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캔맥주 잘 나간다고요?... 영세 업체들은 '생사기로'

2021-01-18 00:05
오프라인 펍 영업제한에 수제맥주사 매출 ‘뚝’
“감소 폭 어림잡아도 50% 이상”...중간도매상, 제조사 도미노 위기
정부는 물가연동제 적용해 주세 인상 움직임
업계 “코로나로 왼쪽 뺨 맞고, 세금에 오른쪽 뺨 맞아”

“몇몇 수제 캔맥주가 전국 편의점에 입점하면서 신규 수익원을 만들고, 투자도 많이 받고 있지만, 편의점 유통망을 갖추지 못한 영세 수제맥주 업체는 코로나19로 생사기로에 서 있어요. 최대 매출처인 펍(Pub)이 영업제한을 당하면서 수제맥주 소비량이 크게 줄었고, 매출도 바닥이라 초상집 분위기 입니다.”(업체 관계자)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하면서 국내 150여 개 수제맥주 회사들이 매출 급감에 폐업 위기에 놓여 있다. 오프라인 맥주집은 2차 회식 자리로 주로 이용되는데, 매장 운영을 오후 9시까지 밖에 할 수 없어 판매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펍의 맥주 소비량이 줄어들자 발주 물량이 줄고, 중간 도매상까지 도미노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수제맥주 업체의 정확한 매출 통계는 잡히지 않고 있지만, 업계에선 어림잡아도 50% 이상 급감했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보통 펍은 오후 5시에서 새벽 2시까지 영업하는데, 오후 9시 이후에는 문을 닫아야 하니 영업시간만 따져도 반토막 매출이라는 설명이다. 더군다나 펍에는 허기를 채운 뒤 2차로 찾는 손님이 많고, 연말·연초 특수까지 고려한다면 체감하는 타격이 더 크다.

한 수제맥주 업체 관계자는 “펍이 주요 매출처인 수제맥주사들은 기본적으로 매출이 50% 이상 떨어졌다고 보면 된다”며 “펍에서 주류가 소비돼야 중간 도매상에게 발주를 넣고, 수제맥주 제조사들이 매출을 발생시키는데, 모두가 힘든 상황이다. 요즘에는 주 5일이 아니라 주 2일 근무하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캔 수제맥주를 만들어 편의점에 입점한 업체들의 사정은 그나마 낫다. 이들 업체도 펍을 통한 매출이 줄었지만, 제주맥주, 카브루 등은 편의점에서 안정적으로 판매되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편의점 캔맥주를 찾는 수요가 많아지자 이들 업체는 벤처캐피탈로부터의 투자 유치도 활발한 상황이다.

 

[서울 시내 한 편의점 맥주 코너. '4캔의 만원' 행사를 하는 해외맥주 사이에 수제 캔맥주가 진열돼 있다.(사진=신보훈 기자)]


코로나19 위기는 수제맥주 업계에 특히 더 야속하다. 호재가 있을 때마다 외부 요인에 성장이 발목 잡혀 결국 폐업에 이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수 년 전부터 해외맥주가 ‘4캔에 1만원’ 프로모션으로 국내 캔맥주 시장을 잠식해 나갈 때 업계는 주류세 개편을 건의했지만, 2018년 종량세 도입안이 무산되면서 한 차례 좌절했다. 이듬해 지속적인 입법 노력으로 세법 개정안이 통과되고, 일본 맥주 불매 운동까지 더해져 국내 수제맥주가 기지개를 켜나 했지만, 지난해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났다.

지방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다수 영세 업체는 전국 유통망을 갖추지 못해 지역의 특색 있는 펍에 서 판매량을 늘려왔다. 지역 관광 상품과 연계한 수제맥주를 취급해 관광객 대상 판매 비중이 절대적이었는데, 관광 산업이 위축되면서 직격탄를 맞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주세 인상도 예고돼 있다. 기획재정부는 오는 3월 물가연동제에 따라 맥주에 붙는 주세를 1ℓ당 830.3원에서 834.4원으로 올릴 예정이다. 맥주 생산량이 적은 업체의 경우 주세의 40%만 적용받는 차등제가 존재하지만, 주세 인상은 결국 원가 부담으로 다가와 경영을 더 힘들게 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 관계자는 “새해부터 다들 초상집 분위기다. 수제맥주 업체에는 정부 지원금도 없어서 규모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수제맥주의 기본 가치는 다양성인데, 매년 수십 개의 신제품을 테스트하고 시장에 출시했던 과거와 달리 지난해에는 신제품 출시가 거의 없었다”며 “가뜩이나 코로나19로 왼쪽 뺨을 맞았는데, 주세로 오른쪽 뺨까지 맞게 됐다. 백신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이미 소비자 트렌드가 캔수제맥주와 편의점 유통으로 바뀌고 있어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