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공개변론…만약 폐지하면 대안은?

2020-09-10 16:42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하면 대안은?
사적 제재수단 허용해서는 안 돼

헌법재판소가 공개변론을 열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위헌인지에 대한 찬반 의견을 들었다. 오래전부터 명예권 보호와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었던 사안으로 최근 '미투', '디지털교도소' 등 논란과 함께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10일 헌재는 형법 제307조 제1항 명예훼손죄 위헌확인 사건 공개변론을 이날 오후 2시에 진행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하면 대안있나?
헌재는 공개변론에서 찬반 의견을 충분히 들은 뒤 조만간 위헌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만약 합헌으로 결정된다면 현재 상황이 유지돼 큰 변화가 없겠지만 위헌으로 판단돼 법이 폐지될 경우 대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인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헌재는 청구인 측에 만약 사실적시명예훼손죄를 규정한 형법이 폐지 돼 비범죄화 된다면 부작용을 막을 대안이 있는지를 물었다.

청구인 측 변호인은 "만약 사실이라면 공공의 이익으로 추정돼야 한다"며 "다만, 공공의 이익과 무관하게 오로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목적이라는 점이 증명되면 형사 처벌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위법성 조각사유가 있지만 진실을 적시한 사람이 '공공의 이익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공의 이익이 없고 상대를 해하려는 목적의 사실적시'라는 것을 검찰 측에서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출석한 김재중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릇되고 과장된 허명을 형사처벌 등 강한 규제를 통해 보호해야 할 이유가 있냐"며 "피해를 입은 경우 민사소송이나 반론, 정정청구 등으로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사적 제재수단 허용해서는 안 돼
반면 이날 이해관계자인 법무부 측 참고인 홍영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성범죄 및 아동학대 등 강력사건 범죄자 신상을 임의로 공개하는 웹사이트 디지털교도소에 이름과 얼굴 등이 공개돼 주변에 억울함을 호소했던 한 대학생이 숨진 채 발견된 것을 언급하며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비범죄화되면 이런 사례가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해당 정보가 사실이라도 개인의 사생활에 관련된 정보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개인이 공개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사적 제재수단’을 이용하는 상황을 국가가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법무부 측은 "현재 제도상으로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위법성 조각사유가 있다"며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을 보호하고 법익의 균형성을 지키는 효과적인 규제 수단이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앞서 2016년 2월 헌재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정보통신망법에 70조1항에 대해서 합헌 결정을 내렸다며 이 결정과 다르게 판단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당시 헌재는 7:2로 합헌결정하며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명예훼손적 표현을 규제해 인격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이유를 밝혔다.
완전 폐지아닌 부작용 보완하는 입법 필요
이런 상황에서 앞서 법조계는 법 폐지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명예권을 지킬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7월 28일 열린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의 균형적 보호를 위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개정방향 토론회’에서 손지원 변호사(사단법인 오픈넷)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를 균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형법과 정보통신망법에서 규정하는 ‘사실’을 ‘타인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로 개정하자"며 "헌법재판소 선례 등을 보면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에 관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해석기준이 제시되고 있어 법 집행기관의 자의적 해석에 대한 염려도 적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미 사생활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법규정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만약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관련 형법을 폐지한다면 관련 해당 조항의 위법성 조각사유를 규정한 조항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현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형법 310조에 의해 위법성이 조각되고 있는데 해당 법 조항에 대한 개정이 없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형법 제310조는 제307조 1항(사실적시 명예훼손)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승 연구위원은 "예를 들어 한 기자가 충분한 취재를 통해 어떤 사실을 보도했다가 추후 허위사실로 밝혀진 경우, 310조에 의해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며 "만약 307조 1항이 폐지된다면 이 기자는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아 언론·출판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형법상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 공개 변론에서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재판관들이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