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2022년 나랏빚 1000조 '위기의 방파제' 무너진다
2020-11-03 18:02
국회는 국정감사가 끝나고 예산심의 시즌에 돌입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555조8000억원의 지출을 계상하고 있다. 총지출증가율이 8.5%로 2019년 본예산 9.5% 증가에 이어 3연속 8~9%대의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명목성장률의 거의 3배 정도 높은 증가율이어서 조세부담률을 크게 높이지 않는 한 적자확대가 불가피하다. 내년 예산안은 73조원 적자 예산안으로 이미 89조7000억원에 달하는 역대 최대 적자국채 발행계획이 포함되어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비율이 5.4%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의 3.8%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 2020년에 이어 지속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재정준칙 권고치인 3.0%를 넘어서고 있어 재정위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적자국채를 연이어 크게 발행하니 국가채무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코로나발 재난지원금은 계속 집행되고 있다.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경제는 추락해 실업수당은 매월 1조원 넘게 지원되고 세수도 걷히지 않는데 때마침 총선과 추석을 맞아 재난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재정이 너무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으니 재정위기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 않을 수 없다. 국회가 지난 총선을 전후해서 지급한 재난지원금에 이어 추석 전 2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 위한 4차 추경을 9월 22일 통과시킨 바 있다. 재난지원금을 두 번 연속 지급하는 것도 처음이거니와 추경을 한 해에 4차례나 편성하는 것도 사상 초유의 일이다. 금년에만 추경을 66조8000억원을 편성하고 있다. 2020년 예산만 해도 사상 최대인 520조원에 이르는 데다 4차례의 추경으로 587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정을 지출하게 된다.
정부가 종부세, 법인세, 소득세 인상 등 전방위적으로 세금을 거두는 데 혈안이 되다시피 하는데도 경기 부진으로 세수증가는 미미해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올해 1~7월 중 벌써 98조원에 이르렀다. 적자는 대부분 적자국채를 발행해 충당하고 있다. 금년에는 예산에 이미 60조원의 적자국채 발행계획이 포함되어 있는데, 4차례의 추경으로 적자국채 발행규모가 45조원 정도 증가해 올해만 105조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내년도 예산에도 이미 89조7000억원에 달하는 적자국채 발행을 포함하고 있어 적자국채를 연이어 크게 발행하게 되니 국가채무가 급증할 수밖에 없다.
근년에 들어 성장률은 하락하는 반면 한번 지급하기 시작하면 중단하기 힘든 복지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각종 연기금, 4대 보험도 상당수가 바닥이 나기 시작해 재정으로 메워야 하는 실정이 목전에 다가오고 있는데 이마저도 낙관적인 전망이라는 견해가 많을 정도다. 정부가 지난 9월 2일 발표한 장기재정전망에서는 국가채무/GDP 비율이 2045년 99%, 2060년 81.1%로 추정하고 있는데, 국회예산정책처는 2045년 117.5%, 2060년 158.7%로 전망하고 있다.
더욱 문제는 한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국가채무(government liability)는 한국의 ‘국가재정법’에 의해 국가가 직접적으로 상환의무를 지는 좁은 의미의 채무만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 국가부채(government debt)는 국제통화기금(IMF) ‘재정통계 매뉴얼’에서 권고하고 있는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로, 국가채무에 국가보증채무, 공공기관부채 중 국가기능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부채, 공무원 군인연금 장기충당부채와 중앙은행 부채를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의 OECD 국가는 이 기준을 따르고 있다. 최근 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공직자들이 외국의 지표에 비해 한국은 건전하다고 하면서 재정지출에 여유가 있는 것처럼 언급하면서 재정지출이 봇물 터지듯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는 이러한 차이를 모르는 데서 오는 매우 위험한 주장이다. 필자의 추정으로는 국가부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은 GDP 대비 비율이 이미 2014년에 위험한 수준으로 간주되고 있는 100%를 넘어서고 금년 말에는 120% 수준을 넘어선 후 2024년 경에는 145%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의 국가부채/GDP 비율은 유로존 수렴 조건인 60%를 넘어선 것은 물론 미국에서 위험수위로 간주해 ‘예산통제법’으로 통제하고 있는 100%를 크게 넘어서고 있는 위험수준이다. 국가부채가 과도하면 재정정책의 여지가 없어져 경기가 어려워지는 경우에도 대책이 없어 장기침체를 초래하게 된다. 때문에 재정을 위기의 방파제라고 한다. 심할 경우 세수로 이자 갚기도 힘들어 신규 국채발행이나 차환발행이 어려워지는 '부채의 함정(debt trap)'에 빠지게 되어 국가부도(sovereign debt crisis) 위험이 커진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불황도 국가부채가 급증하면서 경기추락에도 불구하고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을 쓰지 못한 것이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코로나 위기로 경제가 나빠져 대량기업부도와 대량실업의 위험이 지속되고 있다.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때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최대한 알뜰하게 써야 한다.
더 무서운 것은 재정위기다. 2011년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었던 남유럽의 경우 2010년에 국가부채비율이 그리스 140%, 이탈리아 120%, 포르투갈·아일랜드 90% 수준까지 급등하면서 재정위기를 겪었다. 이를 비교해 보면, 한국은 이미 재정위기권에 진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코로나위기의 터널을 지난 후 곧 바로 재정위기가 온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재정위기란 무엇인가. 국가부채가 너무 많아 신뢰도가 떨어져 국채를 발행해도 잘 팔리지 않는 상태다. 빚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는데도 잘 팔리지 않으면 결국 필수적인 재정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의료·육아·교육·연금 등 필수적인 재정지출마저 지출할 수 없게 되어 국민생활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참을 수 없는 국민들은 연일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하게 되는 것을 그리스 등 남유럽에서 목도했다. 이미 국채가격이 하락, 즉 국채수익률이 올라가는 징후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정부는 2년 만기 개인전용 국채를 발행하고 60% 이자까지 더 준다는 ‘국채시장 활성화대책’을 내놓고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 10월 5일 재정준칙을 발표했으나 맹탕준칙이라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2025년부터 국가채무비율을 GDP의 60%, 통합재정 수지 적자 비율을 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전쟁이나 글로벌 경제 위기, 대규모 재해 후 경제 위기 같은 상황에서는 준칙 적용을 면제하고, 경기 둔화 상황에서도 통합재정수지 적자를 4%까지 허용하는 등 예외 규정도 폭넓게 두기로 했다. 기재부는 이런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연말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정부가 재정준칙으로 제시한 ‘국가 채무 비율 60%’는 그동안 우리 정부가 관행적으로 국가 채무의 마지노선으로 삼아왔던 40%에서 대폭 후퇴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이던 2015년 “국가 채무 마지노선인 40%가 깨지면서 나라 곳간이 바닥났다”고 주장했었다. 이마저도 예외조항이 너무 많아 아무 제약 없이 재정을 펑펑 쓴 뒤 2025년부터 재정준칙을 시행하겠다는 건 부채 부담은 다음 정부에 넘겨주면서 재정 건전성을 중시한다는 인상만 주기 위한 생색 내기에 불과할 뿐이라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다.
지금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선심성 현금 살포보다는 기업투자환경 개선과 같은 정책 대전환이다. 법인세 인하, 규제 혁파, 최저임금 인상 자제와 탄력 적용, 주52시간 탄력 적용, 강성노조 불법행위 엄단 등 기업투자환경만 개선되어도 많은 기업들의 투자가 활성화되어 가계의 안정적인 소득이 증가하고 소비가 살아나 영세소상공인들이 혜택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이 다수당의 힘을 등에 업고 내놓은 법안들을 보면 상법개정안, 공정거래법개정안, 보험업법개정안, 금융그룹통합감독법제정안, 실직자·해직자·사회활동가도 노조전임원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노동조합법개정안과 교원노조법개정안, 노동이사제 도입 법안 등 규제일변도의 법안들뿐이다. 리쇼어링과 한국판 뉴딜은 말뿐이고, 기업투자를 유치하고자 하는 법안들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전무하다시피 할 정도다. 그러면서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는 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적자국채를 발행해 현금을 살포하는 정책만 내놓고 있다. 지금은 정책을 대전환하고 재정을 최대한 알뜰하게 운용하면서 재정위기에 대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