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ARM 품고 '반도체 공룡'…반도체 지형 변화에 업계 '촉각'

2020-09-15 00:15
"엔비디아 경영에 따라 다양한 시나리오"

새로운 '반도체 공룡' 회사가 탄생했다. 미국 반도체회사인 엔비디아(Nvidia)가 세계 최대 반도체 설계회사인 영국의 암(ARM)을 인수하면서다. 반도체 사상 최대 규모로 진행된 이번 인수·합병(M&A) 영향이 미치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파장은 심상찮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산업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은 자회사인 암을 엔비디아에 400억 달러(약 47조5000억원)에 매각한다. 

그래픽처리장치(GPU)의 글로벌 최강자로 꼽히는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의 협력사이자 경쟁사다. 파운드리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삼성전자에서는 놓칠 수 없는 '큰손' 고객이다. 최근에는 엔비디아가 차세대 GPU '지포스 RTX 30' 시리즈를 삼성전자의 8나노 파운드리를 통해 생산한다고 밝히며 주목받기도 했다. 

반면 GPU 설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를 숨가쁘게 추격 중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연구개발(R&D) 조직에 GPU 설계팀을 꾸리고 지난 7월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상황 속에서도 GPU 성능·구조·전문·엔지니어 분야에서 대거 인력 충원에 나서기도 했다. 주력 제품인 스마트폰과 자동차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품질 향상을 위해서는 GPU 기술력 향상도 필수라는 판단에서다.
 
암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설계 IP 업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SK하이닉스·퀄컴·애플·화웨이·미디어텍 등이 암에 기본 설계도 사용료를 내고 각자의 기술력을 더해 반도체 칩을 만든다. 특히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AP의 90%가량의 기본 설계는 암이 공급할 정도로 시장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갖고 있다.

엔비디아와 암이 손잡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엔비디아가 지금까지 쌓아온 그래픽 기술과 암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모바일용 AP 등에 투입하며 포트폴리오 확장에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엔비디아가 암의 '고객 중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암은 '오픈 라이선싱 모델'을 바탕으로 기업이 라이선스를 구입한 뒤 각 회사가 자신에게 맞는 식으로 기본 설계를 바꿔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업체 대부분이 암의 반도체 기본 설계에 기대고 있는 만큼 엔비디아의 판단에 따라 반도체 생태계 지형이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암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라이선스를 이용할 수 있었는데 엔비디아가 가격을 올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나선다면 업계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라며 "엔비디아가 취할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라 업계의 대응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반도체 업계에 지금 당장 타격이 있거나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엔비디아가 앞으로 어떻게 암을 운영하는지에 따라서 기존 고객사들이 이탈하거나, 기존과 같은 위치를 유지하거나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엔비디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