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내려야해, 말아야해"...신흥국, 치솟는 물가에 '금리인하' 놓고 골머리

2020-10-22 14:26
세계 식량가격지수, 4개월 연속 오름세
인도는 금리 동결, 멕시코는 소폭 인하

물가가 치솟으면서 그간 금리 인하 정책을 내세웠던 신흥국 중앙은행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이 불가피한데 코로나19로 고꾸라진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마스크를 쓴 사람이 인도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 인도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코로나19 감염사례가 많이 나온 국가다.[사진=AP·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 이후 주요 신흥국에서 식료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치솟고 있다고 블룸버그가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팬데믹으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공급망에 문제가 생긴 데다 예년과 달리 건조한 날씨가 이어져 평소보다 곡물이나 채소의 수확량이 감소한 탓이다. 

유엔 산하 식량농업기구(FAO)가 지난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9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97.9를 기록, 4개월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 2월 이후 최고치다. 식량가격지수는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지난 2월 99.4에서 점차 하락해 지난 5월 91.0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지난 6월 93.1로 반등한 뒤 7월(94.3)과 8월(96.1), 9월(97.9) 넉달 연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식량가격지수는 FAO가 1990년 이후 24개 품목의 국제가격동향(95개)을 모니터링해 5개 품목군(곡물, 유지류, 육류, 유제품, 설탕)별로 매월 발표한다.

이처럼 하늘로 치솟는 물가로 인해 신흥국들의 금융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그간 코로나19발 경제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폭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다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통상 큰 폭의 물가 상승이 이어질 경우 중앙은행들은 화폐가치 하락을 우려해 금리를 인상하는 정책을 써왔다. 때문에 경기 부양과 물가 안정 사이에서 신흥국 중앙은행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1년간 신흥국들의 기준금리 추이[자료=블룸버그 캡처]


인도와 멕시코 등 일부 신흥국들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당분간 기존의 금리 인하 정책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인도 중앙은행(RBI)은 지난주 기준금리인 레포금리를 4.0%로 동결했다. 지난 5월 기준금리를 4%로 깜짝 인하했지만, 추가 금리 인하에서는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다. 지난달 인도의 물가 상승률은 7.3%로 지난 1월 이후 가장 빠르게 뛰었다. 특히 인도 물가 상승의 절반을 차지하는 식료품 가격은 1년 전과 비교해 무려 9.7%나 급등했다. 

멕시코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달 말 멕시코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기존보다 0.25%p 낮춘 4.25%라고 발표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직전 다섯 차례에 금리를 0.5%p씩 낮췄지만, 이번에는 이전보다 인하폭을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를 웃도는 등 최근 들어 식료품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서다.

시티그룹의 에르네스토 레비야 이코노미스트는 "인플레이션이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 달리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는 통화 완화 정책을 더 강하게 추진하지 못하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분석했다.

이밖에도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을 포함한 다른 신흥국에서도 물가가 계속 치솟자 금리 인하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