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서 여학생 불법 촬영 범인…잡고보니 처벌 불가 '촉법소년'

2020-12-04 09:41
10대 여학생 불법 촬영한 범인, 잡고 보니 '촉법소년'
촉법소년(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은 형사처벌 불가
청소년 중범죄 늘자 촉법소년 기준 조정 요구 목소리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10대 여학생을 불법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자 중학생이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이 남학생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인 데다, 범행 도구로 쓴 휴대전화마저 부숴버렸다고 주장해 적절한 처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경기 분당경찰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촬영 및 성적 목적 다중 이용장소 침입) 혐의로 A(13) 군을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3일 밝혔다.

A군은 지난달 4일 밤 8시께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건물 2층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 용변을 보고 있는 10대 여성 B양을 휴대전화로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틈 사이에 있는 카메라를 본 B양이 놀라 인기척을 내자 A군은 곧바로 현장을 벗어나 같은 층에 있는 학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CC(폐쇄회로)TV 영상을 분석해 사건 이틀 뒤인 같은 달 6일 A군의 신원을 확인했다.

하지만 A군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것은 맞지만, 촬영은 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여기에 범행에 쓰인 휴대전화도 A군의 아버지가 부순 뒤 버렸다고 주장하며 제출조차 하지 않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23일 뒤늦게 압수수색 영장을 검찰에 신청해 이날 오전 A군 집에 있는 노트북과 USB 등 저장기기를 압수한 뒤 디지털 포렌식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피해자 측 부모가 "딸아이가 화장실 도촬 피해자가 됐다"는 제목의 글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피해자 측은 "제대로 수사가 진행되지 않고 약 한 달 동안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며 "경찰은 용의자가 만 14세 미만이라는 이유로 강제 조사를 위한 영장 신청 등을 10일 넘게 미루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에 대한 그 어떤 촬영물이 남아있지 않고 전송도 되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주고 가해자도 적절한 처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촉법소년에 대한 수사 절차상 압수수색 영장 집행이 쉽지 않아 다소 시일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압수한 저장기기들에 대한 포렌식을 진행하는 등 수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며 "관련 혐의를 명명백백히 밝혀내 적절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범죄를 저질러 붙잡혀도 형사 처벌되지 않는 점을 악용한 청소년 중범죄가 늘고 있어 촉법소년 기준을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년범죄는 교화를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 범죄학의 기본 원칙이지만, 이들의 범죄 수위가 성인 범죄 못지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형사미성년 연령 하향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소년 범죄 예방은 단순히 엄벌로 해소되는 게 아니다"라며 "소년비행 원인의 복잡성과 다양성, 아동 발달과정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