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시무10조] 대통령께 지금 힘쓸 일을 상소합니다
2020-09-14 09:50
[대한민국 국론어젠다(12·끝)] 세계 선도국가로 뛰어오르자
마음의 중정(中正)을 잡고, 진영정치를 벗어나 국가선도 리더가 되소서
최진석, 황호택, 이재호, 박승준, 곽재원, 이수완, 최준석, 최성환, 최재붕, 이상국
학계-언론계 지식인들이 각자 영역에서 올린 10인소(十人訴)
도끼를 옆에 놓고 상소한 14세 소녀
“엎드려 원하노니 신의 죄를 결정지어 네 수레에 팔다리를 매어 찢어죽이는 형벌을 내려 종로 큰길 위에 조리 돌려 만 사람이 한 마디로 죽여 마땅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한 뒤에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참하여 만 사람의 칼머리 아래에 놀란 혼이 돌아보지 않게 하소서.”
1972년 한 신문에서 조선의 어느 기생의 상소문을 엿새에 걸쳐서 보도한 바 있습니다. 조선 헌종 대에 참판과 대사간을 지낸 심희순의 첩이 된 용천기생 초월(楚月·1832~?)이 1846년 임금에게 올린 2만1000여 글자의 상소문이었습니다. 이 글은 구한말 영의정을 지낸 김병시(1832~1898)의 집안에서 보관하고 있던 필사본이었지요. 상소문이 보도되자 박정희 정부의 정보기관에서 그 후손을 찾아가 상소문을 챙겨갔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나 신랄하여 마치 박 정권을 비판하는 듯한 착시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14세 기생 초월은, 죄가 있다면 목을 쳐달라는 의미로 도끼를 올려놓는 지부(持斧) 상소를 했습니다. 도끼에 더해 그는 거열(車裂, 수레로 사지를 찢음)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초월은 이렇게 상소했습니다.
“제 남편 희순의 죄를 아뢰겠습니다. 재상의 손자인 그는 사람됨이 미욱하여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무단히 타인을 냉대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지각이 없고 소견이 좁아 말이 통하지 않으니 밥통이나 다름없습니다. 재상 심상규의 손자로 벼슬이 하늘처럼 높으니 아무도 감히 당해낼 수야 없지만 나라가 위태로운데 세간의 병과 고통도 도무지 모르고, 크고 작고 무겁고 가벼운 일과 옳고 그르고 길고 짧고 모나고 둥글고 굽고 곧고 먼저 해야 할 일에 대해 전연 몰지각하니 국록을 축내는 큰 도적이 비단 이 한 사람이 아니고, 온 조정이 이와 같으니 누가 착하고 누가 악하겠습니까.”
14세 소녀는 고관(高官)인 남편을 비판하면서, 국정 문란을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도끼 참형(斬刑)과 거열형을 작심하고 올린 상소이니 한낱 우스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헤비메탈의 산 역사로 불리는 미국그룹 '메탈리카(Metallica)'는 '모두를 위한 정의'라는 노래를 불러, 진실을 농락하는 세상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네게 달린 꼭두각시 줄을 당길 때, 정의는 끝장났네. 없는 진실을 찾으며, 이기는 것이 전부라네(Pulling your strings, justice is done. Seeking no truth, winning is all). 권력이 범하기 쉬운 유혹을 대중가요가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시무7조와 영남만인소 청원의 의미
왕조시대에 있었던 이 대담하고 기이한 상소문이 떠오른 것은 얼마전에 청와대 청원에 올라왔던 ‘조은산 시무7조’와 ‘경상도 백두의 영남만인소(嶺南萬人疏)’ 때문일 것입니다. 2020년 때아닌 조선풍(風)의 릴레이 상소는 파장(波長)을 부르며 '공유‘되었습니다. 코로나19와 거듭되는 경제불황에 찌들었던 민심이 벌떡 몸을 일으켜, 세상에 대해 대담한 발언을 쏟아냄과 함께 한바탕 껄껄 웃으려고 작심한 듯하였습니다. 꾹꾹 퍼담은 분노와 절망을 툭툭 털고 마치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듯, 비교적 기품을 잃지 않은 해학과 통렬한 풍자로 ’임금‘으로 상정된 대통령을 향해 조선의 그 소녀처럼 상소한 것입니다.
두루 돌려가며 읽었을 글이고, 또 ’농담‘에 가까운 대목들도 많은지라 일일이 ’다큐‘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이성적인 정책과 실리 외교, 정부 인사, 헌법적 가치에 대한 충언(忠言)은 곱씹을 만한 대목이라 여겨집니다. 마지막에 들어 있는 ’대통령이 솔선한 일신(一新, 자기혁신)‘에 관한 조언은 지금 이 나라에서 누구도 정색을 하고 말하기 어려운 것으로, 천금에 값하는 고언(苦言)이라 하겠습니다.
공자는 제나라 경공에게 정치에 관해 설명하면서 군군신신(君君臣臣)을 말했습니다. 왕은 왕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뜻으로 흔히 인용하는 말입니다. 이건 단순히 그런 뜻이 아닙니다. 군군(君君)을 반복한 까닭은 앞의 군(君)과 뒤의 군을 구분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의 군은 실제 사람으로 앉아 있는 임금 복장의 그 존재이며, 뒤의 군은 임금의 역할을 가리킵니다. 이 말의 뜻은 당신이 군주이지만 벼슬이 군주일 뿐, 인간됨이 군주인 것은 다른 문제라는 의미입니다. 군주의 벼슬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군주 같지 않은 군주가 많기에, 군주의 명칭과 군주의 실상이 일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공자는 그때까지 ’왕‘이란 존재에 대해 인간과 직책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나눠서 따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권력이 개판을 쳐도 권력‘이란 생각을 바로잡아준 것입니다. 이 생각을 밝히고 있는 것이 군군신신(君君臣臣)입니다. 무서운 말입니다. 경공은 이 말을 알아듣고 이렇게 답합니다. “왕처럼 여겼는데 왕이 아니면, 비록 먹을 게 있다 해도 내 입에 들어올 게 있겠습니까?” 춘추전국시대의 무질서의 원인은 왕이란 인간과 왕의 구실을 구분하지 않는 패도(覇道)에 있었습니다. 공자는, 패도는 정치가 아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아주경제는 지난 7월 21일부터 오늘까지 근 두 달에 걸쳐 ’대한민국 국론(國論) 어젠다 - 세계 선도국가로 뛰어오르자‘라는 시리즈를 12편으로 실었고, 그중에 서언(序言)과 결언(結言)을 뺀 10편이 시무(時務, 우리 국가가 지금 해야 할 일)를 다룬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소의 심정으로 정리를 하였습니다.
2022년 5월(임기만료)을 지금 생각하소서,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반쪽 대통령'에서 몸을 빼내, 코로나 이후 'K-대통령'이 되소서
시무1조 - 제발 ’미래‘와 싸우소서(철학자 최진석, 이상국 논설실장, 2020.7.21/8.11)
이 시리즈의 기조(基調)로 제시한 ’탈진영(脫陣營) 선도국‘은 국가리더가 과감하게 진영의 리더를 벗어나 ’새로운 글로벌 환경‘을 선도하는 위상에 서야 한다는 주문입니다. ’반쪽‘ 정파(政派)의 정상(頂上)으로는 이 패러다임 전환 시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어렵다는 것을 문재인 정권 초중반을 돌면서 이미 확인한 바 있습니다. ’과거‘를 파헤쳐 선악(善惡)을 재정립하는 일의 중대성이 작지 않지만, 그것에 들인 시간과 공력과 갈등 때문에 국가 전체의 미래 지향성이 좌초되는 상황을 거듭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격변기에 필요한 것은 힘의 배분과 결집입니다. 진영의 힘만으로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국민 전체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국민 모두를 움직이게 하는 것, 다른 정파와 마주 보고 달리는 게 아니라 미래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뛰는 것, 이것은 이상(理想)이 아니라 시대의 필연(必然)입니다.
시무2조 - ’적(敵)‘ 만들기와 ’빠‘ 정치를 탈피하소서(황호택 논설고문, 2020.7.28)
진영 논리 속에서는 ’적‘을 만들면, ’우리‘의 결합과 동지의식이 공고해집니다. 이것을 노려, 굳이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는 대상까지 적으로 돌려 증오와 혐오를 투사하여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술수를 우리는 미국의 트럼프 정부에서도 목격하였습니다. 한편 최근 드러난 ’포털뉴스‘ 순위에 가해지는 정치적 입김 또한 사실을 왜곡하는 일그러진 언론판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강고한 결속력과 공격성을 핵심으로 한 여권 진영의 ’빠‘ 현상도 민주정치에 부정적 역할을 하는 건강하지 못한 흐름입니다. ’진영 논리‘를 모두가 비판하는 것 같지만, 진영 논리 속에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세력들이 이 논리를 ’정의‘처럼 포장합니다. 적화(敵化)와 ’빠‘는 진영 사이의 경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준다고 믿는 ’이익‘을 포기해야 진영은 단순한 ’생각과 신념의 차이‘라는 원래의 실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정권을 뒤집는다고 ’진영‘을 결코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차이‘를 부각시키지 말고, 같은 점과 비슷한 생각을 중심으로 진영이 서로 ’공유‘하는 지점을 넓혀가야 합니다. 이것이 이 나라의 고질화한 갈등을 근치(根治)하는 첫걸음입니다.
시무3조 - 시장경제를 중히 여기소서(박승준 논설고문)
덩샤오핑의 전략적 유연성을 이제 우리가 실천할 때입니다. 그는 전임자 마오쩌둥이 사회주의의 순일(純一)한 이념으로 짜놓은 사회주의 경제 프레임을 손보았습니다. 그가 채택한 당의 기본방침은 실사구시와 사상해방이었습니다. 덩샤오핑은 시장경제가 자본주의 사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주의에도 구현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중국의 강성과 번영을 만든 것은 이런 발상의 전환과 결단의 힘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오쩌둥은 ’공정한 세상‘을 이상으로 하는 대동사회를 외쳤고, 덩샤오핑은 ’잘사는 사람을 만들어내고 적당한 갈등도 존재하는 소강사회‘로의 전환을 꿈꾸었습니다. 한국은 중국의 역사를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달려온 덩샤오핑의 소강사회를 버리고, 중국을 퇴보시킨 마오쩌둥의 대동사회로 급히 나아가려는 꿈을 꿉니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부를지, 깊은 성찰과 진지한 방향 검토가 필요합니다.
시무4조 - 분노의 청춘부터 돌보소서(이수완 논설위원)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채우며 점점 익어간다.” 1930년대 말 미국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소설의 명 구절에서 ’사람‘을 청춘으로 바꾸면 2020년의 대한민국의 풍경이 됩니다. 청년 절반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고, 수입이 없어 결혼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회. 이 절박한 청년들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을 찾는 것이 정부가 풀어나가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입니다. 여기에 일련의 권력자 자녀 스캔들로,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을 역설해온 정부에 대한 청년의 격앙이 커진 상황입니다. 이건 단순한 정치적 공세만이 아니라, 이 땅의 '미래'에 대한 나쁜 신호입니다. 짐 로저스는 한국 청년들의 공무원 시험 열풍을 보고 “활력을 잃고 몰락하는 사회의 전형”이라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고용숫자를 늘리는 알바나 임시직이 아니라, 미래에 투자하는 디지털 문명의 핵심 속에 있어야 합니다. 그 벤처 생태계에 집중하고 스타트업 창업을 국가 최고 과제로 삼는 정책 집중이 필요합니다. 청년이 나라를 만들고, 청년이 미래를 만든다는 그 진리를 여야 없이 팔 걷고 나서서 함께 실천해야 합니다. 이 과제에 집중한다면 ’진영논리‘는 오히려 저절로 퇴색할 것입니다.
시무5조 - ’통일‘이란 말을 쓰지 마소서(이재호 교수)
통일(統一)은 그 말이 뜻하는 바와 같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가 있는 일이며 상대의 명운(命運)도 걸렸을 일을 한쪽의 의지대로 쉽게 조정할 수 있겠습니까. ’통일‘의 의지를 돋우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은 북한이란 ’예측불허 상대‘와의 협상을 통해서 해나갈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이 나라가 통일문제를 다루는 ’기반‘이 어수선한 까닭은 정권이 정권을 부정하는 '권력교체'로 대북정책의 기조가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노무현정부에선 평화번영정책으로 바뀌었고, 이명박 정부는 비핵 개방 3000,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정책으로 바꿨고, 문 정부는 그 자체를 거부했습니다. 대북정책의 큰 그릇이 없습니다. ’통일‘이란 말을 많이 쓴다고 통일에 유리하지 않다는 것도 이제 생각해야 합니다. 과거 서독은 동독과의 관계 개선 과정에서 통일이란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작은 걸음마 정책‘이었습니다. 통일은 기다림이며 분구필합(分久必合, 나뉜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진다)의 신념으로 정권을 초월해 긴 호흡으로 이끌어가야 하는 일입니다. 통일부라는 부서의 이름과 시스템 또한 오히려 통일에 방해되는 '떠들썩한 수레'가 아닌지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시무6조 - 권력의 윤리를 돌아보소서(박승준 논설고문)
중국 덩샤오핑은 죽기 전 시신과 각막 기증을 유언했고, 유골도 보관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남몰래 월급의 많은 부분을 동네 중학교에 기증해온 것이 사후에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마오쩌둥의 맏아들 마오안잉은 자원해서 당시의 한국전쟁이 벌어지던 곳으로 갔고 평안북도 대유동에서 전사했습니다. 마오쩌둥은 한참 동안 사망 전보를 바라보다가 “전쟁 아니냐, 다치고 죽고 하는 거지(戰爭嘛, 總要傷亡)” 딱 한 마디만 남겼다고 합니다. 전직 법무장관은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 사회주의자들의 철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왜 실천하지 못하는지 답답합니다. 강남 부동산 때문에 직(職)을 내놓는 청와대 인사와 고관들, 자식의 비위(非違)를 사과는 못할망정 감추고 감싸고 게다가 오히려 가담하는 정황이 드러나는데도 무치(無恥)로 일관하는 공직자들, 투기 증거가 드러나거나 의로운 일의 뒤에서 돈을 빼돌린 기막힌 일탈(逸脫)이 밝혀지는데도 책임있는 반성이 없는 정치인들. 어느 정권이든 이런 윤리 실종이 없지 않았지만, 사회 정의를 평생 내세우며 주류 권력에 닿은 이들의 후안(厚顔). 대통령의 침묵과 인내만이 능사가 아닐 것입니다.
시무7조 부자를 욕하지 마소서(최성환 교수)
홍콩 안전법 시행으로 글로벌 기업과 금융자본이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홍콩 소재 대기업 임원들의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국은 안 간다“입니다. 한국은 규제가 많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규제의 예측 가능성이 너무 낮다는 겁니다. 기업 운영의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얼마전 리쇼어링(reshoring)을 역설했지요. 해외에 나간 기업들이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생기자 자국 귀환을 검토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기업들이 과연 국내에 돌아올까요. 임금, 노조, 규제. 기업 '노이로제 3종세트'를 떠올리며 고개를 흔듭니다. 특히 이 정부 들어 기업과 부자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특히 공적인 영역에서 너무 뚜렷해져 있습니다. 한국 부자들이 기를 쓰고 해외골프, 해외여행을 간 이유가 허영심이나 호기심 때문만이라고 보십니까. 한국에선 돈을 쓰면 눈치가 보이기에 해외로 나갑니다. 이러니 국내 소비가 제대로 일어나겠습니까. 선심성 돈풀기로 부족한 재정을 메우려고 세금을 짜내는 것은 그야말로 소비를 줄이는 정책일 뿐입니다. 규제 완화는 가끔씩 외치다 마는 ‘구호’가 아니라, 경제의 기초적인 활기를 만들어내는 ‘상식적인 정책’입니다.
시무8조 대학, '큰 방향'을 보여주소서(최준석 과학선임기자)
1960년대 후반 한국은 ’공대의 나라‘였습니다. 전자공학과와 기계공학과는 공대의 양대 축이었지요. 한국의 전자산업과 반도체산업, 그리고 자동차산업과 중공업이 세계적으로 도약한 것은 당연히 이런 학문적 열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영국의 대학들은 물리학과 학생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서울시립대 물리학과의 한 교수(박인규)는 소셜네트워크에 '물리학에 미친 나라, 옥스퍼드 대학 물리학과 규모를 알아냈다'는 글을 올렸지요. 전임교수 120명, 박사급연구원 180명, 대학원생과 학부생이 1160명이나 됩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39명입니다. 박 교수는 영국인은 물리학과를 가고 제3세계에서 온 학생은 공대로 가는 현상을 보면서, 이것이 ‘국가가 어느 단계의 사회로 성숙해가느냐의 징후’라고 읽어냈습니다. 대학은 그 국가사회에 맞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박정희 시절의 ‘공대의 산업화’ 사회는 지났습니다. 물리학에 미친 국가로 한국이 가야, 이 나라의 ‘수준’이 달라집니다.
시무9조 포스트 코로나 '과기정책'을 정비하소서(곽재원 수석논설위원)
코로나 사태 이후 일본 과기 학술정책연구소(NISTEP)에서 일본 내 과기 전문가들을 설문조사했더니 ‘코로나의 자극으로 과학적 발견-발명-혁신이 대대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이 전염병은 묘하게도 중세의 암흑기를 강타했던 흑사병과 ‘타이밍’ 측면에서 닮은 점이 많습니다. 흑사병은 인간을 공포와 고통에 빠뜨렸으나, 인간은 결국 ‘신(神) 중심’의 세계관을 벗고 인간의 창조와 가치를 새기는 르네상스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코로나19는 그 강력한 전염성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강제적으로 언택트-디지털 문명으로 넘어가게 하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 그간 짜놓은 과기 기본계획들을 일제 점검하고, 종합적으로 관리하여 세계적인 ‘코로나 르네상스’를 주도하기 위한 플랜으로 수정해 나갈 때입니다. 대규모 ‘투자’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지닌 디지털 역량을 어떻게 코로나 이후 세계에서 발휘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나가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시무10조 문화에서 영감을 얻으소서(최재붕 교수)
포노사피엔스 문명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창조기업 애플의 시총은 2조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실시간 확진자 숫자와 위치를 알려주는 사이트를 만든 20세의 홍준서 대학생, 확진자의 동선까지 알려주는 ‘코로나 맵’을 개발한 26세의 이동현 대학생. 이들이 포노사피엔스입니다. 한국은 코로나 시대의 ‘선도국’으로 갈 수 있는 저력을 이미 문화 영역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튜브로 데뷔하고 SNS로 팬덤을 확보한 BTS가 '빌보드 싱글차트 핫100' 1위를 차지하는가 하면 작은 벤처 스마트스터디가 만든 뮤직비디오 베이비샤크가 63억뷰를 달성하며 유튜브 역대 2위를 기록했습니다. 또 넷플릭스에서는 '사이코지만 괜찮아'라는 드라마가 압도적 아시아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카카오게임즈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상장에 엄청난 자본이 몰렸습니다. 지금 국내에서 폭발하고 있는 '트롯르네상스'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고통받는 시대의 절규나 힐링의 복고적 유행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신명의 정체성과 기질을 재발견하는 '문화적 폭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는 인류의 경제와 삶을 향해 질문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육과 교회 등 종교계에도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판’을 바꾸라고 말합니다. 기존의 모임을 중심으로 한 행사와 경영과 수익 방식을 과감히 청산하고, 언택트와 온라인과 배달과 전혀 다른 판으로 나아가라고 떠밀고 있습니다. 기존의 일이 ‘폭망’했다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찾아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통령은 달라지는 세상에 가장 선도적인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반쪽대통령'에서 몸을 빼내, 코로나 이후 세계의 'K-대통령'이 되소서. 온국민의 ‘마음 뉴딜’에 비상한 관심으로 정책의 각을 맞추소서. 시무 상소(上訴)는 희망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중정(中正)을 잡고 한뼘 달라지는 '오늘'로 내일을 만드소서. 권불오년(權不五年).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2022년 5월(임기만료)을 지금 생각하소서.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