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장수 식단: 소식(小食)의 새로운 등장
2020-09-27 12:56
[박상철의 100투더퓨처] (33)
<100 to the future> 필자 박상철 교수 =이제 120세 시대로 나아가는 지금. 노화(老化)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박상철 교수의 ‘100 to the future(백, 투더 퓨처)’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박 교수는 서울대 의과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서울대 의대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와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 전남대 연구석좌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노화 분야 국제학술지 ‘노화의 원리’에서 동양인 최초 편집인을 지냈고 국제 백세인연구단 의장, 국제노화학회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노화 연구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노화이론을 세운 그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지에 소개됐습니다.
<100 to the future>는 100세까지 보편적으로 사는 미래에 대비하자는 의미로, 영화 '백 투더 퓨처'의 미래 귀환 뉘앙스를 차용한 시리즈 제목입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앞당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필자는 그 길어진 삶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건강하고 풍요로운 내일에 대해 실감나게 짚어나갈 계획입니다. <편집자주>
선사시대부터 생명연장을 희구해온 인류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로초로 기대되는 특정식품에 집중적 관심을 기울였고, 이러한 식품에 신비적 요소를 추가하면서 열정적으로 추구해 왔다. 그러나 특이한 식품이나 약물의 효용에 대하여 경험적으로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중국의 ‘신농본초경 (神農本草經)’에는 365종의 식품을 상중하로 나누어 오래 먹어도 독이 없는 일상식을 상으로,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오래 복용하는 보약을 중으로, 급성병에 치료약으로 쓰나 오래 먹지 못하는 약성 식품을 하로 분류하면서 장기간 먹을 수 있는 식품을 최우선으로 강조하였다. 아무리 특별한 효과가 인정되더라도 부작용이나 독성없이 장기간 복용할 수 있는 식품이 최우선임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특정 불로초의 질적 효능보다 섭취하는 양적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우치게 되었다. 실제로 건강장수를 희구해온 부자나 세도가들에게서 제기되어 온 건강이나 수명에 관한 제반 문제가 과식 또는 운동부족과 같은 잘못된 생활습관에 기인함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무엇을 먹어야 하는 것보다 기본적으로 적게 먹는 소식이 건강장수를 추구하는 목적에 보다 부합함을 깨달았다. 더욱 현대에 이르러서는 이에 관련한 연구와 조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소식의 과학적인 근거가 마련되고 있다. 특히 풍요로운 사회에 사는 현대인에게 거리낌없이 권장할 수 있는 건강장수 방안으로는 소식의 생활화가 더욱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식이섭취량을 제한하는 소식은 오래 전부터 동양권과 서양권에서 제한된 종교단체 또는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발전되어왔다. 동양권에서는 도교사상이 파급되면서 신선사상과 더불어 음식을 제한하는 벽곡사상이 널리 보급되었다. 절곡(絶穀絶穀), 휴량(休糧休糧), 단곡(斷穀斷穀), 각립(却粒却粒)이라고도 하며, 오곡을 먹지 않고, 화식을 피하는 수행법으로 발전되었다. 음식량을 줄이고, 소량을 오래 씹어먹는 방법과 식사에서 배를 60%만 채우거나(腹六分天壽), 80%만 채워야 한다는(腹八分目) 등의 실천방안은 오늘날에도 동북아권에서 아직 널리 유행하고 있다. 서양에서도 히포크라테스 시대부터 과식을 경계해 왔다. 히포크라테스는 잠언집에서 식생활 개선을 일찍이 강조하였다. “적절양보다 많은 음식을 섭취하게 되면 병이 걸릴 수 있다. 우리는 음식을 먹는 횟수와 양에 대하여 그리고 식사시간 간의 길이에 대하여 고려하여야 한다. 그리고 습관, 계절, 지역 및 연령 등에 대하여 생각하고 식이를 정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잇는 식이요법의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생활에 적용하여 실제적인 영향을 준 소식의 건강효과는 베니스의 코르나로(Luigi Cornaro, 467~1566)에 의하여 제기되었다. 스스로 100세를 넘게 살았으며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절제된 삶에 대하여(Discorsi della vita sobria)”라는 저술을 통해 매일 일정량의 식품과 포도주를 제한적으로 섭취함으로써 건강수명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하면서 최초로 음식물의 양적 조절 개념을 소개하였다. 그의 주장은 르네상스 이후 유럽인의 건강생활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풍문에 그쳐있던 소식의 효용성이 과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코넬 대학의 맥케이(Clive McCay)가 식이제한만으로 실험동물의 수명을 거의 두 배 이상 연장할 수 있다는 보고가 효시이다. 식이제한의 수명연장 효과가 객관적이고 실험적으로 입증되는 계기를 이루었다. 이후 효모, 선충, 초파리, 생쥐, 쥐 등의 수많은 동물실험에서도 소식의 건강유도와 수명연장효과가 입증되어 소식의 수명연장효과는 학계에서도 이제 거의 정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간에게 식이제한이 강제적으로 적용된 사례들을 역사적으로 무수히 발견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덴마크인들은 2년동안 정부의 철저한 식량제한 배급통제를 받았으나 평시보다 덴마크인들의 사망률이 34%나 감소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4년동안내내 식량배급을 철저하게 통제 받아온 오슬로 주민들의 사망율이 전쟁 전에 비하여 30%나 감소하였다. 오키나와는 백세인 비율이 인구 십만명 당 50명이 넘는 세계 최장수 지역인데, 주민의 열량섭취가 일본의 다른 지역보다 17% 그리고 미국보다는 40% 더 적게 섭취하고 있음이 판명되었다. 인간에게도 식이제한이 수명연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구체적 증거이다. 이러한 후향적 연구에 덧붙여 전향적 연구를 통하여서도 소식의 인간 건강수명 연장 효과에 대한 연구도 다양하게 추진되었다. 미국 NIA(국립노화 연구소)가 주관하여 추진한 CALERIE (장기간 식이제한의 종합분석)프로젝트와 절식자협회가 추진한 CRON(적절영양식이제한) 연구가 대표적이다. CALERIE 프로젝트에서는 비교적 유의한 효과가 있었으며, 하루 1800Kcal섭취라는 심한 식이제한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CRON연구에서도 대사개선, 심혈관 기능개선, 암발생억제 등의 긍정적 효과가 보고되었다. 인간 대상 연구성과의 객관성과 엄밀한 분석이 어려움을 고려하여 영장류를 대상으로 식이제한의 수명연장효과 실험을 20년이상 지속한 결과도 보고되어 많은 관심을 일으켰다. 위스컨신 대학 연구진은 소식의 긍정적 수명연장효과를 보고하였고, NIA연구 결과에서는 소식의 수명연장효과는 유의하지 않으나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데는 유의하게 기여했음을 인정하였다.
이와 같이 소식의 효과는 전반적으로 긍정적 효과가 인정되면서도 연령에 따른 또는 소식방법에 따른 효과의 차이와 소식으로 인한 생활상 및 건강상의 문제점들이 거론되면서 식이제한의 질적 양적 방법에 대해서 보다 체계적인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식을 실천하는 생활습관이 자기희생과 욕망을 억제하여야 하는 각오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소식의 실전방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 변형이 제안되고 있다. 예를 들면 식이의 전체적 양을 줄이거나, 특정성분만을 줄이는 방법, 또는 매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틀에 하루, 또는 사흘에 하루, 일주일마다 하루씩 금식한다든지, 하루에 1식이나 2식만 하거나 금식시간을 조절하는 방법이 소식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안되고 있다. 모두 총체적인 섭취량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식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명심하여야 할 것은 과도한 소식이나 절식은 금기라는 점이다. 반드시 전반적인 영양상태는 정상을 유지하면서 열량이나 특정식이성분의 제한을 추구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생리기능저하는 물론 면역기능의 저하로 감염 등의 많은 건강상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수행되었던 대부분의 동물실험들이 폐쇄공간에서 생활하는 상태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일상의 개방된 공간에서 활동하여야 하는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한계점이 있다는 점도 유념하여야 한다.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점은 과식은 금물이며, 아무리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특정 성분의 과잉섭취는 절대 안 된다는 점은 명심하여야 한다. 식이에서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여전한 진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