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균 칼럼] 코로나 재난 상황, 전국민의 ‘기본대출권’ 검토를

2021-05-07 05:56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



세계의 칭송과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이 정치적 계산으로 오염된 백신 조달로 인해 자칫 실패로 반전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부는 ‘성공스토리’를 이어가려 하지만 백신의 공급계획과 실제 공급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마저 점차 높아지고 있다. 11월 백신 면역이 안 되면 내년 대선은 ‘해보나 마나’라는 전망도 나온다. 집권여당의 실정만이 정권교체의 유일한 길이었던 누적된 학습효과에, 야당은 국익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백신의 부작용과 수급 불안을 연일 부각시켜 ‘정부 실패’를 확대하고 있다. 방역이 권력투쟁의 장이 되면서 국민 생명보호에 만전을 기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그나마 성공적인 방역의 가장 튼튼한 버팀목이었던 국민의 방역수칙 준수를 마지막까지 ‘저렴하게’ 마무리할 요량으로 손실보상에 미온적이다.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에 주무장관은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인색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자영업자까지 나타나는 막막한 현실에 찔끔 지원하다가 보궐선거를 앞두고 4차 소상공인 지원금 최대 500만원으로 ‘퉁’치려 하고 있다. 선거 참패에 여당은 자영업자에 대한 추가적인 소급 보상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정부는 불가 입장을 천명하면서도 여행과 요식업에서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지급하는 ‘기행’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코로나19로 소득이 감소한 서민과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빚을 낼 수밖에 없다.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빚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에 ‘영끌’하는 2030세대까지 금융시장에 몰리면서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00%에 육박하여 한국경제의 ‘최대 시한폭탄’이 내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내재가치 없는 비트코인에 대한 금융당국의 잇단 경고에도 ‘빚투’ 폭주는 멈추지 않고 있다. 각자도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작금의 자산인플레이션은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기회이다. 어린이날 미국 옐런 재무장관이 예고한 금리 인상으로 1.9% 급락한 나스닥이 한국 자산시장에 미칠 영향이 사뭇 우려된다.

시점이 문제였지 금리 인상은 충분히 예상되던 전환이지만 그에 대한 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다. 특히 소득손실과 영업손실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빚으로 연명하던 서민, 소상공인, 영세자영업자에게 금리 인상은 더욱 험악한 ‘재난자본주의’의 민낯을 보여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처하려면 획기적인 서민금융개혁이 필요하다. 그동안 미소금융이나 햇살론 등 정책서민금융이 공급되었지만 금리나 대출규모 면에서 수요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지난 4월 초 국무회의에서 논의된 ‘정책서민금융체계 개편방안’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지적한 “신용이 높은 사람은 낮은 이율을 적용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워 신용이 낮은 사람들이 높은 이율을 적용받는 구조적 모순”은 지금까지 금융시장의 독과점적 관행이다.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전 국민 카드 발급, 주택담보대출의 보편화로 금융이 국민 일상에 깊이 들어왔다. 신용공급자들은 민영화되면서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금융회사’로 변신했지만 아직 대다수 국민의 의식은 물론 일부 법률에서도 공공성을 가진 ‘금융기관’이다. 경제위기 국면에서 기업은 망해도 금융회사에는 중앙은행이 ‘마지막 피난처’가 되어주는 것도 금융의 공공성 때문이다. 이제 금융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면 ‘중금리’ 수준의 서민금융을 제공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론적으로 금리차별은 독점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자행하는 ‘가격차별’의 금융시장 버전이다. 가격차별은 ‘비효율성’을 초래하므로 효율성을 높이려는 정부정책의 당연한 규제대상이다. 더욱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저신용자에게 적용되는 고금리는 소비자의 지불의사 및 능력이 시장가격의 결정을 이끈다는 시장경제 기본원리에도 맞지 않고 사실상 ‘궁박’ 상태에서 지불하도록 강제되는 ‘불공정가격’이다. 여기에서 벗어나 금융의 공공성이 뿌리를 내리려면 누구든지 1000만원 정도를 조건 없이 3~4% 금리에 이용할 수 있는 ‘기본대출권’을 포함하는 ‘금융기본권’의 제도화가 바람직하다. 정부가 져야 하는 재정부담도 크지 않다. 물론 이는 금융거래와 같은 시장현상을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기본권과 결합하려는 낯선 시도이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그것은 헌법상의 경제질서인 사회적 시장경제에 내재하는 ‘인간의 얼굴’이나 ‘인간중심성’을 살려내는 것이고, 현실적으로는 재난자본주의의 폭거로부터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이다. 군사독재 하에서 인권이 더욱 중요해지듯이 작금의 재난 국면과 다가올 ‘K자 경기회복’ 국면에서 ‘기본대출권’은 생존권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약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