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이끄는 '리플레이션 트레이드'…인플레 역습 주의해야

2021-01-11 17:19

리플레이션(reflation) 트레이드가 돌아왔다. 경기회복·물가상승 기대를 전제로 한 금융시장의 거래를 뜻하는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는 지난주 미국 금융시장을 가장 뜨겁게 달군 키워드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주 미국 국채 수익률은 1%를 돌파했다. 안전자산인 국채에서 투자금이 이탈했다는 뜻이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도 변화는 감지된다.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가치주와 소형주 등 리플레이션 시기 각광을 받는 주식들로 자금 이동이 빨라졌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민주당이 백악관은 물론 의회 상·하원까지 장악하는 '블루웨이브'와 함께 시작된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를 자극했다고 분석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이든 행정부의 재정 확대에 전 세계 실물경기와 물가가 함께 상승하면서 자산시장 내 판도 변화는 피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리플레이션이란? 

리플레이션은 통화재팽창을 뜻한다. 불황기에 과도한 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도록 재정·금융을 확대해 경기 회복을 꾀하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정부가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할 경우, 물가 급등이 발생하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제가 급격하게 위축한 상태에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리플레이션 정책으로 위기 극복에 나섰다. 수많은 상점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속출하는 상황을 가만히 두고보다가는 디플레이션의 함정에 빠질 것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정부·중앙은행이 총력전을 펼치는 가운데, 전 세계인이 기다리던 낭보가 전해졌다. 화이자를 비롯해 아스트라제네카·모더나 등 제약회사들이 지난해 11월 백신 개발 성공 소식을 전한 것이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빠르게 높아졌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투자 보고서에서 2021년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5.9%에서 6.4%로 높여 잡기도 했다.

여기에 민주당 정권은 수조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약속하고 나섰다. 시장으로 돈이 쏟아져 들어울 수밖에 없다. 중앙은행인 연준 역시 경기회복의 '명확한' 신호가 보이기 전까지 초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자산 매입도 당분간은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계속 높아지는 이유다. 

◆3박자 맞은 시장··· 꿈틀대는 물가 

이처럼 정치·경제·보건 3박자가 맞아들어가서 시장의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는 확산하고 있다.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자산들은 상승세를 이어가게 된다. 반대로 이른바 안전자산으로 불리는 국채나 인플레이션 헤지가 되지 않는 자산의 가격은 하락한다.

최근 미국 장기국채의 매도세가 커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국 10년물 국채의 수익률은 지난주 1%대를 뚫은 이후로 상승세를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일 뉴욕거래소에서 10년물 미국 국채의 상승률은 1.119%까지 올랐다. 수익률과 반대로 가는 국채의 가격은 하락했다는 뜻이다. 대선 전인 지난해 10월 미국 10년물 국채의 수익률은 0.7%대였다. 지난 3개월간 미국 국채 수익률 상승폭은 무려 43%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국채 수익률은 당분간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연준이 금리인상 흐름을 막기 위한 조치를 당분간은 취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지난 8일 리처드 클라리다 연준 부의장은 "10년물 국채 금리의 1%대 급등이 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우려하지 않는다"면서 “(국채 금리 상승을) 걱정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시장의 향후 인플레이션 기대감을 나타내는 미국의 10년물 BER(10년 명목 국채와 같은 만기의 물가연동국채(TIPS) 격차)은 2.10%를 넘어섰다. 2018년 이후 최대다. 2년물 BER은 더 높다. 

향후 BER은 이번 주 발표되는 소비자물가지수(CPI)에 따라 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전망치는 1.3%로 여전히 연준의 목표치보다는 낮다. 다만 예상을 뛰어넘을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치는 더욱 상승할 수 있다. 

앞서 발표된 제조업 PMI에서, 가격지수가 65.4에서 77.6으로 급등하면서 2018년 여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공급자 물가의 이 같은 상승세는 경기회복 뒤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하락하는 국채와는 달리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원자재는 지난주 급등세를 보였다. 원유를 비롯해 구리, 곡물과 같은 원자재는 물론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의 급등도 인플레이션 기대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처럼 인플레이션이 꿈틀대면서 시장은 연준의 채권 매입 태도 변화에 집중하고 있다. 라파엘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는 풀었던 자금을 다시 거둬들이는 테이퍼링이 예상보다 일찍 올 수 있다고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러나 클라리다 부의장은 올해 자산매입 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시장은 물가상승 속도에 따라 연준의 태도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물가상승 압력이 강해지면서 시장에서는 OIS(overnight index swap) 1개월 포워드 커브에 반영된 미국 기준금리 예상 경로는 2~3년 구간이 10bp 정도 올랐다. 연준은 2023년까지는 금리를 올리지 않겠지만, 시장은 이에 앞서 금리인상 시기가 올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예상보다 빠른 테이퍼링은 한껏 높아져 있는 위험자산 가격에 타격을 줄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지금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인플레이션 속도에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국채금리 상승에 가치주 관심 집중 

국채금리 상승은 주식시장의 향후 판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차기 바이든 정부가 경제회복을 우선으로 내세우면서, 주식시장은 블루웨이브에도 불구하고 견고한 상승세를 이어갔다. 다만 리플레이션 트레이드의 성향이 강해지면서 '중소형 가치주'가 주목을 받았다.

섹터로는 '에너지, 금융, 소매, 산업재'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블룸버그는 이외에도 코로나19 당시 소외받았던 여행, 항공주들도 향후 상승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와는 별개로 바이든 정권 공약인 신재생에너지 등도 강세를 보였다. 

다만 장기금리의 상승에 따른 밸류에이션 부담으로 지금까지 시장을 이끌었던 성장주의 상승 여력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최근 인터넷 대형 기술주들의 오름세가 주춤했던 것도 국채 금리 상승과 궤를 같이한다.

앞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과한 뒤 소형주와 가치주들은 크게 상승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는 물가상승과 경제성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얼마 못 가 힘을 잃었다.

리플레이션 트레이드에서 주목 받고 있는 또 다른 시장 중 하나가 이머징마켓이다.

약(弱)달러 속에서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 부채가 막대한 신흥국들의 자본조달 비용이 줄어들게 된다. 손버그 인베스트먼트 인컴 빌더 펀드의 벤 커비 공동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8일(현지시간) CNBC에 출연해 "이머징마켓은 지금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이머징마켓은 지난 분기까지 몇 년 동안 저조한 움직임을 보였지만, 최근 강세장 속에서 상대적 우위를 보인다"고 진단했다. EEM 이머징마켓 상장지수펀드(ETF)는 2007년 이후 수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5% 오르면서 S&P 500의 2% 상승을 앞지르고 있다. 

커비 매니저는 "가장 큰 이머징마켓인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긴장 잔존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라면서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긴장은 계속되겠지만, 트럼프 시대에 비해 바이든 체제가 되면 양국의 관계는 비교적 나아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금융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돼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시장 가격은 이미 팬데믹의 종식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감염자의 숫자는 줄지 않고 있다. 백신 배포도 아직은 초기 단계다.

블룸버그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는 만큼,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가 현실화하지 못하는 리스크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 상황의 개선이 전제되지 않는 한 리플레이션 트레이드도 실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