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다 경제·방역 둘 다 놓쳐…‘백신 수급 지연’ 논란 확산일로

2020-12-23 17:08
文대통령 발언·靑 해명이 오히려 野 공세 빌미
백신 확보 전략 실패·복잡한 방역지침도 문제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5부요인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수급 지연에 대한 논란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며 설명했지만, 오히려 비난 여론은 더 거세지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23일 코로나19 백신 확보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론을 집중적으로 부각하며 공세를 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7개 회원국 중 우리나라의 백신 확보 수준이 34위로 거의 꼴찌”라며 “(백신 계약) 골든타임 다 놓치고 서로 책임 전가하고 어영부영하다가, 문제가 되자 청와대는 부랴부랴 물량 확보를 강조했다고 둘러대지만 결과는 참담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러니까 중요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고구마처럼 침묵하고, ‘내로남불형 유체이탈 화법’으로 중요 발언에 영혼의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고 강준만 교수로부터 호평을 받는 것 아니겠나”라고 꼬집었다.

그는 전날 5부 요인 청와대 초청 간담회에 대해서도 “대통령이 코로나 백신 문제로 나라가 거의 비상사태인 시기에 하루 전에 연락해 대법원장과 헌재소장을 부른 것도 잘못됐지만 독립된 헌법기관장이 대통령이 부른다고 아무런 고려 없이 달려간 것도 한심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윤 총장을 쫓아내는 데 쓰는 안간힘을 백신을 구하는 데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박병석 국회의장,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정세균 국무총리,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5부 요인 청와대 초청 간담회에서 미국 등 백신 생산국이 먼저 접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우리도 예정대로 수급하기 위해 노력은 하겠지만 백신 생산국이 아니어서 백신 확보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싱가포르 등 백신 생산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들도 연내 접종에 나서면서 발언 진의를 놓고 공방이 벌어졌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청와대가 동안 K-방역 성과 홍보에 너무 치중한 것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주요 20개국 화상 정상회의와 각종 공식 회의에서 방역 성과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려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이례적으로 전날 “백신의 정치화를 중단해달라”며 문 대통령의 비공개 참모회의 발언들까지 공개하는 등 반박에 나섰지만 오히려 야당 공세의 빌미를 줬다.

실무적으로는 정부가 국내에서 위탁생산을 하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확보에 치중하는 등 전략적 판단 미스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화이자·모더나와 같은 외국 생산 백신 확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고육지책이었다는 점을 감안하고서도 말이다.

이재갑 한림대 감염내과 교수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아스트라제네카가 지난 10월에 임상시험을 끝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중간에 멈추면서 12월로 미뤄졌다”면서 “그 사이 화이자·모더나가 캐치업을 하며 역전됐기 때문에 정부 판단에 상당히 어려움을 줬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청와대가 백신 태스크포스(TF)에서 손을 뗐다’는 취지의 보도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출입기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지난 4월 24일 출범한 코로나19 치료제·백신 범정부위원회는 그동안 백신 개발과 도입을 논의하고 추진해왔다”면서 “범정부위원회에는 청와대 사회수석이 계속 참여해왔다”고 밝혔다.

한 매체는 지난 6월 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도해 백신 TF팀을 구성됐지만, 구성 단계에서 청와대는 빠지고 TF에는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의 실무자들만 남았다고 보도했다.

정부의 방역 지침 역시 현장에서는 너무 복잡하다는 의견이 많다. 정부가 지난달 중소 자영업자들의 막대한 사회·경제적 피해를 우려해 2단계를 유지하면서 시설별 조치만 추가로 강화하는 ‘2단계+α’ 조치를 도입했다가 효과가 없자 결국 뒤늦게 2.5단계로 높였지만 이미 시작된 코로나19 확산세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5인 이상 사적 모임 금지’ 기준을 둘러싼 혼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방역과 경제를 둘 다 잡겠다는 애초의 계획이 틀어졌다”면서 “국민들이 원하는 대통령의 말은 진정성 있는 사과와 실효성 있는 조치인데 최근 일련의 발언들은 국민정서에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