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칼을 뽑았는데…투기주범인 토지수용엔 손 못댔다"

2021-03-30 08:41
처벌·부패 파악 위주 대책…친인척 아닌 차명거래·구두유출 잡기 어려워
정부주도 비밀주의 개발방식 한계…부동산거래분석원, 정보 침해 우려도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한 방도로 부동산 부패 청산을 위한 고강도 투기 근절 대책을 내놨다. 예방·적발·처벌·환수 등 4대 부문에 걸쳐 20대 핵심대책을 내놓으면서 할 수 있는 대책은 다 내놨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농림축산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는 29일 대통령 주재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부동산 투기근절 및 재발방지대책'을 논의·확정했다.

정부가 부동산 자산 중에서 비교적 규제 강도가 덜했던 토지시장에 주택과 버금가는 규제를 적용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그동안 견제가 없었던 토지시장은 규제가 필요한 영역이긴 했다”면서도 “과연 친인척을 벗어난 차명 거래나 구두로 얘기한 개발정보까지 잡아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규제가 토지 시장의 위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초 토지는 베이비부머·엑스세대가 사는 부동산 상품이었는데, 밀레니얼 세대로 옮겨가면서 애초에 줄어든 토지시장이 더욱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1996년 이후 농지는 자경을 원칙으로 한다. 친인척이나 원주민에게 몰래 위탁하는 부재지주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면서 "수도권의 토지 거래가 끊기고 아파트나 도심 빌딩으로 자금이 이동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공직자 재산등록 및 사후 처벌 중심의 대책에 관해서는 미봉책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온다. 근본적으로 정부가 주도한 비밀주의 개발방식이 유지되는 한 구두와 같이 입증하기 힘든 경로로 정보가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유선종 건국대 교수는 “주택 관련 종사자는 전부 재산등록을 한다고 하는데, 비밀리에 개발을 진행하는 이상 토지개발 또는 주택건설 관련 부처가 아니더라도 개발정보는 어떤 방식으로든 새어나갈 수 있는 구조라는 문제가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개발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필요하다”며 “정부가 주도한 일방적인 개발은 지자체 또는 주민들이 반발해서 취소되는 사례가 잦아 최선이 아니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신도시를 만들 때 적용하는 ‘택지개발촉진법’은 1980년 말 전두환 정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에서 만든 내용을 골자로 현재까지 변함없이 쓰이고 있다.

땅 주인과 협상하는 등의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보상금마저 정부에서 정하는 제도다. 전문가들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악법이라고 입을 모은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아무리 예방하고 처벌해도 결국 누군가는 개발정보를 사전에 알 수밖에 없고 어떻게든 정보가 유통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업계에선 불공정거래 감시를 위한 '부동산거래분석원'도 '빅브러더(정보를 독점하는 절대권력)'가 될 것이란 우려를 내놓고 있다. 분석원은 국토부 외부에 별도로 만들어지는 조직으로, 부동산 투기와 관련된 모든 편법 불법 행위에 대한 모니터링과 수사를 맡게 된다.

정부는 내달 6일 부동산 거래분석 기획단을 출범시키면서 분석원 추진에 시동을 걸 전망이다. 기획단 출범 이후에는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경우 분석원으로 확대 개편하는 방향을 고려 중이다.

국가가 국민 계좌와 세금을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을 쥐게 되면, 반드시 개인정보와 재산권 침해 논란이 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심 교수는 "공무원을 포함해 공사 직원, 거기에 가족까지 포함하면 꽤 많은 수의 국민이 국가의 감시를 받게 되는 꼴인데, 이런 사례는 전 세계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제도"라면서 "투기꾼 잡는다면서 경제 전체를 죽이는 식으로 갈 수 있어서 아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은 전방위적이지만, 사태 수습에만 급급해 근원적인 해결에 대한 대안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 교수는 "처벌과 부패 파악 위주로 대책이 꾸려져 있다. 근원적인 문제인 토지수용 문제 등을 고려해야 하는데 그런 대안은 안 나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