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동원그룹 미래 50년은 인공지능으로 승부해야 한다.”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이 회장 재임 시절 꾸준히 강조해온 말이다. 김 명예회장은 AI 사업 육성에 대한 의지가 남달랐다. AI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임직원에게 권하며 토론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4월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AI 인재양성과 기술 확보의 고삐를 바짝 죄었다.

동원그룹 계열사인 동원산업이 작년 한양대에 30억원을 기부해 국내 최초의 AI솔루션센터인 ʻ한양 AI솔루션센터ʼ를 설립한 것도 김 명예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

동원그룹은 2019년 그룹 차원의 태스크포스팀(TF)을 구성해 전 계열사에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RPA) 프로젝트를 도입했다. 올해엔 KT가 주도하고 있는 AI 기술 산학연 협의체인 AI원팀에 합류했다.

김 명예회장의 AI에 대한 깊은 관심은 후학 양성으로 옮아갔다. 김 명예회장은 16일 사재 500억원을 출연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쾌척했다.

김 명예회장은 이날 KAIST에서 열린 약정식에서 “AI 물결이 대항해시대와 1·2·3차 산업혁명 이상으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 큰 변화를 이끌 것ˮ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KAIST가 우리나라 AI 개발 속도를 촉진하는 플래그십 역할을 할 것ˮ이라며 “AI 인재양성으로 AI선진국의 길을 개척해 주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해달라”고 당부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AI 분야 인재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김 명예회장의 소신이 잘 묻어난 언급으로 읽힌다.
 
이번 ‘통 큰’ 기부 배경에는 김 명예회장의 남다른 학구열과 교육철학도 자리한다.

김 명예회장은 원양어선 말단 선원부터 시작해 지금의 동원그룹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가 오늘의 동원그룹을 일궈내기까지는 학구열이 한몫했다.

1958년 부산수산대학을 졸업한 김 명예회장은 기업을 경영하는 바쁜 과정에서도 1969년 고려대 경영대학원과 1978년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을 마쳤다.

1981년에는 미국 하버드대학 AMP과정을 밟으면서 미국 경영방식인 매니지먼트시스템을 익혔으며, 일본 기업의 경영전략을 연구했다.

김 명예회장의 학구열은 자원이 없는 나라의 미래는 교육과 인재육성에 있다는 신념으로부터 시작됐다.

김 명예회장은 월급쟁이 생활을 할 때부터 고향 학생들의 학비를 지원했다. 동원산업 창립 10주년인 1979년엔 3억원의 사재를 출자해 장학재단인 ‘동원육영재단’을 설립했다.

동원육영재단은 40년간 장학사업, 연구비 지원, 교육발전기금 지원 등 총 420억원가량의 장학금으로 한국 인재육성에 힘쓰고 있다. 현재 김 명예회장은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전남 강진 출신인 김 명예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1958년 우리나라 최초 원양어선인 ‘지남호’의 실습 항해사로 먼 바다를 향해 처음으로 몸을 실었다.

1960년 원양어선 지남2호의 선장이 됐고, 1969년에는 직접 동원산업을 세웠다. 김 명예회장을 포함한 3명으로 닻을 올린 작은 회사였다.

1982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참치캔 제품을 내놨다. 김 명예회장은 1인당 국민소득 2000달러 시대가 되면 참치캔 수요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원 참치캔은 현재까지 65억캔 넘게 팔렸다.

동원산업을 세운 지 51년이 지난 지금, 생활기업인 동원그룹과 증권기업인 한국투자금융그룹이라는 ‘거함’으로 성장했다.

김 명예회장은 동원그룹 경영 외에도 다양한 대외활동을 통해 국가 발전에 기여했다.

해양에 대한 풍부한 경륜과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수산회 회장과 원양어업협회 회장 등을 맡았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8년간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내며 한국의 대외무역 발전에도 힘썼다는 평가다.

동원 신화를 만들어온 김 명예회장은 지난해 50주년 기념식에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