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법정 최고금리 인하,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2020-12-16 19:00
시장경제체제에서 가격변수에 대한 정부의 인위적 개입이 긍정되는 경우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예외적일 때로, 이를 제외하고는 바람직하지 않다. 예컨대 금융업이 시스템 리스크 아래에 놓여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시스템 리스크에 직면했던 1997~1998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 권고에 따라 ‘물가안정’을 위해 이자제한법을 폐지했다.
오히려 법정 최고금리제도를 부활시킨 것은 우리나라 금융업이 위기를 극복한 이후인 2002년이다. 법정 최고금리제도를 부활시킨 주된 목적이 합법적인 대출상품의 가격에 개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금융 양성화’였기 때문이다.
대부업법 시행이 10년을 지나면서 ‘사금융 양성화’라는 입법 목적은 일정하게 실현됐다. 법률 시행 이후 대부업체 등의 등록이 급증하면서 비례적으로 사금융 시장 규모가 축소돼서다.
대부업 등록이 급증했던 원인으로는 무엇보다 등록 사업자에게 발생하는 ‘특례금리효과’를 들 수 있다. 특례금리효과란 대부업법상 최고금리와 이자제한법상 최고금리 간의 차이를 말한다. 따라서 특례금리의 폭이 넓을수록 대부업 등록의 경제적 유인이 커진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02년 연 66%로 출발했던 특례금리의 폭은 점점 좁아지더니 2018년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으로 이자제한법과 일원화되면서 사실상 폐지됐다. 특례금리 효과가 폐지됐다는 것은 대부업 등록의 경제적 유인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즉, 사금융 양성화라는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이를 반대로 풀이하면, 사금융 시장의 확대를 막을 수 있는 경제적 빗장이 풀렸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법정 최고금리를 4% 포인트 더 인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현재 연 24%인 법정 최고금리가 내년 하반기부터 연 20%로 낮아진다. 고유한 의미의 이자가 아닌 수수료나 비용을 포괄적으로 이자로 간주하는 ‘간주이자 규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법정 최고금리는 실무상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출금액이 적고, 대출 기간이 짧은 상품을 취급하고 은행권보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여 대출비용을 줄이기 힘든 등록 대부금융회사로서는 4% 포인트 인하는 내년 하반기부터 사업의 지속 여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인 셈이다.
그러나 국회에서 열린 당·정·청 합동 회의에서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0.5%로 낮은 저금리시대가 지속되는 있는데, 법정 최고금리를 24%로 두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며 “최고금리를 인하해 서민의 이자 부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흔히 기준금리가 낮은 나라일수록 대출금리가 낮을 것이라고 예단하지만, 소득의 양극화 정도에 비례하여 상이한 대출금리 시장이 존재했다. 계층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 벌어질수록 보편적인 이자율 제한 규범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통일적인 규범이 있다 해도 수많은 적용 예외와 규제 우회 장치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는 연 300~1000%에 이르는 고금리의 소액대부업체들이 합법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뉴욕처럼 엄격하게 제한하는 곳도 있으나 주간 금리 수출이나 불법적인 온라인 영업으로 규제의 무력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선언적인 의미가 강하다. 영국과 독일·프랑스 등 유럽연합의 주요 국가에서도 우리와 같은 보편적인 법정 최고금리제도를 일찍이 폐기한 바 있다.
선진국 중 우리와 유사한 수준으로 법정 최고금리제도를 실시하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법정 최고금리제를 적용받지 않는 업종과 거래 분야가 있다. 전당업법과 특정융자한도법이 대표적이다. 이에 더해 신디케이트론에서 P2P금융, 트랜잭션 뱅킹에서 법정 최고금리 수준을 웃도는 수수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 것인지, 해석상 융통성을 가져올 것인지가 현안이다.
이 밖에 일본에서는 사금융 시장의 확대로 인해 엄격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된 만화 주인공 ‘사채꾼 우시지마’와 같은 불법 사금융업자들로 인한 피해가 확대되고 있어 정치권과 사회의 고민의 커져가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입법 수준과 이로 인한 문제는 우리가 따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