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서 15분 코로나 검사, 이상 없으면 하와이 간다

2020-10-13 00:00
음성땐 자가격리 면제...몸상태 기록한 건강여권도 논의
외국인관광객 99% 줄어든 국내업계 "규제 제한적 완화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김선희씨는 오는 15일 가족과 함께 하와이 여행을 떠난다. 그동안 코로나 감염 여파에 한 번도 여행을 다녀오지 못한 상황에서 '코로나 검사'만 받으면 격리 없이 하와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곧바로 항공권을 예매했다. 공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면 15분 만에 결과지를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1년 가까이 억눌렸던 여행의 설렘, 이제는 만끽할 일만 남았다.


'코로나19 음성', 즉 건강하다는 증빙만 하면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코로나 시대가 만든 새로운 여행 풍속도다.
코로나19 장기화에 하늘길이 끊기면서 해외여행의 설렘을 느끼지 못하는 요즘, 주요 관광국가를 중심으로 '제한적 여행' 움직임이 일기 시작해 눈길을 끈다. 코로나19 사전 검사 후 음성 결과지만 있으면 2주간의 자가격리 없이 해외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방안이 알려지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새 여행 트렌드 '랜선여행' 

올해 초 창궐한 감염병 '코로나19'는 전 산업군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그중에서도 여행업은 직격탄을 제대로 맞았다. '국가 간 이동' 제한으로 하늘길이 끊기면서 해외 여행길이 막혔고, 국내 여행까지도 발목 잡히며 여행업계는 아사(餓死) 위기에 처했다. 

과거 마음만 먹으면 쉽게 떠났던 해외여행이었지만, 코로나 팬데믹은 잠시 외출하는 것조차 두려운 공포를 안겼고, 해외여행은 자연스레 그림의 떡이 됐다. 다녀온다 해도 14일간의 자가격리, 감염 우려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세계관광기구(UNWTO)는 코로나19 확산세가 계속되고 하늘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올해 전체 국제 관광객 수가 최대 80%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해외여행 대신 '드라이브 스루', '차박' 등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유지하면서 즐길 수 있는 국내여행을 선택하는 이가 늘기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불안과 공포가 잠재한 여행법이라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 중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편한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영상이나 사진을 통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랜선여행'이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부상한 것도 그 이유다. 

랜선여행은 코로나 팬데믹을 치유할 나름의 '처방전'이 됐다. 여행 프로그램이나 여행 브이로그 등을 통해 실시간 양방향 소통하며 좀 더 간접 여행을 즐길 수 있는 형태로 진화했다.

추세에 뒤처질세라 정부와 지자체는 물론, 업계도 저마다 여행지 랜선 홍보를 시작했다. '코로나가 끝나면 꼭 가봐야 할 여행지'를 선정해 사진을 제공하는가 하면, 새롭게 문을 여는 호텔들을 영상물로 제작해 송출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여행지의 곳곳을 생생하게 전달해 여행자들이 랜선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곳도 있었다.

◆美 항공사, 자체 코로나 검사 도입

급기야 랜선여행을 넘어 해외에 가는 '척'하는 여행상품까지 등장했다. 집 밖을 나와 여행을 떠나는 척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소비자는 뜨겁게 열광했고, 상품은 '완판'됐다. '해외여행에 목말라하고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례였다. 여행사의 성공 사례에 힘입어 국내 저비용항공사도 비슷한 가상여행 상품을 내세우며 고객몰이에 한창이다. 

하지만 랜선여행과 가상 해외여행 체험상품 등의 처방에도 내성이 생겼다. 이런 '척' 여행도 실제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진짜' 여행의 감동을 넘어서진 못했고, 그렇게 여행지의 공기에 대한 '갈증'은 커져만 갔다. 

다행스러운 점은 제한적으로나마 진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랜선여행과 '척' 여행이 아닌, '찐(진짜)' 여행을 말이다. 코로나19 음성 판정 등 자신의 건강을 증명만 하면 자가격리 없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실 세계경제포럼(WEF)은 앞서 '코로나19 이후의 여행 보고서'를 통해 생체인식을 통한 '비접촉여행(touch less travel)'이나 코로나19 음성을 증명하는 '디지털 건강여권(digital health passports)' 등장이 일상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WEF의 예상대로 '건강 증명'을 내세워 여행객을 받는 방안은 일부 국가와 항공사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공식화'됐다.

하와이는 입국 72시간(3일) 전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은 방문객에 한해 2주 의무 격리 해제를 할 방침이다. 이 방안은 오는 15일부터 시행된다.

유나이티드항공은 하와이 코로나 사전 검사 프로그램에 발맞춰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와이로 가는 승객을 대상으로 공항에서 코로나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주기로 했다. 하와이행 비행편 예약자가 보안검사대를 지나기 전 15분 만에 결과가 나오는 분자검사 방식의 신속 코로나 진단검사를 받을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하와이안항공도 일부 공항에서 자체 코로나 검사 프로그램을 제공할 계획이다. 드라이브 스루 테스트를 통해 유료 검사를 하면 빠르면 당일에 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 음성 판정을 받으면 14일 자가격리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앞서 관광이 주요 먹거리였던 그리스는 코로나 확산세가 장기화하자 독일·오스트리아 등 EU 회원국 16개국과 한국·일본·호주 등 비회원국 13개국을 입국 가능 국가로 지정했다. 이들 국가에서 오는 관광객이 코로나19 검사만 통과하면 여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라트비아 등 발트 3국이나 노르웨이·덴마크·호주·뉴질랜드 등 일부 국가에서도 방역체계를 신뢰할 수 있는 인접 국가와 상호여행을 허용하는 '여행 안전지대(travel bubble)'를 만드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키프로스 "코로나 걸리면 여행경비 지원"

몹시 '파격적'인 제안을 한 나라도 있다. 동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공화국이 자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이 '코로나19'에 걸리면 본인과 그 가족을 위한 숙박비, 의료비, 식비 등 여행 경비를 지원해 주겠다고 선언했다. 

키프로스는 관광산업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관광 의존율이 높은 게 그 배경이다. 코로나19 여파로 주저앉은 관광국가 키프로스가 펼친 '눈물의 호소' 작전이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일부 관광국가와 항공사에서 시행하겠지만, 이제 곧 주요 관광국가를 비롯해 전 세계에 '건강여권' 도입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며 "또 하나의 여행 풍속도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라고 전했다.  

여행객의 건강을 담보로 입국을 허용하고, 자가격리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벼랑 끝에 내몰렸던 여행업계는 여행 수요 회복에 대한 기대로 모처럼 활기를 띠었다.

아울러 국내 여행업계도 방한 외래객 입국 및 내국인의 해외여행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내국인의 국내여행과 랜선여행 등의 가상여행 형태만으로는 업계 전반이 살아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셌던 3월부터 6월 사이 방한 외래객은 5만248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9% 줄어든 수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코로나19 여파에 방한 외래객이 뚝 끊긴 이 기간 관광 일자리 12만개가 증발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로 인해 관광산업 생산유발액 13조2000억원, 부가가치유발액 6조1000억원이 각각 감소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여행에 대한 그리움으로 이어졌다. 많은 이가 집 밖에서 즐기는 '진짜 여행'을 원한다. 

이는 서울시와 서울관광재단이 48명의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집단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와 재단이 최근 코로나19 이후 서울시민의 관광형태 전반에 걸친 변화상을 확인하고, 향후 관광산업에 미칠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진행한 인터뷰에서 시민들은 가장 하고 싶은 여가활동 1위로 '해외여행'을 꼽았다. 

업계 관계자는 "시대와 역사가 변한다고 해서 '온라인'과 '가상체험'에만 의존할 수 없는 산업군이 바로 여행산업"이라며 "온라인상의 간접 여행이 현장에서 오는 설렘과 감동을 100% 안길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모바일 기기 등에 익숙지 않은 장년층에게도 이런 여행법은 불리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여행지의 맑은 공기와 생생한 현장, 현지인과 소통하며 쌓는 여행 추억을 랜선여행은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제한적으로나마 '여행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