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사람을 닮은 자율주행을 기대한다

2020-10-31 15:48

지난 29일, 제주국제공항에서 중문관광단지를 잇는 도로인 평화로를 찾았다. 이 도로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자율협력주행 테스트베드 구간이다. 처음으로 자율주행 차량을 타봤다.

이날 KT의 차세대 지능형 교통체계(C-ITS) 실증사업 시연 현장에서는 45인승 버스가 웨이브(WAVE, 차량과 차량 간, 차량과 노변 기지국 간의 실시간 무선 통신 인프라)를 기반으로 약 10분간 자율주행을 했다. 일반 도로를 달리던 버스기사는 실증구간 도로에 들어서자 천천히 핸들을 손에서 뗐다. 버스는 40km/h의 안정적인 속도로 주행했다.

C-ITS는 도로 협력 인프라에서 수집된 교통안전 관련 정보를 차량에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국토교통부가 현재 서울과 울산·광주·제주에서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KT는 제주와 울산에서 주관 사업자로 참여하고 있다. 오는 12월 이후 제주도 내 일주서로와 평화로 등 300㎞ 구간과 3000여대의 렌터카에 C-ITS가 준공된다. 제주도는 C-ITS의 국내 첫 준공 지역이다.

첫 자율주행 자동차 시승 경험이었지만 별로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운전자가 핸들에서 손을 뗐고, 자동차 계기판 옆에 어지럽게 숫자가 오르내리는 작은 모니터가 달려있다는 것 이외에는 일반 자동차와 특별히 다른 건 없었다.

실증 중 자율주행 자동차는 일반 자동차와의 사고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최대한 안전한 속도와 주행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동차 치고는 느린 속도인 40km/h로 천천히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자율주행 버스 창밖으로는 일반 자동차들이 옆을 빠르게 지나쳐 가는 모습이 보였다.

공상 영화에서만 다뤄지던 자율주행 자동차들이 어느덧 도로 위를 질주하는 시대다. 자율주행 자동차들은 도로 위에서는 아직 철저히 혼자다. 자동차와 자동차, 자동차와 도로 간 쌍방향 연결을 통해 도로 전체의 교통 상황을 수집하고 전달하는 인프라가 없어서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스스로 도로 상황을 감지하고 사고에 대응해야 한다.

심지어 일부 운전자들은 자율주행 기능을 과신하기도 한다. 최근 자율주행 자동차 소유주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헬퍼'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조건부 자동화인 자율주행 2단계의 테슬라는 오토파일럿 기능을 작동시키는 동안 운전자가 일정 시간 이상 핸들을 안 잡으면 핸들을 잡으라고 알림 메시지를 보낸다. 그래도 안 잡으면 오토파일럿 기능이 자동으로 꺼진다. 헬퍼는 운전자가 핸들에 손을 계속 올리고 있다고 자동차가 인식하게 만드는 기구다. 혼자 맹렬히 달리는 자율주행 자동차에 대한 일각의 우려를, 그저 기술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만 치부하긴 어려워 보인다.

KT는 이날 행사에서 C-ITS 실증사업의 목표는 '자율주행'이 아닌 '자율협력주행' 구현임을 강조했다. 자율주행은 자동차가 얼마나 스스로 운전을 해내느냐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라면, 자율협력주행은 자율주행 자동차가 도로나 다른 자동차 등 주변 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 하느냐에 주목한다.

실제로 제주의 C-ITS 사업에는 도로 주변의 다양한 돌발 상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제공하는 다양한 서비스가 포함된다. 이 중 긴급차량 우선신호 서비스는 구급차와 소방차가 출동하면 자동으로 주변 신호등의 교통신호를 제어해주는 기능이다. 주변의 다른 차량은 구급차가 곧 지나갈 것이라는 안내 메시지를 수신한다. 이외에도 C-ITS 사업이 구현되면, 도로를 건너는 보행자를 인식해 달려오는 차량에 이를 알리는 것도 가능해진다. 

아무리 새롭고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주변을 살피지 않고 혼자 빠른 속도로 내달리기만 한다면 어떠한 사회 변화도 혁신도 이룰 수 없다. 오히려 자율주행 자동차가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 전락할 수 있다. 주변 속도에 발맞춰 함께 달릴 수 있는 기반인 C-ITS와 같은 디지털 도로 인프라를 통해 자율주행 시대에 대한 장밋빛 미래와 안전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차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