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4차 산업혁명 시대, 사이버주권 수호가 진정한 안보
2021-05-21 06:00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어찌 보면 유일한 목표는 자국의 주권을 수호하는 일이다. 주권 수호란 자국의 의사결정을 자국이 원하는 대로 자국의 국익에 맞는 방향으로 내릴 수 있는 상태를 항상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자국이 독자적으로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경우는 주권을 상실하였다고 본다. 그리고 자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을 강요당하는 경우는 주권이 제약된다고 본다. 모든 독립 주권국가들은 이러한 상태를 회피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다. 혹 자국의 국력이 타국의 간섭을 방어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면 타국의 도움을 받아서 주권을 지키려고 하는데, 이럴 때 동맹이나 안보협력을 시도한다. 주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영토주권인데, 영토란 한 나라 국민이 사는 땅을 말하고 그 땅에 대해서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주권국가의 기본요소이다.
영토와 주권은 국가구성 3요소 중 두 요소로서 영토가 존재하지 않으면 국가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영토와 주권을 결합한 영토주권은 국가 존망에 가장 중요한 권리이다. 과거에 영토를 말할 때는 물리적인 영토, 즉 물산을 생산할 수 있어 국가의 물적 토대가 되는 영토만을 말하였다. 그리고 국가 간의 전쟁은 이 영토를 더 확보하기 위한 정복 전쟁으로 시작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기술이 날로 발달해가는 지금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물리적 영토의 중요성은 과거에 비해 현저히 낮아지고 있다. 그 대신 비물리적 영토, 즉 문화·정신적 공간과 사이버 공간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점증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영토개념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물리적 영토를 확보하고 있어도 우리가 존중하는 가치를 국내·외적으로 추구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면 우리의 문화·정신적 영토, 즉 주권 공간이 축소당하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된다. 우리나라가 자유와 민주주의, 법치, 개방경제 등을 중요한 가치로 존중하고 있는데, 이런 가치가 무시되는 국제환경이 조성되면 우리의 발언권이 제한되고 국내적으로도 이런 가치를 충분히 누리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런 가치가 보장되는 국제환경 덕분에 지난 60년간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가치가 통용되는 국제적 영역을 확대하는 노력에 동참하는 것이 우리의 비물리적 영토를 수호하는 일이 될 것이다.
최근에는 IT 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이버 공간에서 상거래가 일반 상거래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사이버 공간에서 경제적 이익창출이 천문학적 규모로 성장해 오고 있다. 꼭 상업적 활동이 아니더라도 가상공간에서 개인들 간에 수많은 의사소통과 문화적 활동, 그리고 가치창조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사이버 공간이 어느 특정세력에 의해 독점되거나 통제된다면 이 역시 우리의 비물리적 영토가 축소당하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즉, 우리 국민의 뜻대로 우리 국익에 맞게 사이버 공간을 이용하지 못하고 다른 세력의 통제에 순응하여 이 공간을 이용하게 된다면 우리 주권이 제약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국제질서가 급격히 변하고 있으며 지난 70년간 자유주의적 질서가 비자유주의적 질서로 변모해 나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유주의적 질서에 의지하여 경제성장과 문화융성을 이루어왔던 우리나라는 비자유주의적 질서가 확산되는 것을 가급적 저지해야 한다. 우리의 안보개념을 말할 때도 이제는 영토의 안전만 볼 것이 아니라 비물리적 영토, 즉 주권 공간의 안전도 동시에 조망하면서 우리의 전략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눈앞에 전개되는 국제정세의 대변환기를 맞아 국가전략을 세울 때, 우리는 주권 공간이 보호되는 방향으로 동맹을 운용하고 협력국을 선정해야 할 것이다. 큰 댐이 무너지는 것도 조그만 구멍의 누수에서 시작하듯이 지금 당장 큰 문제가 아니라고 간과하지 말고 주권 공간에 대한 위험을 예견하고 이에 대비한 조치를 때를 놓치지 말고 취해 나가야 한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