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철 칼럼] '코로나블루' 속에서 들려온 우리기업의 승전보
2020-11-24 09:30
- 경쟁자와 격차를 벌리면서 살아남는 기업은 더 강해진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글로벌 경제의 두드러진 현상은 글로벌 가치사슬의 재편이다. 똑똑한 공급망 하나를 완벽하게 관리하는 ‘Just In Time’에서 탈피해 여러 개의 공급망으로 선제적 위기 대응이 가능한 ‘Just In Case’ 전략으로 바뀌고 있다. 자연스럽게 중국 의존도를 축소하고 지역 혹은 자국 공급망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한편으론 미·중 충돌로 중국의 고립화가 현실화되고, 이에서 자유로운 쪽을 택하는 선택적 짝짓기가 목격된다. 4차 산업혁명과 미·중 무역전쟁이 팬데믹과 맞물리면서 생겨나고 있는 미시적 혹은 거시적 뉴노멀의 영향이 가시적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글로벌 질서 개편 과정에서 줄을 잘 서면 기회를 만들 수 있지만, 엉뚱한 줄에 서면 위기에 봉착할 수 있는 것이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낭보가 모처럼 해외에서 들려와 코로나 우울증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한다. 애플의 최신 스마트폰 ‘아이폰12’ 원가의 구성비 중 한국산 부품 가격 비중이 27.3%에 달해 미국산과 일본산을 제치고 수위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아이폰11보다 한국 부품의 비율이 9.1%나 높아져 미국이나 일본 부품 업체의 코를 납작게 했다. 한국산 의존도가 커진 것은 디스플레이 부문의 채택이 결정적이었으며, 한국 부품업체들의 선제적 투자가 주효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내년 중국에서 생산되는 테슬라의 전기자동차 ‘모델Y’에 탑재되는 배터리 물량(연간 3조원 대)을 LG화학이 싹쓸이했다는 소식이다. 경쟁자인 중국의 CATL과 일본의 파나소닉을 완벽하게 제쳐 기술의 격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한국 업체를 따라잡기 위해 중국이 공을 들이고 있는 ‘반도체 굴기’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해외 선진 기술에 대한 접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자급자족은 중국으로서 사활을 건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170조 원을 쏟아붓고도 양산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는 지난 오바마 정권 때부터 일관되게 견지되어 온 미국의 중국 견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이나 샌디스크 인수·합병이 무산되고, 반도체 장비마저 수입이 차단됨으로써 중국 정부의 애초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디스플레이 등의 중국산 시장점유율이 한국산과 일본산을 넘어서는 마당에 반도체에서 계속 격차를 갖고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다행스럽다.
가치사슬 재편 과정에서 초격차 일등 기업에 절대 유리, 격차 확대가 포스트 코로나 전략
위기에서도 기회를 만들어가는 원천은 압도적 기술력이다. 경쟁자보다 조금 나은 기술 수준으로는 후발주자에게 시장을 뺏기는 그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기술에 대한 평가는 시장이 하는 것이며, 시장에서 외면당하면 문을 닫는 수밖에 없다. 한동안 LCD 부문에서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던 우리 업체들이 중국에 주도권을 내주고 수모를 당하고 있다. 한때 50%에 달하던 점유율이 절반으로 뚝 떨어지면서 저가의 중국 주자들에게 시장을 내주고 있는 판세다. 부가가치가 높은 OLED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하고 있지만, 이 또한 언제까지 우위가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이 서로 물고 물리면서 시장이 요동을 친다. 최전선에 서 있는 기업의 처지에서 보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올해 내내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으면서도 지구촌의 모든 나라가 경제를 지탱해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방역과 경제를 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와중에 경제를 버텨주고 있는 것은 정부가 아니고 기업이다. 기업이 살아야만 수출을 할 수 있고, 고용이 창출되며, 성장률도 유지된. 시장에서 더 많이 살아남는 기업이 생겨날 수 있도록 긍정적 여건을 만들고, 사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기업에 유리한 것은 별로 없고, 불리한 것들만 넘쳐난다. 당장 주52시간제가 내년 초부터 시작된다. 경제민주화와 공정경제를 빌미로 국회에서 대기하고 있는 한 기업 규제 법안마저 수두룩하다. 기업을 더 많이 죽이지 못해 안달인 듯싶다.
노조는 한 술 더 떤다. 올 들어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데 국내 완성차 업체 노조의 파업은 더 극성을 부린다. 기아와 르노삼성에 이어 한국GM까지 이에 동승하고 있다. 외국 업체들은 노조 파업이 중단되지 않으면 한국 공장 철수라는 초강경 수까지 내놓고 있기도 하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고, 또 다시 국민의 혈세로 이들을 달래야 하는 지경으로 몰리는 것은 정해진 순서다.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공급망 혹은 가치사슬 재편 과정에서 한국 공장도 철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등은 이미 켜져 있다. 팬데믹이라는 이 엄청난 쓰나미 속에서 경쟁자와 격차를 벌리면서 살아남는 기업은 더 강해진다. 반면 반대편에 있는 기업은 시장이 이들을 냉정하게 도태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