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공개념, 사회적 논의 더 필요" vs "시장 정상화 가능해질 것"
2021-03-24 08:50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투기 논란을 계기로 토지공공성 개념을 둘러싼 담론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여권에서는 1990년대 무산됐던 '토지공개념 3법' 부활론까지 꺼내며 각종 투기 범죄의 근본이 되는 부동산 과다소유와 불로소득을 제한 또는 차단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부동산 제도의 공공성을 높여 투기·주거 문제를 뿌리부터 해소하자는 주장이다.
이에 본지는 정희남 강원대 초빙교수,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등 전문가 5인의 좌담을 통해 토지공개념의 올바른 정책 방향성에 대해 짚어봤다.
-토지공개념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가.
정희남 강원대 초빙교수(이하 정)= "토지공개념의 정의는 누가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달라지는데, 지금 정치권에서 말하는 토지공개념은 LH 사태 이후 불로소득 환수와 공직자의 직업윤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건 국가가 토지를 국유화·집단화하는 공개념과는 다른 의미다. 제대로 된 표현을 쓰지 않아 시장에서는 사회주의 국가처럼 인지하고 반발하고 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이하 남)= "우선은 토지공개념을 구현할 정책 수단이 중요하다. 개발부담금제 등의 준조세 방식이 아니라 모든 민간토지를 대상으로 한 토지보유세 강화와 같은 방식으로 구현해야 한다. 지금은 토지공개념이라는 '추상'에서 벗어나 그 정신을 담을 수 있는 '구체'를 가지고 토론해야 할 때다."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토지공개념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토지공개념이 부동산 적폐청산과 집값 안정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나.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이하 이)= "LH 임직원들의 투기 논란을 계기로 일각에서 제기되는 토지공개념의 목표는 부동산 가격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런데 토지공개념을 실시한 나라들의 부동산 가격이 안정됐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중국은 땅을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이용권을 사고 파는 개념인데, 베이징·상하이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중국 집값이 엄청나게 뛰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정=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미 다양한 공개념이 적용돼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투기지역으로 지정됐고, 이외에도 금융 제한, 종부세 강화, 재개발·재건축 초과이득 환수 등의 규제가 있다. 여기에 토지공개념을 추가로 도입하는 건 큰 실익이 없다."
심= "지금 정부는 문제의 출발점을 잊은 것 같다. 공공의 힘이 너무 강해서 이런 문제가 생겼는데, 이런 상황에서 토지공개념 이슈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없다. 정치적인 발언은 뭐든 할 수 있다고 보지만, 공공이 더 잘한다는 보장이 없어 국민 정서와 너무 괴리돼 있다."
남= "토지공개념은 하나의 정신이므로 그 정신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느냐가 중요하다. 제대로 구현하면 부동산 투기를 차단하고 시장을 정상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토지 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공공의 개입이 LH사태를 만들었다는 지적에 대한 의견은.
심= "공공의 개입 때문에 LH 사태가 만들어진 게 아니라 잘못된 개입 방식이 문제다. 현재의 토지수용 방식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해외에서는 개발 전에 미리 물어보고 의견을 조율하지만, 우리나라는 비밀리에 개발지역을 정해놓고 뺏어간다. 비공개 방식으로 진행하니 내부정보가 확실하고, 그 정보로 소수만 돈을 버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남= "토지개발 자체는 꼭 필요한 국가 사업이다. LH사태는 지금의 토지개발 방식과 토지제도 자체가 과도한 시세차익(불로소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제도이기 때문에 발생했다."
-토지공개념 이슈에 재산권 침해와 불평등 해소 의견이 대립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남= "토지공개념을 제대로 구현만 한다면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불평등도 해소된다고 본다."
정= "본래 토지공개념이라는 건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 토지공개념의 기본이 되는 바이마르 헌법에는 △개인의 사적소유권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되 △토지 등 부동산 소유자는 본인의 소유권을 행사할 때 공익을 중시해야 하며 △공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국가가 개인의 토지를 강제적으로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때 국가가 다른 사람의 재산권을 수용, 사용하고자 할 때는 반드시 사전에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이= "부동산에 기인한 불로소득을 제거하려면 그보다 앞서 물가상승률이 0%로 수렴해야 한다. 현재의 재산권 침해나 조세저항 분위기는 '집주인들은 가만히 있었는데 집값이 지나치게 올랐고 이를 부당이득으로 보고 세금을 지나치게 부과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내용에서 온 것이다. 생필품 등 모든 물가가 올라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 불로소득으로 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미 다른 나라에 도입된 토지공개념을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가. 적용 시 어떤 부분을 보완·변경해야 하나.
이= "토지공개념에서는 개인이 아닌 국가가 지주가 된다. 그럴 경우 임대료를 필요경비 수준으로 최소화할 것이냐, 적정 수준의 이익선 또는 이익극대화 수준으로 올릴 것이냐는 정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전자가 된다면 그 혜택을 보는 국민들에게는 긍정적이지만, 후자가 된다면 토지공개념의 의미가 퇴색된다. 당연히 어떻게 하면 국가가 전자의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는지 법제화하는 보완 과정이 필요하다."
정= "홍콩은 1965년부터 땅을 사들여서 전체 국토의 95%가 국유지다. 싱가포르 정부도 1965년부터 매년 땅을 사들여 60년 동안 토지공개념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정부 주도로 대규모 주택을 짓고, 일반 시민들에게 저렴하게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택공급은 시장 주도로 하고 저소득층에 대해서만 LH, SH가 임대주택을 공급한다. 이는 토지 소유권이 개인에게 있기 때문이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식 공공주도는 우리나라 환경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가 규제만 풀어주면 민간 차원의 대규모 공급이 가능해진다."
남=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얼마든지 토지공개념을 적용할 수 있고 본다. 토지보유세를 높이고 토지 개발을 할 때 수용한 토지를 매각하지 않고 임대하는 방식이 토지공개념의 좋은 실현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토지공개념 도입을 위한 개헌은 어떻게 보나.
남= "헌법에 토지공개념을 명기(明記)해야 그 정신을 반영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 수 있다. 지금 헌법은 토지공개념 정신을 반영하지만, 법과 제도는 토지사개념에 가깝다. 사실상 헌법과 하위 법률이 불일치한다."
심= "개헌 논의부터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다. 자꾸 본질을 이상한 쪽으로 끌고 간다. LH 부패 때문에 생긴 사태에 갑자기 토지공개념 이슈를 끌고 오는 것은 너무 생뚱맞은 이야기다. 그야말로 여론을 돌리는 목적이 아닌가 싶다."
-토지공개념 하에 민간 투자는 어떤 식으로 가능한가.
남= "민간 건설사는 이제 토지의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경영이 아니라 건물 생산과 공급을 통한 이윤 추구를 해야 한다고 본다."
정=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현재 정부가 다양한 공개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토지를 개발하는 것까진 좋지만 주택건설, 재개발·재건축을 할 때 민간의 자율성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이끌어 주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더라도 시장에서 공급이 많이 일어나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 지원을 개선해줄 필요가 있다. 일정부분의 개발이익을 공공에 내놓되 다른 분야는 풀어주는 게 슬기로운 방식이라고 본다."
이= "토지공개념을 개헌한다고 민간투자가 기존과 엄청나게 달라지기는 어렵다. 토지공개념을 한다는 나라에서도 민간이 거래가능한 집값은 계속 오르고 그것도 투자대상이 된다. 그렇다고 모든 주택 등을 국유화하고 가격제한을 설정한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시장을 크게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