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정세 지각변동] ①트럼프의 퇴장과 바이든 시대 개막

2020-11-09 08:00
트럼프·아베 퇴장, '스트롱맨' 시대 약화
'동맹·원칙' 중시 바이든 시대 등장 예고
北 비핵화 '6자회담' 개최 다시 수면 위로
변화한 北, 북·미 채널 가동·핵 능력 완성
미·중 갈등 상수 속 각국 이해관계가 변수

도덜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뒷모습. [사진=AP·연합뉴스]


2016년 미국 대선으로 완성된 ‘스트롱 맨(strong man·독재자) 시대’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실패로 무너졌다. ‘스트롱 맨 간 힘겨루기’로 격동의 세월을 보냈던 동북아시아가 또다시 변곡점을 맞이할 전망이다.

‘스트롱 맨 시대’는 2011년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최고지도자로 등극하면서 시작됐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등극하고, 같은 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했다. 이후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동북아를 둘러싼 ‘스트롱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이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을 중심으로 펼쳐진 각국 지도자들의 자국 우선주의 실현은 글로벌 외교전쟁으로 번졌다. 특히 세계 패권을 두고 벌어진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서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각국의 외교전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제 아베 총리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까지 ‘스트롱 맨’ 대열에서 빠졌다. 불도저 같은 일방 외교를 펼쳤던 트럼프 대통령의 퇴장과 함께 동맹·원칙을 중시한 조 바이든 시대를 앞두고, 동북아는 또다시 지각변동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열린 축하 행사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활짝 웃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Again 2003’ 북핵 6자회담 등장할까

8일 미국 민주당 정강정책, 바이든 후보의 발언 등을 종합해 보면 차기 미국 행정부의 대외정책은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에서 탈피, 국제사회의 다자협력관계를 회복해 잃어버린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특히 동맹국과의 협력도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 외교와 상반되는 동맹·다자주의 기반의 호혜적 상호주의로 글로벌 리더십을 강화하는 데 외교정책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원칙에 입각한 외교로 한반도 문제에 접근, 정상 간 만남부터 시작하는 '톱다운(Top down)' 방식이 아닌 '보텀업(Bottom up)' 방식을 선택하겠다는 점도 시사했다. 이는 과거 ‘6자회담’과 같은 다자협의 틀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북·미 간 대화로 풀리지 않았던 북핵 문제에 대해 동맹관계인 한국·일본과, 북한과 우호 관계에 있는 중국·러시아와도 협력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각국의 이해관계는 서로 다르나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는 세계 모든 국가가 추구하는 공동 목표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인권·다자협력 외교를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미·중 갈등과는 별개로 북핵 문제에서 중국과 공조할 수 있다는 기대인 셈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실무 중심, 다자주의 원칙에 따라 북·미 또는 남·북·미 협의가 먼저 이뤄지고, 중국이 참여하는 4자회담 이후 일본과 러시아가 합류하는 6자회담으로 이어진다.

6자회담에서 이뤄낸 합의안으로 유럽 국가들을 설득하고, 이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하는 것이 최종 목표인 시나리오다.

일단 중국과 일본은 ‘6자회담’을 반기는 눈치다.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중국과 일본 정부 인사들은 6자회담 참여 의사를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중국대사는 지난 6일 제주에서 개최된 ‘제15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서 참석, 기자와 만나 북핵 다자회담 개최 가능성에 긍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싱 대사는 “원래 한반도 문제는 남북 관계, 북·미 관계가 중요하다. 두 관계가 먼저 돌아야 (한반도 문제가) 정상적으로 간다”면서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은 이를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지금 (지원)하고 있는데, 북·미 관계가 교착상태라 잘 돌지 않는 상황”이라며 “미국 대선 이후 (차기 정부가) 어떻게 정책을 펼쳐나가는지 그게 중요하다. 아마 뭔가 있을 것 같다. 기다려보자”고 덧붙였다.

일본은 내년 7월로 연기된 도쿄하계올림픽이 북핵 6자회담 개최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최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도쿄올림픽 때 북핵 관련 6자회담 참가국 정상회의가 열리면 “외교상 매우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회담 참석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좋은 기회”라고 답했다.
 
 

2003년 8월 27일 중국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 제17호 공관 팡페이웬(芳菲苑)에서 열린 제1차 6자회담에서 각국 수석대표단이 회의 시작 전 악수하는 모습. 왼쪽부터 야부나카 미토리(藪中三十二) 일본 외무성 아시아태평양국장, 제임스 켈리 국무부 미국 동아태 담당 차관보, 김영일 북한 외무성 부상,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 부부장,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차관, 이수혁 외교부 차관보.[사진=연합뉴스]

 
◆변화한 北, 미·중 갈등··· 6자회담 실현 가능한가

물론 현재로선 6자회담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단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이다. 북한은 그동안 ‘북핵 문제’는 미국과 해결해야 한다는 태도를 줄곧 유지해 왔다. 기존 6자회담에 대한 경험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특히 남북 관계를 ‘민족 내부 문제’로 규정하고,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남북-북·미 선순환 관계 전략’을 향해 “악순환 관계”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런 북한이 한국이 참여하는 ‘북핵 다자회의’에 반가워할 리 없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6자회담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지금 북한에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의 상황이 한 차례 실패를 맛봤던 6자회담으로 다시 돌아갈 만큼 좋지 않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북한은) 직접적으로 미국과의 담판을 통해서 (비핵화 문제를) 빨리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일 것”이라고도 했다.

대북제재, 코로나19, 태풍피해 등 삼중고에 직면한 현실을 스스로 극복하겠다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기 때문에 미국과 빨리 북핵 문제를 해결해서 제재 국면에서 벗어나려고 할 것이란 해석이다.

북한의 핵 능력이 과거 6자회담 때와 다르다는 것도 변수다.

박 교수는 “과거 6자회담 때는 북한의 핵이 완성되지 않았다. 그래서 북한도 시간을 벌면서 핵 능력을 완성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핵 능력은 완성됐으니 (시간을 벌) 필요가 없다”며 북한의 다자회담 참석을 낮게 점쳤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형석 대진대 교수도 북한의 불참 가능성을 시사했다.

김 교수는 “북한의 입장에선 미국과 담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 때 그런 환경을 만들어놨다”면서 “그런데 이제 다시 다자로 가자고 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 북한이 미온적이거나 불만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협의’를 잘못 해석해 이른바 ‘레드라인’을 넘는 무력도발 행위가 발생할 위험도 존재한다.

양자가 아닌 다자회담을 다시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존 트럼프 행정부와 맺었던 ‘6·12 싱가포르 합의’를 무효로 하고, 제로베이스(zero base·전면 재검토)에서 출발하자는 신호가 포착되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으로 반발할 수 있다.

김 교수는 “큰 틀 안에서는 6자, 다자(회담)가 좋다. 그런데 기존의 합의가 부정되는 쪽으로 가면 상황은 어려워진다”면서 “기존 (트럼프) 행정부 등 국제사회와 했던 합의를 이행 또는 존중한다는 식으로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자’라는 새로운 틀에서 협상을 다시 시작하지만, 기존의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이 보장돼야 북한도 매력을 느낄 거란 주장이다.

갈수록 격화되는 미·중 간 대립 구도, 좀처럼 해결 접점을 찾지 못하는 한·일 갈등도 해결해야 할 숙제다.

박 교수는 중국이 과거 6자회담 주재국이었다는 것을 언급하며, 미국이 현재 갈등 구도에 있는 중국을 북핵 문제에 포함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우리 정부도 원치 않으리라고 봤다.

그는 사견을 전제로 “우리는 북·미 협상 이후 남·북·미 협의로 이어지는 것을 선호한다”며 “정부로서 중국이 북핵 문제에 끼어들면 판이 복잡해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북핵 다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미·중, 한·일, 한·중 등 각국 간의 관계 회복을 제시한 셈이다.

그러나 현재 국제사회에서 ‘미·중 갈등’은 변수가 아닌 ‘상수’다. 그래서 한반도 문제는 ‘미·중 경쟁 구도’라는 큰 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 교수는 “미·중 간 갈등 속에서 북한 문제가 더 확대되면 그것도 양국에 부담”이라며 “양국이 동북아 안정을 원하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 해결 또는 안정화는 공동 의견”이라고 했다.

이상만 경남대 교수도 미·중 갈등 속에서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서, 김대중 정부와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 시절 추진했던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를 언급하며 그 속에서 한국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북 포용을 기조로 한 페리 프로세스는 북한과 미국 등 동맹국들이 상호위협을 줄이면서 호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3단계 접근 방식으로, 한국이 운전대를 잡고 미국이 조수석에 앉는 한반도 평화정책이다. 1단계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지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 2단계는 북한의 핵·미사일 중단, 3단계는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이다.
 

[그래픽=아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