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돋보기] LH와 조롱 글 올린 직원 간 숨바꼭질, 승자는?

2021-03-15 17:32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조롱글 올린 직원 고발
작성자 색출해 파면하겠다 엄포...하지만 직원 특정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입장
블라인드 측 "이메일은 가입 용도로만…이후 계정과 연결고리 파기해 데이터 없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원들의 제3기 신도시 투기 의혹으로 창사 12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LH 직원이 온라인 공간에 국민을 조롱하는 글까지 올리면서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LH를 비롯해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나서 작성자를 조사해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했지만, 업계는 작성자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LH는 14일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 회사 명예를 실추시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작성자 A씨를 명예훼손과 모욕,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수사기관에 고발했다. 이에 경남경찰청은 15일 진주경찰서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았으며 사이버수사대가 직접 수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그래픽=김한상 기자]


먼저 블라인드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로, 블라인드에 가입하려면 해당 회사 이메일 계정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A씨는 LH 직원일 것이란 의심을 강하게 받고 있다. 앞서 A씨는 지난 9일 블라인드에 LH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 비판이 일자 "아니꼬우면 (LH로) 이직하라"는 내용의 조롱성 글을 올렸다. 이어 "내부에서는 신경도 안 씀", "어차피 한두 달만 지나면 사람들 기억에서 잊혀진다", "난 열심히 차명으로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련다" 등의 글을 올려 국민적 공분을 샀다.

논란이 커지자 정세균 총리도 12일 "적절치 않은 글을 쓴 사람이 있다고 확인이 됐다. 내가 보기에도 참으로 온당치 않은 행태"라고 꼬집었다. 이어 "공직자들의 품격을 손상시키고 국민들에게 불편함을 더하는 행태는 용서받아서는 안 된다. 가능한 방법으로 조사해 책임을 묻겠다"며 조롱성 글을 올린 A씨를 향해 경고했다.
 
작성자 찾아내겠다는 LH···정말로 색출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LH와 정부의 바람대로 A씨를 색출할 수 있을까? 답은 '불가능'이다. 블라인드 운영사인 팀블라인드 관계자는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아예 저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서비스가 설계돼 수사 요청이 오더라도 전달할 수 있는 개인정보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블라인드는 한국과 미국·일본에서 특허를 출원했는데, 해당 기술은 이메일을 비롯해 가입자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서버에 남기지 않는 게 핵심이다. 네이버·티몬 출신인 문성욱 대표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 기술 특허를 따는 데만 5개월이 걸렸다"고 밝힌 바 있다. 문 대표에 따르면, 회원가입을 할 때 기입하는 회사 이메일은 재직자 확인과 중복 계정 방지 용도로만 쓰이고 이후에는 복구 불가능한 데이터로 바뀐다. 블라인드 측엔 게시물 작성자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보안 기술은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 유일한 정보는 갖고 있지 않은 정보뿐'이라는 블라인드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블라인드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란을 보면 "특허받은 암호화 로직으로 익명성을 보장한다. 블라인드 직원도, 대표의 며느리도 여러분이 누구인지 모른다. 회사 메일 데이터를 따로 저장하지 않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내용의 글이 있다.

이에 따라 LH가 청구한 '퇴사자 정보 삭제'도 기술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앞서 LH는 A씨에 대한 법적 조치와 함께 퇴사자 계정의 삭제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익명을 기반으로 한 블라인드에 퇴사한 직원이 현직처럼 사칭해 온라인에 음해성 글을 올리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게 LH 측 설명이다. LH는 "(A씨) 글을 포함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글이 무분별하게 유포돼 국민의 분노와 박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공사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LH 전·현직 직원 등에 대해 강력한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블라인드 측은 "특정 이메일에서 생성된 서비스 이용 계정을 파악할 수 없어 (LH 측 요청대로) 계정 삭제는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이메일 주소가 아닌 IP 주소를 통해 작성자를 잡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블라인드에 "경찰이 수사를 통해 (작성자) IP를 확보할 경우, 통신회사에 요청하면 누군지 잡아내는 건 시간문제"라고 글을 남겼다. 하지만 블라인드 측은 "IP주소를 비롯해 가입자를 특정할 수 있는 어떤 정보도 서버에 남기지 않고 있다"고 부언했다.
 

[사진=아주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