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로 1000조된 신탁시장…전문 법 필요"

2021-01-12 19:02
김광수 회장의 신탁업법 필요論
작년 수탁총액 1055조…7년만에 2배↑
일본, GDP의 240%…한국은 50% 불과
수탁가능재산 확대…포괄주의로 전환
부동산·증권 등 '합동운용'도 허용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진]


김광수 은행연합회장은 "세계적으로 신탁업이 발달한 국가 중 하나가 일본"이라면서 "여러 제도 개편이 뒷받침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구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수요가 많아지는 신탁 시장을 키우려면 우리나라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며 "신탁업법 제정이 그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日 신탁규모 GDP의 240%··· 韓은 50% 불과
신탁은 재산을 금융사에 맡겨 보관 및 관리·운용하도록 하는 제도다. 돈(금전)을 맡기는 것은 금전신탁, 부동산과 같이 돈 이외의 재산을 수탁하는 것은 재산신탁이다. 신탁을 통해 고객은 각종 자산의 전문적인 관리가 가능해지고, 금융사는 수수료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선진국은 신탁을 저금리·고령화 시대의 대응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의 신탁시장 규모도 빠르게 확대해 왔다. 12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은행, 증권, 보험, 부동산전업신탁사의 수탁총액은 지난해 10월 말 기준 1055조원이다. 신탁시장은 2017년 말 775조원에서 2018년 말 873조원, 2019년 말 969조원 등으로 확대되는 추세다. 신탁시장이 500조원 규모에서 1000조원으로 2배 성장하는 데는 약 7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시장 성장 속도는 빠르지만 절대적인 규모는 선진국보다 작은 수준이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신탁시장은 2019년 말 기준 1205조6000억엔(약 1경3500조원)으로, 일본 GDP(국내총생산)의 240%에 달한다. 2004년 신탁업법 개정을 통한 '포괄주의' 전환, 2006년 신탁법을 개정하며 수익자연속신탁·유한책임신탁·수익증권발행신탁 등 새로운 신탁제도를 도입한 결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반면 2019년 한국의 GDP가 1919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국내 신탁시장은 GDP의 약 50%에 불과한 수준이다.
 

[그래픽=아주경제]

"포괄주의 전환·합동운용 허용해야"
업계 관계자들은 신탁업을 규정한 자본시장법이 국내 시장 성장을 가로막는 주된 요소라고 입을 모은다. 금융투자업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된 자본시장법으로 신탁을 규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재산신탁은 금융투자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데도 자본시장법 규제를 받는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재산신탁 규모는 524조원으로 전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

자본시장법이 규제 일변도인 탓에 신탁상품을 개발하기도 어렵다. 자본시장법은 수탁가능재산을 금전·증권·금전채권·동산·부동산·부동산 관련 권리·무체재산권 등 7종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른바 '열거주의' 규제다. 은행권 관계자는 "담보권이나 보험금 청구권 등을 활용한 새로운 신탁을 만들 수조차 없다"며 "수탁 가능한 재산 범위를 제한하지 않는 '포괄주의'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2004년 신탁업법을 개정해 포괄주의로 전환했고, 지식재산권 등도 맡길 수 있도록 수탁 가능한 재산 범위를 대폭 넓혔다.

국내에서는 '합동운용'도 금지돼 있다. 금전재산, 부동산재산, 증권재산 등 여러 재산을 한데 모아 운용할 수 없다는 의미다. 종합재산신탁의 경우에만 금전 비율이 40% 이하일 때 합동운용을 허용하고 있다. 최근 인기가 많은 유언대용신탁도 다양한 재산을 조금씩 수탁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꺼번에 운용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은행권 신탁업무 담당 책임자는 "2009년 원금 비보장 상품을 통합 관리하고 소비자 보호를 강화하고자 자본시장법이 제정됐고, 기존 신탁업법이 자본시장법에 흡수된 후 폐지됐다"며 "그러나 신탁 상품은 원금 보장 여부를 가르기 어려운 데다, 다양화하는 신탁 수요에 맞춰 상품을 개발하고 수탁재산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선 신탁업법 제정이 필수적"이라며 "신탁업법을 별도 제정하더라도 금융투자상품 등이 신탁재산에 포함될 경우, 해당 신탁재산의 소비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자본시장법 등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