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기술패권 美中사이, 日의 접근법 참조하라

2021-03-09 19:24


[곽재원의 Now&Future] 미국과 중국 간의 기술패권경쟁이 경제안전보장이란 이름 아래 최대의 글로벌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미국은 계속 중국에 선제공격을 가하고 있다. 미·중 대립이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는 전쟁’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미·중 간에 새로운 양상의 서전(緖戰)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 3일 바이든 정권이 당면한 외교·안전보장정책의 지침이 될 국가안전보장전략(잠정판)을 발표했다. 경제와 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을 ‘국제질서에 도전하는 유일한 경쟁상대’로 위치시키면서 ‘새로운 국제규범과 합의를 형성하는 것은 미국’이라고 선언했다.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를 통해 중국에 대항한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이와 동시에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은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의 협력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개념도 밝히며 기후변화, 의료, 핵군축 등에서의 협력을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국가안보전략의 잠정지침에 따라 미국 연방정부 각 부처들은 구체적인 정책을 짜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지난 5일 2021~2025년의 제14차 5개년 계획 기간 중 연구개발비를 연평균 7% 이상 늘리겠다고 밝혔다. 리커창 총리는 이날부터 열리고 있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정부 활동보고에서 ‘과학기술의 자립자강(自立自強)을 국가발전전략의 기둥으로서 주축이 되는 기술개발의 공방전에서 승리한다’고 천명했다. 민관 총 연구개발비를 연평균 7% 늘려 5년간 40% 이상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중국의 2020년 연구개발비는 2조4400억 위안(약 424조원)을 기록했다. 10년 전의 3.5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중국의 연구개발비는 2009년 일본을 제친 후 현재 세계 최고인 미국에 필적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기초연구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은 지난해 9월 회의에서 “우리는 (반도체 등) ‘약점’의 기술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기초분야의 지연이 근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5개년 계획에서 2020년 현재 연구개발예산에서 6%에 불과한 기초연구비 비율을 전체의 80%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중국 정부는 중점적으로 육성할 기술분야로 차세대 인공지능(AI), 양자정보, 반도체, 뇌과학, 유전자·생물공학, 임상의학·헬스케어, 우주· 지구심부·극지관측 등 7개 영역을 꼽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방침에 따라 기초연구 10개년 계획을 수립한다고 한다. 정부의 재정 투입을 늘려 기업의 기초연구에서 우대 세제를 도입하고, 펀드를 설립할 계획이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 따르면 특허의 국제출원건수에서 중국은 2019년에 미국을 제치고 1위 자리를 차지했으며, 2020년에도 16% 늘어나 1위 자리를 지켰다. 기업별로는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가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중국 정부는 공급망(서플라이체인)의 정비도 추진한다. 미국이 중국의 약점으로 표적을 삼고 있는 반도체 분야에서는 재료와 제조설비 등의 기술개발에 주력해 미국의 제재에도 대응할 수 있는 ‘보다 안전하고, 보다 확실한 공급망’의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5개년 목표로 ‘국가경제안전보장을 강화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다. 이에 대해 기술정책 전문가들은 중국만이 첨단기술을 모두 갖추는 것은 불가능하고 비용 부담도 크기 때문에 과학기술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면 자칫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자유로운 발상이 요구되는 연구개발이 통제 분위기가 강한 중국의 체제하에서 잘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들은 이번 5개년 계획 발표에서 올 경제성장 목표치(6%)만 밝히고 시장 관계자들이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평균 성장률의 수치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1978년 개혁개방 후 수립한 5개년 계획에서 목표치를 보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명백한 수치로 표현한 연구개발비의 야심찬 확대와 경제성장률 목표치 보류의 이례적인 조치는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기술패권 의지를 확실히 드러내는 강온 양면의 ‘경연양양(硬軟両様)의 전략’으로 대미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호서대 글로벌 기술전략연구원의 김시행 전문위원은 “중국 당국이 트럼프 행정부 때 실시한 중국 유학생과 기술자 교류 제한 조치가 바이든정권 들어서 더 강화될지 모른다는 높은 불확실성을 인식하고 있다”며 “이런저런 이유로 미국의 경계심을 약화시키기 위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보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높은 목표치를 공표해 미국의 경계심을 높이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미·중간의 심화되는 기술패권 경쟁이 경제와 안전보장으로 나뉘었던 국제환경을 경제와 안전보장이 겹치는 경제안전보장 영역으로 넓어지게 하는 새로운 양상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예를 들면 반도체의 경우 민생부문으로서 스마트폰과 게임기기 등에 사용되지만 다른 한편으론 유도미사일과 레이더 등의 군사용도로 폭넓게 사용된다. 군과 민간부문에서 사용되는 반도체는 대표적인 경제안전보장영역에 속하는 기술이다.

경제안전보장 연구의 전문가인 무라야마 유조(村山裕三) 일본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는 ‘경제안전보장과 일본의 활로’라는 제하의 논문에서 경제와 안보 문제를 두 개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첫째는 경제에서 안전보장을 보는 방향이다. 이 분야는 ‘디펜스 이코노미’로 불린다. 안전보장문제를 경제학으로 분석하는 영역이다. 이와는 반대로 경제를 안전보장의 렌즈를 통해 보는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는 현재 관심을 모으는 ‘이코노믹 스테이트크래프트’ (국정운영기술; 경제적인 수단으로 자국의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함), 서플라이 체인의 의존문제 (안전보장상의 이유로부터 중요물자의 타국 의존을 회피한 공급망 만들기) , 범위를 더 넓히면 인프라 방어와 식료안전보장 등까지도 포함된다.

무라야마 교수는 경제안전보장 시대에 일본이 활로를 찾는 길은 ’전략적 불가결성‘의 활성화에 있다고 제언했다. 전략적 불가결성은 군민(軍民) 양면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첨단전략기술을 확보해 이를 미·중 기술패권경쟁 사이에서 살아가는 지렛대로 삼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이러한 기술들을 기반으로 동맹국들과 ’방위 서플라이 체인‘을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급격히 악화된 미·중 관계는 바이든 정부 출범 후에도 호전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양국 간의 기술패권경쟁은 경제안전보장 시대를 열고 장기간의 기술냉전시대를 예고한다. 코로나19 백신에서 이어지는 포스트 코로나 팬데믹 시대를 상징할 또 하나의 글로벌 리스크다. 양대국의 일거수일투족을 우리의 시야에 넣고 주시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을 뒤쫓는 일본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정세를 파악하고 대응해 나가는 자세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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