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블랙스완과 블랙박스가 벌이는 21C 금융 대전

2021-04-27 09:37



2010년 11월 11일 오후, 코스피 시장. 옵션시장 만기일이었던 이날 유가증권 시장은 마감 10분을 남겨두고 역사상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던 사건이 발생했다.

글로벌 은행이 미리 풋옵션 등 코스피200 주가지수가 급락할 경우 이익을 보는 투자를 미리 해놓고, 약 2조원의 보유 주식을 쏟아부었다. 그들은 주가를 2.7% 끌어내렸고, 이날 유가증권 시장만 시가총액 29조원이 증발했다.

2018년 추산 투자자 피해액은 1400억원으로 추산하지만, 소송 이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을지 가늠이 잘 가지 않는다. 그 누구도 도덕적 해이나 준법 위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았던 글로벌 은행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 아래 한국 증권시장을 유린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본질은 예측할 수 없지만 충격이 큰 사건, 즉 한국에서 발생한 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이었다. 필자는 이 사건 발생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금융회사의 현장에 있었고, 삶에 회복할 수 없는 충격을 받았다. 이후 금융시장의 예상치 못한 사건, 블랙스완에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백신을 놓고 의학계가 바이러스와 오랜 전쟁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 전쟁만큼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금융시장의 위험과 예측 도구의 싸움이다. 금융의 예측 대상은 금리, 인플레이션, GDP, 환율, 주가 등등 다양하지만 하나로 요약하면 가격의 예측이고 금융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금융전문가는 대수(大數)의 법칙, 가우스 정규 분포를 백신처럼 활용하며 금융시장의 위험을 예측하고 제어했다. 자연 현상은 평균과 분산을 알면 예측할 수 있고 이 정규 분포의 원리가 금융 시장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그러나 이 예측 능력을 의심케 하는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발단은 1987년 블랙 먼데이의 주가 폭락이었고, 이후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에 의한 롱텀 캐피털 파산, 2008년 금융 위기가 10년을 간격으로 발생했다. 매 위기마다 금융전문가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속수무책이었다. 사후에 해설도 신통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금융전문가의 예측 기능이 고장 났다는 의문이 생겼다. 예측하지 못한 위험을 2006년 나심 탈레브는 블랙스완이라고 했고, 곧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나심 탈레브는 금융위기가 블랙스완임을 부정했다).

한편 금융시장의 혼란에 물리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최근 금융을 연구하는 물리학자 디디에 소르네트는 표현의 강도를 높여 이러한 위험들을 ‘드래건 킹’이라고 했다. 이 위험이 과거 왕처럼 단 하나이지만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는 혼란스런 금융시장을 정규분포가 아닌 카오스가 지배하는 곳으로 규정했다. 카오스는 나비효과처럼 작은 변화라도 복잡한 결과를 초래하며 예측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금융전문가를 배제하고 물리학자와 수학자, 컴퓨터 과학자 등이 헤지펀드를 만들고 금융시장에 도전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짐 사이먼이 만든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다. 그는 유명한 수학상의 이름을 따서 펀드 이름을 메달리온이라고 했고, 1988년부터 연평균 66% 수익률을 보였다. 이 기록은 금융전문가의 대표 격인 조지 소로스의 퀀텀펀드를 한참 따돌린 것이다.

그러나 2020년 금융시장의 위험과 예측 도구가 대치하는 전선에 다크 호스가 출현했다. 금융시장과 외신은 딥 러닝 AI를 자산운용에 적용한 J4 캐피털이라는 신생 자산운용회사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헤지펀드는 대부분 통계·수학 기법을 활용한, 퀀트라는 투자방법론을 알고리즘으로 하는 머신러닝 AI를 자산운용에 이용한다.

머신러닝 AI는 펀드매니저 등 인간의 지식과 노하우를 기반으로 데이터 처리의 속도·효율 등에 펀드매니저를 지원하며, 최종 투자 결정은 인간이 한다. 그러나 딥 러닝 AI는 좀 다르다. 이미 이세돌과의 바둑 대결에서 알려진 것처럼 딥 러닝은 수십억 번의 반복된 학습을 통해 인간이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투자 방법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AI 특성은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없어서 블랙박스(Black box)라고 한다. 딥 러닝은 정규확률분포이든 카오스이든 인간의 사고와 무관한 투자를 시행할 것이다. 현재 J4 캐피털은 사람의 도움 없이 24시간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직접 증권사에 주문을 내고 있다. 창립자 제프 글릭만(Jeff Glickman)은 60세의 컴퓨터과학자로, 금융이나 투자에는 문외한으로 알려진다.

2020년 3월 20일 코로나 팬데믹으로 다우는 연초부터 27% 빠졌고, 대부분 헤지펀드도 두 자릿수 급락을 면치 못했지만, J4 캐피털은 +4%를 기록했다. 시장 대비 31%를 이긴 것이다. 모두가 블랙스완을 만났지만, J4 캐피털이 블랙스완을 가둔 것에 관계자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금융전문가의 예측 능력 상실은 단순히 금융회사 경영 수지의 문제만이 아니라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고령화사회가 진행되고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연금펀드의 사회적 책임이 커졌다. 또한 100세 시대로 젊은 금융소비자가 안심하고 장기간 자산을 맡길 펀드들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부자들은 패밀리 오피스나 사모펀드를 통해 고급 금융기술자를 독점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사람들 사이에는 자산보유의 불평등을 넘어 자산관리에도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다. 딥 러닝 AI가 보편화되면 이런 불평등 걱정은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은 분산 원장 기술로 ‘금융의 민주화’라는 기대감을 사람들에게 심어줬다. 딥 러닝은 기존 금융 산업과 뿌리를 달리한다.

최근까지 딥 러닝에 대한 자산 운용업계의 반응은 불신과 우려가 크다. 투자가 인간 활동의 결과인 만큼 복잡하고 블랙스완을 잡을 수 없으며, 딥 러닝의 깜깜이(Blackness) 특성이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런데도 이러한 문제들은 인간 시각의 문제이고, 딥 러닝의 강점이 이를 모두 해소할 수 있다고 AI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딥 러닝의 블랙박스가 사상 최초로 블랙스완을 꼼짝없이 가두고 금융의 불평등을 해소할 것이라는 기대를 조심스럽게 해본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 석사 △하나금융투자 상무 △ 금융투자분석사 △공정한금융투자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