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핀 뺀 집단소송…로펌만 배불려

2020-09-27 18:00
징벌적 손해배상제 독소조항은
'3년간 해당사건 3건' 자격제한 삭제
징벌·형벌 동일시…소급적용 신중해야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 상법개정안을 두고 재계가 우려하고 있다. 개정안에 담긴 '독소조항' 때문에 기업 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결합될 경우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강자였던 기업, 특히 대기업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대한 진전"이라는 평가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자동차 중대결함 등 기업들의 투명하지 못했던 소비자 정책이 크게 선진화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집단소송만 노리는 법조인 탄생 우려
재계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나 집단소송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법무부의 입법예고에는 독소조항이 있다는 시각이 강하다. 무엇보다 증권집단소송법에서는 제한하던 소송대리인 자격을 이번 법무부 안에서는 대폭 완화했다는 점에 우려가 크다.

현행 증권집단소송법에는 3년간 해당 사건에 3건 이상 관여한 변호사의 소송 참여를 제한하는 소송대리인 자격 요건이 있었다. 집단소송만을 전문으로 하는 법조인 출현을 억제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이번 개정안에선 삭제됐다.

이 때문에 징벌적 손배제 최종 수혜자는 법무법인(로펌)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소송 남발로 기업 부담은 늘어나고 소비자 개개인은 생각보다 보상이 늘어나지 않는 반면, 로펌은 막대한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서다.

한 경영대 교수는 "미국에는 집단소송이나 징벌적 손해배상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이 있다"며 "이미 우리나라에도 이른바 '기획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들이 등장한 만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이중처벌'··· 형사처벌 조항 개정 필요성 제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영국·미국 등 영미법 국가에서 운용되는 제도로, '대륙법' 체계인 국가에는 도입 사례가 많지 않다. 

계약관계에서의 불법행위에 대해 민사적·당사자 간 해결을 중시하는 영미법계와 사적거래상의 불법행위도 중대한 사유가 있다면 형사책임을 묻는 대륙법계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대륙법계인 우리나라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할 경우에는 형사책임을 감면하는 후속입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생긴 이유다.

영미법계인 호주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한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호주 대법원은 1998년 피해자가 이미 형사처벌을 받은 피고인에게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징벌배상 목적인 처벌과 억제가 형사소송으로 인해 이미 실현됐기 때문에, 형사처벌 받은 행위에 대해 징벌배상이 인정된다면 피고를 이중으로 처벌하는 결과가 된다"며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뉴질랜드 또한 형사처벌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동시에 인정하지 않는다.

대륙법계인 우리나라는 그간 기업의 불법행위를 형사처벌해 왔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부가할 경우에는 '이중처벌'이 될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도 제품이나 환경 등 구체성이 있는 부분은 관련법에 업체 책임이 규정돼 있다"며 "특정 사건이 아닌 포괄적인 범위에서 소비자가 느끼기에 손해라는 이유로 민사와 형사소송이 동시에 들어오면 기업이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코로나19로 경제 상황도 좋지 못한데 재계에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며 "일방적 제도는 부작용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징벌적 손해배상은 국민 피해의 중대성과 피해입증의 어려움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서 적절하다"면서도 "'징벌'이라는 개념이 형벌과 동일하게 판단될 가능성도 있어 소급적용은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 남산에서 도심을 내려다본 모습. 서울 종로 일대에 청와대 등 관공서와 대기업 건물이 몰려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