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은 무효" 故 지학순 주교 재심 열렸지만 일부만 무죄

2020-09-17 18:01
법원 "내란선동 실체 심리 불가능"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내용이 담긴 양심선언문을 발표해 구속수감 됐던 고(故) 지학순 주교에 대한 재심이 열렸지만 법원은 일부만 무죄로 봤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4부(허선아 부장판사)는 17일 지학순 주교 재심 공판에서 46년 전 유죄를 받은 긴급조치 위반에 대해서만 무죄를 선고했다. 

허선아 부장판사는 "형법 법령이 소급·상실되거나 위헌·무효가 된 경우 공소 제기 사건에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10년 대통령 긴급조치 1호는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도 2013년 긴급조치 1·2·9호가 위헌이라고 결론 지었다.

하지만 내란선동과 공무집행 방해 등은 그대로 유죄로 인정해 고인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내렸다. 

허 부장판사는 "실체를 심리하는 데 법률적 한계가 있어 당시 증거에 따라 유죄로 인정한다"며 "사건 재심 사유가 (긴급조치) 위헌 무효라는 점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고(故) 지학순 주교 [사진=천주교원주교구]
 

지 주교는 유신시절인 1974년 김지하 시인에게 유신반대 운동단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지원 명목으로 후원금 108만원을 줬다. 중앙정보부는 지 주교가 내란선동을 했다며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혐의 등으로 연행했다.

지 주교는 연행 하루 만에 석방됐지만 서울 명동성당 뒤편 가톨릭회관 앞마당에서 "유신헌법은 무효"라는 내용을 담은 양심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양심선언문은 후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결국 지 주교는 특수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같은 해 재판에 넘겨졌다. 그해 8월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열린 6·10항쟁 기념식에서 지 주교에게 민주화운동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