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 개혁] ①정인이·이용구 사건으로 드러난 경찰 숙제들

2021-02-15 08:00
3번이나 아동학대 신고 묵살
이용구 사건 '정의공백' 지적

김창룡 경찰청장이 지난달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정인이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권 권력기관 개혁 일환인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 된 지 한 달 보름이 지났다. 이 기간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나 이른바 '정인이' 사건 등을 두고 경찰은 거센 질타 대상이 됐다. 수사권 조정 이전에 발생한 사건이지만 하드웨어만이 아닌 소프트웨어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경찰 등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31일 김창룡 경찰청장은 '2021년 신년사'에서 수사권 조정은 1945년 창경과 1991년 경찰청 독립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전환점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시행 1개월 보름이 흐른 지금 경찰 1차 수사종결권 확보가 연착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자료를 보면 지난달 1~31일 경찰 처리 사건 6만7508건 가운데 경찰이 종결권을 발휘해 불송치 결정을 내린 사건은 1만9543건이다. 이 가운데 검찰이 재수사를 요청한 사건은 310건(1.58%)뿐이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 이전에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근본적인 경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이용구 차관 사건 무마 의혹과 정인이 사건 대처 미흡, 고(故) 박원순 전 서울특별시장 수사 결과 등 끊임없는 헛발질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경찰 전문성' 부족했던 정인이 사건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 양을 학대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지난달 13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양부 안 모 씨가 재판을 마치고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 청장은 지난달 6일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10월 13일 서울 양천구에서 발생한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망 사건 이전에 양천경찰서가 3번이나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도 묵살한 데 대한 사과다.

김 청장은 초동 대응과 수사 과정에서 미흡한 점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했다. 반복 신고가 들어왔음에도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어서다. 학대 혐의자에 대한 관리 소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경찰이 생각보다 전문성을 확보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인 아동과 학대자인 부모를 바로 분리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인식조차 없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당시 경찰이 아이와 부모를 즉시 분리해야 한다는 상황 인지능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도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승 박사는 "경찰이 아동복지법상 '재량권을 갖고 분리할 수 있다'가 아니라 '분리해야 한다'로 문구를 바꾸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아동학대 문제에 경각심을 갖고 경찰청 차원에서 인력과 지원을 해야 한다고도 제시했다.
 
피해자 아닌 '가해자' 입장서 판단한 이용구 사건

이용구 법무부 차관이 지난 9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로 출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인이 사건 관련 사과를 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경찰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11월 이 차관이 자신을 깨우려던 택시기사를 폭행한 사건 관련 당시 블랙박스 영상을 묵살하려 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당시 서울 서초경찰서 담당 수사관이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고도 덮었다는 점이 드러나 국수본 직무대리 최승렬 수사국장이 직접 사과했다.

사건 진상조사와 검찰 수사 결과가 아직 나오지는 않았지만, 당시 경찰 고위층이 연루됐다는 의혹은 아직 잠잠해지지 않은 상태다.

승 박사는 경찰이 가해자 시각만 갖고 있어 생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흔히 검찰이 기소권을 남용한다는 비판을 받았을 때 나오는 말이 인권침해인데, 경찰이 불기소권을 남용하는 건 '정의의 공백'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택시기사 시각에서 접근했다면, 경찰이 이런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승 박사는 "수사기관에서 최종 법원 판단까지 내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결국 가해자 입장만 생각해 내놓은 수사 결과로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경찰이 법적 판단은 하는 것은 맞지만, 재판 단계까지 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