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국가권력 사유화 끝은 어디

2021-06-03 22:28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





대한민국 국가권력의 사유화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모두에 걸쳐 국가기관이 특정 개인과 집단의 사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국가가 담보할 ‘공공성’의 실종은 정권을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관행을 정착시켰고, 정치를 ‘마이너스 섬 게임’으로 전락시켰다.

청년층에게 공분과 동시에 좌절감을 안겨준 LH 직원들에 의한 내부정보의 불법적인 사전 활용은 거의 정권의 명운을 가를 것 같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연이어 터진 LH 퇴직자들과 현직 종사자들의 유착비리가 덧붙여지면서 LH의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불러왔지만, 보궐선거로 표출되었던 민심 이반이 치유될 것 같지는 않다. 관세청 공무원이 65억원 정부사업을 기획에서부터 발주는 물론 자신이 실소유한 것으로 의심되는 기업을 동원해 국가예산을 셀프서비스한 의혹으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이 기재부 승인을 받아 유령 청사를 짓고 소속 직원 절반 이상이 공무원 특별공급 아파트를 분양받은 것은 국가권력 사유화의 한 사례일 뿐이다.

행정부의 사유화는 그동안 ‘관피아’로 불리면서 가장 널리 이루어져 왔다. 개발연대의 ‘정경유착’이 은밀하게 맺어진 불법적인 관계였다면, ‘관피아’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근거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합법적인 불공정 관행이다. 퇴직한 고위공직자의 재취업에 그치지 않고, ‘미래의 사익’을 위해 ‘현재의 공익’을 희생시키는 관피아 윤리가 뿌리를 내렸다. 행정부 각 부처는 독점적 권한과 폐쇄적인 ‘칸막이’ 문화를 배경으로 국가권력의 사유화를 갈수록 공고히 해왔다. 현직에 있는 동안에는 ‘국가의 책임과 위험의 외주화’를 통해 권한만 있고 책임은 사라진 업무에 종사하다가 퇴직 후 재취업한 민간기업에서는 다시 비정규직에게 ‘책임과 위험’을 떠넘기면서 정년 연장의 특혜를 누리게 된다. 현직을 사퇴하고 전자화폐거래소에 재취업하려는 금감원 부국장 사례는 국가권력을 배경으로 한 노골적인 사익추구이다. 이에 비해 LH 사태와 관세청 사례는 그동안 퇴직한 고위공직자가 재취업한 기관이나 기업에서 특혜를 받던 ‘관피아’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국가권력 사유화이다. ‘관피아’가 퇴직 후 행태로서 국가권력(권한)의 간접적인 사유화라면, 현직에서의 이익추구는 직접적인 사유화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부가 예산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동안 입법부에서는 입법권력이 사유화되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세비 인상에는 관대하게 의기 투합하는 작태는 차라리 애교스럽다. 박덕흠 의원은 가족 명의 건설사들을 통해 피감기관으로부터 1000억원대의 일감을 수주한 의혹을 받고 있다. 윤미향·양정숙 의원은 불법행위 혐의에 국회를 피난처로 이용하고 있다. 기독교 신자 국회의원들은 종교인 과세에 반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비록 중도에 철회되었지만 ‘민주화운동유공자예우법’까지 셀프서비스하려는 시도는 입법권력 사유화의 민망한 사례이다.

사법부의 ‘전관예우’는 한국판 국가권력 사유화의 원조이다.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신화는 청산되기는커녕 오히려 공공연한 관행으로 뿌리를 내렸다. ‘사법부 독립’의 이름으로 사법부가 견제 받지 않은 권력으로 자리잡으면서 사법권력의 사유화도 진전되었다. 재판의 승패는 이제 유무죄 여부보다 변호인의 ‘도장’에 좌우되고 있다. 박근혜 사법부의 ‘재판거래’는 사법부의 사유화가 ‘매국행위’로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삼권분립에서 견제와 균형은 사라지고 3부 모두에서 ‘제 식구 감싸기’로 퇴행하고 있다.

관행의 반전이 시급하다. 사법부는 일정 직급 이상은 국선변호인이나 대학교수 등 공익활동에 국한해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전관예우’가 사라지도록 사법개혁이 추진되어야 한다. 법관의 전·현직 활동이 경제적 특혜와 결부되지 않아야 ‘사법정의’에 충실한, 사유화되지 않은 사법부가 재탄생할 수 있다.

국회는 먼저 수석전문위원에 의한 검토보고서를 폐지하여 입법을 선출직 국회의원의 고유업무로 환원하고 입법로비를 차단해야 한다. 이로써 국회의원이 ‘아무나’ 할 수 없는 대단히 막중한 전문직임을 입증하고 ‘아무 일’이나 간섭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을 수 있어야 한다.

행정부에서는 고위공직자의 재취업을 최소한으로 줄일 뿐만 아니라 그 범위도 가능한 한 공적 영역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민간의 경제활동에 대한 필수적인 규제·감독·점검은 물론 각종 인허가 업무 등을 산하기관이나 협회에 이전하여 ‘관피아’의 재취업 일자리를 만드는 관행을 타파하고 이미 ‘외주화된 책임과 위험’도 가능한 한 행정부 안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굳이 민간에게 맡겨야 한다면, 그것은 독립적인 민간기업과의 시장거래로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은 국가권력의 사유화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 정권들이었다.

국회의원과 공직자의 국가예산 ‘셀프서비스’, 재판 거래, ‘제 식구 감싸기’, 끊이지 않는 노동자의 산재사망 등 무수한 사례에서 볼 때 국가권력의 사유화는 이제 그 정점이자 한계에 다다랐다. 사유화된 국가권력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는 일은 개혁의 대상과 주체가 중첩되는 모순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이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치의 몫이다. 정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김호균 필자 주요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