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경영의 뉴 패러다임 ESG] 탄소배출거래제 도입 초읽기…발등에 불떨어진 한국
2021-04-27 06:00
지난해 우리가 겪은 역대 최장의 장마가 이상 기후의 방증이다. 또 한쪽에서는 타들어 가는 가뭄으로 고통을 받는 가운데, 지구 반대편에서는 홍수로 생사를 오가기도 했다. 현재의 상황을 방치하면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앙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위기론이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EU 등 주요국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 추진
기후위기에 대한 각국의 대응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과 ESG 투자에 있어서 가장 포괄적인 쟁점이 됐다. 선진국은 기후를 개인과 기업, 국가의 생존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보고 일찌감치 탄소 감축에 착수했다.2015년 파리협정에서는 지구의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2도보다 아래로 유지하되, 되도록 1.5도까지 제한하자는 내용을 체결했다. 1.5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인간의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한 줄이고, 남은 온실가스는 흡수·저장·이용·제거해 결과적으로 실질 배출량 0(제로)이 되도록 만드는 개념이다.
중국도 유엔 회의에서 2060년 탄소배출량 0(제로) 달성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탄소 가격제 부담을 확대할 것임을 시사했다. 캐나다 연방정부도 일부 주 정부의 반발에도 대법원의 적법하다는 판결에 따라 탄소세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오는 6월까지 탄소국경세, 탄소세, 탄소배출권 거래와 같은 탄소가격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국가 주력 산업, 탄소 다배출 업종에 집중
탄소배출 거래가 시행되면 탄소 배출량이 높은 기업은 비용 부담이 커져 경쟁력이 악화할 수 있다. 본격적인 제도 도입에 앞서 각국 기업이 얼마나 탄소 배출 저감을 이뤄냈냐가 경쟁력을 판가름할 전망이다.문제는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업종에 집중됐다는 점이다. 발전 및 집단에너지,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정유가 전체 탄소배출 할당량의 81%가량을 차지한다.
기업지배구조원은 "탄소국경세 도입을 비롯한 EU, 미국 등의 친환경 대응이 무역규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면 경쟁력 약화와 해외 자금조달, 기업 신용 등급 유지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특히 국내 주력 산업인 석유화학과 철강 업종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업들도 탄소중립이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23일 "우리나라는 주요국에 비해 생산과 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면서 "급격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경제 활력과 일자리 창출에 큰 부담을 줄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역행하는 탄소 정책··· 9번째로 온실가스 배출 많아
우리나라 탄소 정책은 전 세계 흐름에 역행한다. EU는 2005년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했지만, 우리나라는 국내에 도입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배출권거래제는 대규모 온실가스 배출사업장이 정부로부터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할당받아 그 범위 내에서 감축하되, 할당량이 남으면 다른 기업에 판매할 수 있고, 할당량이 부족한 경우 다른 기업으로부터 할당량을 사는 제도다.개인의 탄소 배출도 증가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탄소 배출량은 1990년 6.8t에서 2017년 14.1t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같은 기간 EU는 탄소 배출을 23.5% 줄인 것과 비교된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9번째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국가다. 유럽의 저먼워치, 뉴클라이밋연구소, 기후행동네트워크 등이 발표한 '2021 기후변화대응지수'에서 우리나라는 61개국 중 53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비 다섯 계단 올랐지만 여전히 하위권이다. 영국의 국제연구단체 기후행동추적(CAT)은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 등 4개국을 '기후 악당'으로 지목하며 약속한 탄소 감축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한국은 지난해 10월에서야 문재인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 계획을 공식 선언했다. 지난 22일 '지구의 날'을 맞아 바이든 미 대통령이 주재한 '기후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안으로 감축 목표를 기존 24.4%보다 높여 유엔에 제출하고,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소에 대한 공적 금융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문가들 "국내 탄소 가격 현실화 필요"
올해 개최되는 26차 유엔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는 탄소거래 관련 사항이 핵심 의제가 될 전망이다. COP26과 국내 3차 배출권 거래제의 적극적인 추진 동향을 고려하면 국내 탄소배출 거래권 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전 세계 탄소배출 거래가 현재 t당 40달러(약 4만4500원)에 가격이 형성된 반면, 국내 탄소배출 거래권 가격은 t당 2만5000원으로 절반 수준에 그친다. 해외 주요 기관은 오는 2030년 탄소가격이 t당 100달러를 가정하고 있다.
김준섭 KB증권 ESG연구원은 "COP26으로 각국 정상이 탄소 배출권 가격에 대해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이면 국내 탄소 배출권 가격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신지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탄소 감축 비용의 계산"이라며 "기업 부담을 산출하고 인센티브를 활용하기 위해서 탄소 가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