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노동계 모두 불만 ​'누더기' 중대재해법, 오늘 본회의 처리

2021-01-08 00:00
5인 미만 사업장, 적용 제외
노동계·정의당 "법 취지 퇴색, 졸속 누더기법 만들었다"
경제계 "지킬 수 없는 과도한 의무, 기업들은 공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법 법사위 법안심사소위 논의 규탄 및 온전한 법 제정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과 함께 기업규제 악법으로 불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법) 제정안이 8일 국회 본회의에 오른다. 여야가 가까스로 중대재해법 처리에 합의했지만, 재계와 노동계 등에서 강력 반발하면서 향후 법 시행까지 적잖은 난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노동자 사망 땐 CEO '1년 이상' 징역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는 7일 중대재해법 제정안을 의결했다. 정의당이 지난달 11일 중대재해법 처리를 위한 단식 농성에 돌입한 지 27일 만이다.

중대재해법은 산업현장에서 일어난 중대 재해를 방지하지 못한 사업주와 경영진에게 형사처벌 및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당초 중대재해법은 후진국형 비극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란 기대가 컸다.

그러나 국회가 최종 합의한 제정안을 두고 노동계와 경제계가 모두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당초 구상한 법에서 독소조항이 대거 삭제되거나 완화돼 취지가 퇴색했다고 비난했으며, 기업들은 중대재해법 제정 자체가 결국 기업을 옥죌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법안소위가 의결한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당초 정부안이었던 '2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 규정에서 징역형의 하한선을 낮추고, 벌금형은 하한을 없애는 쪽으로 완화됐다. 다만 법원의 재량에 따라 징역형과 벌금형을 함께 부과하는 '임의적 병과'를 가능하게 했다. 법인이나 기관의 경우 50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노동자들이 여러 명 다치는 산업재해(부상 및 질병)가 발생한 경우에는 경영책임자가 7년 이하 징역이나 1억원 이하 벌금형을, 법인이나 기관은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게 된다.

경영책임자의 범위는 대표이사 또는 안전관리이사로 정해졌다. 경영책임자의 의무는 '안전·보건조치'다. 원청(도급업체) 공동책임 범위는 임대가 빠져 도급, 용역, 위탁으로 정리됐다. 법이 시행되면 중대재해가 발생한 하청업체가 소상공인이거나 유예 대상이라도 원청업체는 위반 여부에 따라 처벌 받을 수 있다.

◆'50인 미만' 사업장 3년 유예

핵심 쟁점이었던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유예기간이 3년으로 주어졌다. 당초 정부는 이를 4년으로 하는 안을 제시했지만 1년이 단축됐다. 또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아예 제외했다.

안전 의무 위반 사실이 5년간 3회 이상 확인된 경우 등을 중대재해 원인 제공자로 규정하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은 삭제됐다. 대신 중대재해 형이 확정된 후 5년 이내에 다시 죄를 저지르면 가중 처벌토록 했다.

공무원 처벌 내용도 삭제됐다. 공무원이 가진 인·허가권이 중대재해의 원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가 어려워 처벌 역시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안에서 빠졌던 중앙행정기관장과 지방자치단체장은 다시 처벌 대상에 포함됐다. 정부와 지자체만 법망을 피하게 됐다는 비판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이외에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중대재해를 발생시켰을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를 배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

중대산업재해와 함께 대형 참사로 규정짓는 ‘중대시민재해'도 처벌 대상이다. 중대시민재해 역시 경영책임자와 법인이 같은 수위로 처벌을 받는다. 다만 근로자 10인 미만의 소상공인이나 면적 1000㎡ 미만인 다중이용시설은 처벌대상에서 빠진다. 학교와 시내버스·마을버스도 제외 대상이다.

중대재해법이 법사위 문턱을 넘었다는 소식에 경제계와 노동계는 각각 격분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정치적 고려만을 우선시해 경영계가 요청한 사항은 대부분 반영되지 않아 유감스럽고 참담하다”며 “의결된 제정안은 법인에 대한 벌칙 수준이 과도하며, 주의의무를 다한 경우에 대한 면책 규정도 없다. 현실적으로 지킬 수 없는 과도한 의무로 기업들은 공포감에 떨게 됐다”고 반발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5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재해 사망이 전체의 20%를 차지한다"며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해 고용‧임금‧복지 등 모든 조건에서 차별받는 상황에서 죽음마저도 차별을 당할 처지에 내몰렸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역시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재해 살인 방조 합의는 재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