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골퍼' 브라이슨 디섐보, US 오픈 정복

2020-09-21 07:08
USGA 메이저 US 오픈 최종 4라운드
과학자·헐크·점보 그립='괴짜 골퍼'
디섐보 유일한 언더파로 메이저 우승
이글1개·버디2개·보기1개로 3언더파
2타 차 2위에서 6타 차 역전 한판승

US 오픈 트로피를 바라보는 브라이슨 디섐보(中)[AP=연합뉴스]

US 오픈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브라이슨 디섐보[USA투데이=연합뉴스]


지난 5월 프로골퍼인 이언 폴터(영국)는 함께 라운드하기 싫은 선수로 최호성(37)과 브라이슨 디섐보(미국)를 꼽았다. 최호성의 '낚시꾼 스윙'에 대해서는 자신의 멘털을 흔들 것이라며 웃어넘겼지만, 디섐보에 대해서는 꽤나 자세하게 설명했다.

폴터는 "디섐보와 함께 라운드하면 이런 말을 중얼중얼한다. '16, +4, -15, 공기 밀도, 약간의 수분, -7, +84', 미안해 도저히 못 듣겠어"라고 인상을 썼다.

이처럼 디섐보는 '과학자'라 불린다. 골프를 과학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최근 체중과 함께 비거리를 늘려 '헐크'라는 별명도 붙었다. 그립도 남들보다 두 배 혹은 세 배가 두꺼운 '점보 그립'을 사용한다.

종합해 보면 그야말로 '괴짜 골퍼'다. 그를 보고 있자면, 풍차 괴물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처럼 눈에는 광기가 서린다. 그런 그가 21일(한국시간) US 오픈(총상금 1250만 달러·147억7500만원) 마지막 날 최종 4라운드, 유일하게 언더파 스코어를 적어내며 우승했다. 극악의 코스 난도로 유명한 윙드 풋 골프클럽(파70·7469야드)에서다. 돈키호테가 풍차에 나둥그러진 것이 아니라, 무찌른 셈이 됐다.

디섐보는 이날 3언더파 67타를 쳤다. 61명 중 유일한 언더파였다. 모든 선수들이 나흘 중 하루 정도는 오버파를 기록했지만, 디섐보는 나흘 내내 이븐파 이하를 유지했다.

디섐보는 저스틴 토머스(미국)가 5언더파 65타를 때리며 맹위를 떨친 첫날 1언더파 69타, 패트릭 리드(미국)가 선두로 치고 올라온 둘째 날은 2언더파 68타를 스코어카드에 적었다. 셋째 날 선두는 매슈 울프(미국)였다. 그는 이날 이븐파 70타를 적어냈다.

최종 4라운드 디섐보는 울프에 두 타 뒤진 2위로 출발했다. 5언더파와 3언더파였다. 4번홀(파4) 첫 버디를 낚았다. 2온에 이은 4m 버디 퍼트를 깔끔하게 떨궜다. 8번홀(파4)에서는 흐름을 깨는 보기를 범했다. 그러나 9번홀(파5) 흐름을 뒤집는 이글을 낚았다. 롱 홀에서 2온에 성공했고, 11m 이글 퍼트를 단박에 떨궜다.
 

점보 그립을 들고 그린 라이를 읽는 브라이슨 디섐보[AP=연합뉴스]


좋은 흐름은 후반부에서도 계속됐다. 11번홀(파4) 또다시 버디를 기록했다. 이번에도 4m 버디 퍼트였다. 함께 플레이한 울프는 점수를 줄줄이 잃었다. 추격을 당하던 울프는 이제 추격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실수가 연발하자 입에서는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그런 모습에도 디섐보는 흔들리지 않았다. 12번홀(파5)부터 18번홀(파4)까지 모든 홀에서 파를 잡았다. 18번홀을 걸어가던 디섐보는 카메라를 보고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6타 차 우승을 목전에 둔 선수의 여유였다.

두 타 차 2위에서 6타 차 우승을 차지했다. 최종 합계 6언더파 274타. 디섐보가 우승 상금 약 26억원과 함께 US 오픈 트로피에 이름을 남기게 됐다. US 오픈에서 오버파 없이 우승한 것은 1955년 이후 65년 만이며, US 아마추어 챔피언십과 US 오픈을 모두 우승한 전설들(타이거 우즈 등)과 나란히 걷게 됐다.

2016년 프로로 전향한 디섐보는 이 우승으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통산 7승을 달성했다. 메이저 대회 우승은 생애 처음이다. 다른 우승은 일반 대회 4승, 페덱스컵 플레이오프 2승이다.

그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대 메이저 대회(마스터스 토너먼트, US 오픈, 디 오픈 챔피언십, PGA 챔피언십)에 출전했지만,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5년간 톱10 안착은 0번에 그쳤다. 그러나 올해 PGA 챔피언십 공동 4위에 이어 우승을 기록했다. 톱10은 진즉에 넘었고, 톱5와 우승이다. '헐크'로 변신하고 나서다. 비거리가 받쳐주니 모든 것이 술술 풀린 셈. 그는 이날 티박스에서 평균 336.30야드를 날렸다. 비거리는 대회에 출전한 선수 전체 5위다. 페어웨이 안착률은 46%로 공동 18위에 올랐다. 그린 적중률은 65%로 4위, 퍼트 수는 1.5개로 3타를 줄이는 원동력이 됐다.

한편,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출전한 임성재(22)는 이날 1오버파 71타, 최종 합계 9오버파 289타 22위로 대회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