이징 발 경고가 속속 전해지고 있다.

미국은 냉전기간에 크나큰 희생을 치르면서 확립한 미국의 헤게모니를 중국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을 것이다. 중국도 국제사회에서 2인자는 의미가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승자독식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면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 보조금의 게임이론 예측과 달리 미국과 유럽은 모두 보조금을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많은 나라에서 주요 첨단산업, 주력산업 등에 보조금과 산업정책을 통한 각종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이러한 경제전쟁의 와중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도 산업정책을 하여야 한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모든 분야를 끌고 갈 수는 없다. 정부는 모든 산업을 지원하기보다 민간이 선택한 핵심 산업 분야에 자원을 집중함으로써 미래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여야 한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결과에서 나타나듯이 미국이 제시하는 분야들에 대한 참여도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전략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우리 정부의 노력이 빛을 보는 몇몇 사례들은 산업정책의 앞날에 대한 밝은 조짐이다. 우리 정부는 수소경제에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고 성공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일본과의 다툼에서 시작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서 성공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다행스럽고 칭찬할 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우려도 있다. 첨단 기술인력 양성의 터전이어야 할 우리의 대학은 학령인구의 감소로 인하여 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국제화 지수에 대한 대학평가가 시작된 이후 대학 재정의 유학생 의존은 과도하고 교육의 질적 문제를 낳고 있다.

우리 정부는 각국이 각축을 벌이는 첨단산업과 미래 유망산업 분야를 선택하여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규제를 획기적으로 폐지하여야 한다. 생산이 이루어지는 분야에서 일자리를 창출하여야 생산성이 향상된다. 생산성의 개념도 미흡하고 측정조차도 어려운 공공부문의 일자리 증가를 위해서 돈을 쓸 때가 아니다. 나라의 재원은 한정되어 있다. 미래의 먹거리와 일자리를 위한 새로운 투자를 할 것이냐 또는 반대로 투자할 것이냐에 대한 답변은 비교적 명확해 보인다. 미국의 사례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산업통상자원부 부이사관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