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美 "레드라인 넘으면 봉쇄" 中"신냉전 부추기는 망상"

2021-02-07 20:03
중국 뒤집어놓은 미국 "시진핑 교체 보고서"

 

 



‘The Longer Telegram’, ‘America’s place in the world’ 놓고 티격태격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環球時報 · Global Times) 기자가 지난 1일 중국 외교부 기자회견장에서 왕원빈(汪文斌) 대변인에게 질문을 던졌다.
“미 어틀랜틱 카운슬은 일전에 익명으로 발표한 중국에 관한 보고서에서 중국에 대한 냉전을 책동했다. 이 보고서는 조지 케넌의 ‘Telegram’과 비교해서 ‘The Longer Telegram’이라고 칭했다. 이에 대한 논평은?”

왕원빈 대변인의 대답은 이랬다. 
“이 보고서는 익명이라는 형식으로 발표됐다. (미국내) 일부 인사들의 어두운(陰暗) 심리와 나약(懦弱)한 마음가짐을 폭로한 것이다. 현 세계에서 ‘신냉전’을 부추기는 의식형태는 시대조류를 거스르는 움직임으로, 인심을 얻지 못할 것이다. 중국에 대해 정권교체를 하겠다고 떠들어대고, 중국을 봉쇄하겠다고 떠드는 것은 더욱더 바보같은 망상에 불과하다.”
왕 대변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어틀랜틱 카운슬의 익명의 보고서건, 폼페이오 류(流)의 중국공산당에 대한 비방과 공격이건, 모두가 거짓말과 루머로 이루어진 ‘황당 발언록’이요, ‘음모론’이다. 중국공산당은 인민들의 행복을 위해, 민족의 부흥을 위해, 세계의 대동단결을 위해, 광명이 빛나고, 도(道)에 맞는 일들을 한다. 루머로 먹칠한다고 중국의 전진을 가로막을 수는 없다.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중국의 정치제도를 바꾸려는 기도는 중국 인민들의 정면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어틀랜틱 카운슬은 2차 대전 직후 미국과 유럽의 국제문제에 대한 견해를 조율하기 위해 조직된 협의회로, 워싱턴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2009년 카운슬 회장이었던 제임스 존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 발탁 됐고, 후임 회장 척 헤이글 상원의원은 오바마 행정부의 국방장관이 됐다. 이후 공화당 소속의 제럴드 포드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가 보드 디렉터를 지냈고, 후임자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대사로 보냈던 존 헌츠먼이 지명됐다. 어틀랜틱 카운슬은 민주당과 공화당 어느 정당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기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어틀랜틱 카운슬이 1월 28일 발표한 ‘The Longer Telegram’은 표지에 진시황릉의 황토색 토용 사진을 커다랗게 실었고, 작성자는 ‘Anonymous(익명)’이라고 표시했다. 서문에서는 “중국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고있는 전직 정부 고위관리들이 작성했다”고 설명했고, “소련에 대한 그랜드 전략에 대해 작성된 1946년 조지 케넌의 ‘long telegram’과 비교될 수 있도록 ‘The Longer Telegram’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했다. 소련(U.S.S.R.) 주재 미국 대리 대사였던 조지 케넌이 작성해서 미 국무부로 보낸 전문 ‘long telegram’의 골자는 “미국 안보를 위해 소련을 봉쇄하면 소련은 내부에서 붕괴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보고서는 1947년 7월 미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Mr. X’라는 가명으로 공개됐고, 이후 미국의 소련정책 기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보고서였던 것으로 평가됐다.

‘The Longer Telegram’의 내용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현 중국 최고 권력자 시진핑(習近平) 체제를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한 부분이다. 보고서는 결론 첫 문장에서 “시(習)를 적절한 시기에 보다 전통적인 공산당 지도체제로 교체하는 전략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을 아무런 이유도 없다”고 했다. 시를 교체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그는 중국을 고전적인 마르크시즘-레니니즘 국가로 되돌려놓았을 뿐 아니라, 마오쩌둥(毛澤東)과 유사한 개인숭배를 조장해서 자신의 정적들에 대한 체계적인 제거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시진핑은 중국이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등 전임자들이 그동안 추진해온 시장경제 개혁을 중단시키고, 민간부문을 당의 직접 통제 아래 두도록 만들고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위에 대한 국내외 도전에 맞서 중국을 단결시키기 위해 ‘인종적 민족주의(ethnonationalism)’을 채택해서, 다루기 힘든 국경지대의 소수민족들에 대해서는 대량학살(genocide)을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시진핑이 이끄는 중국은 “21세기의 미국에 가장 주요한 도전이며, 중국의 굴기(rise)는 그 경제 규모나 군사력 규모, 기술진보의 속도로 보아도 미국의 국익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고 보고서는 적시했다. “그런 중국의 도전은 최근 20년 동안 점차로 확대되어왔으며, 시진핑이 권력을 쥔 다음 이 도전은 더욱 가속화 되어왔다”고 했다.

보고서는 특히 중국이 다음의 다섯 가지 ‘레드 라인(red line)’을 넘을 경우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 고위 외교 채널을 통해 베이징에 분명한 경고를 전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중국이 핵무기나 화학 생물 무기로 미국이나 동맹국들을 공격하려 할 경우, 또는 북한이 그런 행동에 나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결정적인 행동을 중국이 취하지 않을 경우.
●중국군이 대만에 대해 군사공격을 하거나 경제 봉쇄, 사이버 공격을 할 경우.
●센가쿠 제도에 배치된 일본군에 대한 중국군의 공격이나, 동중국해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대한 공격.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군사적 적대 행동을 하거나, 미국 군함의 자유항행을 저지하기 위해 중국이 군사력을 배치할 경우
●미 동맹국들의 영토나 군사시설에 대한 중국의 공격이 있을 경우

물론 어틀랜틱 카운슬의 보고서 내용을 바이든의 미 행정부가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이 보고서에 대해 “(미국내) 일부 인사들의 어두운(陰暗) 심리와 나약(懦弱)한 마음가짐을 폭로한 것”이며 “중국을 봉쇄하려는 것은 바보 같은 망상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사전 경고 의미를 담은 조치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The Longer Telegram에 대해서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과는 달리 이 보고서 발표 1주일 뒤인 4일 있었던 바이든 대통령의 최초 외교정책 연설에 대해서는 온건한 반응을 보였다. 미 국무부 트루먼 빌딩에서 있었던 바이든 대통령의 외교정책 연설은 ‘America’s place in the world(미국의 세계적 위치)’라는 제목으로, 그리 길지도 않았다. 중국을 “우리 미국의 가장 심각한 경쟁자(most serious competitor)”로 표현하면서 “중국이 우리의 번영과 안전, 그리고 민주적 가치에 직접적인 도전을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미국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 대해 베이징과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말했다.

바이든의 외교정책 연설에 대해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은 5일 기자회견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평화 발전과 윈윈 협력은 현재의 시대 조류이다. 중국은 세계 평화의 건설자이자 전 세계 발전에 대한 공헌자, 국제질서의 수호자이다. 중국의 발전은 곧 세계 평화 역량의 증가를 뜻한다. 중국은 각국과 우호협력관계를 적극 발전시킬 것이며, 신형 국제관계를 건설해서 인류 운명 공동체를 건설할 것이다.”

2017년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전에 당시 오바마 대통령 정부의 부통령이던 바이든을 다보스에서 만났던 시진핑 국가주석은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신형 대국(大國)관계”를 국제질서의 흐름으로 제시했었다. 이번에 왕원빈 대변인은 “신형 대국관계”라는 말을 “신형 국제관계”라는 말로 바꾸어놓았다. 4년 전 바이든에게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를 구축하자”고 했던 시진핑은 1월 25일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는 “다자(多邊)주의의 횃불로 인류의 앞날을 밝히자”라고 강조했다. ‘신형 대국관계’라는 표현을 ‘다자주의’라는 말로 바꾸어놓았다. 중국이 상대해야 할 대상을 대국인 ‘미국’에서 ‘국제사회의 다자(多者)’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어틀랜틱 카운슬의 보고서 The Longer Telegram은 특히 우리와 관련해서는 “한국이 중국에 대해 전략적으로 표류(drift)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일본과 한국의 관계 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보고서의 표현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중국을 향해 전략적 표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의 전화통화는 1월 26일에 이뤄졌고, 문 대통령과 바이든의 통화는 9일 후인 지난 2월 4일에야 이뤄졌다.

바이든 정부의 첫 국무장관 토니 블링컨과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원 양제츠는 2월 6일 이뤄진 첫 미·중 외교 접촉에서 대만문제,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 문제, 홍콩문제, 티베트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 대해 “내정간섭이다”, “민주적 가치에 대한 지원이다”로 맞서며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앞으로 미·중 충돌이 본격화 될 경우 우리는 과연 어디로, 어디까지 표류해가게 될까.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