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투기'라던 암호화폐, 중기부·산은 4년간 500억원 이상 투자

2021-05-05 14:39
업비트·빗썸 등 암호화폐거래소에 간접투자

은성수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암호화폐를 신뢰할 수 없는 '투기'라고 지적했지만, 중소벤처기업부와 KDB산업은행 등 정부부처와 공공기관들은 암호화폐에 수백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과 정부부처, 공공기관이 암호화폐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보이면서, 금융당국이 암호화폐에 대한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각 기관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와 KDB산업은행 등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들은 지난 2017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가상화폐 관련 투자상품에 총 502억1500만원을 투자했다.

기관별로 중소벤처기업부가 가장 많은 343억원을 투자했다. 중기부는 모태출자펀드에서 4개 기업에 343억원을 투자했다. 모태출자펀드는 투자와 관리 등 업무는 관련 법에 따라 벤처캐피탈(창업투자회사 등)인 업무집행조합원이 진행한다. 정부가 모태펀드에 자금을 지원하면 모태펀드가 각종 벤처펀드를 만들고, 밴처캐피탈이 이를 운용하는 구조다.

이어 산업은행 117억7000만원, 국민연금공단 34억6600만원, 우정사업본부 4억9000만원, 기업은행 1억8900만원 등으로 이들은 모두 중기부와 같이 직접투자 대신 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를 선택했다. 해당 펀드는 업비트, 빗썸 등 국내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에 직접 투자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최근 발언과 대조적이다. 은 위원장은 지난달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암호화폐는 내재 가치가 없으며, 특정금융정보법 시행 후 거래소는 전부 폐쇄될 수도 있다"며 "암호화폐는 인정할 수 없고 제도권에 안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암호화폐가 사실상 투자가치가 없는 불명확한 투기자산이라는 시각을 내비친 셈이다.

은 위원장의 발언 이후 암호화폐 시장은 한때 급락했다. 6000만원 대에 거래되던 비트코인 가격은 은 위원장 발언 이후 하루 만에 5000만원 중반까지 하락했다.

은 위원장의 발언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까지 등장했다. 이 청원에는 총 16만명이 넘는 인원이 동의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 수장이 암호화폐를 투기 수단이라고 발언했지만, 정부부처와 공공기관들은 이미 암호화폐에 수백억원을 투자했다"며 "금융당국과 공공기관들이 암호화폐에 대해 엇박자를 내면서, 정작 투자자와 시장에는 불확실성만 높이는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