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법투(法鬪) 비극 그리고 증시 동학군과 文의 위험한 '영끌'
2020-09-09 05:05
한국형 테슬라법과 맞물린 삼바 상장 그리고 논란의 회계처리기준 변경
증선위, 2015년 지분법 처리 이전 종속회계 처리를 회계처리 위반 판단
검찰은 증선위 고발 내용과 달리 2015년 이후에 '범죄 의도' 있다고 기소
검찰이 인정한 프로젝트-G 완성 시기 '2012년 12월'도 논란 가열
검찰 기소가 맞는다면 동학개미는 고의 분식회사 삼바에서 뛰어내려야
증선위, 2015년 지분법 처리 이전 종속회계 처리를 회계처리 위반 판단
검찰은 증선위 고발 내용과 달리 2015년 이후에 '범죄 의도' 있다고 기소
검찰이 인정한 프로젝트-G 완성 시기 '2012년 12월'도 논란 가열
검찰 기소가 맞는다면 동학개미는 고의 분식회사 삼바에서 뛰어내려야
일론 머스크(Elon Musk). 미국 나스닥 상장기업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전 세계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이슈 메이커다. 그가 입을 열면 주식시장도 출렁거린다. 머스크의 유명세는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조그만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6년 10월 5일. 일명 '한국형 테슬라법'으로 우리 주식시장의 상장제도 개편을 이끌었다. 당시 금융위원회의 보도자료 제목은 '역동적인 자본시장 구축을 위한 상장·공모제도 개편 방안'이다. 이 개편의 핵심은 '테슬라 요건 신설'이다. 테슬라 같은 혁신 기업의 자본시장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혁신 기업은 보통 상장사보다 투자 위험이 더 크다고 본다. 대신 투자 수익률은 더 높을 것으로 기대한다.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넘치니 투자자는 투자처가 늘어서 좋고, 기업들은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으니, 윈윈이다. 그렇게 미국의 혁신기업 지원 프로그램은 '테슬라법'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상륙했다.
상장제도의 하위 규정은 한국거래소가 만들었다. 한국거래소는 '시가총액 6000억원, 자본금 2000억원'을 특례 상장 요건으로 제시했다. 원래 계획은 코스닥에 상장하는 것을 추진했으나, 막판에 코스피를 열어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삼성이 만든 바이오 의약품 합작법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는 이렇게 이 제도 적용의 첫 스타트를 끊었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삼바가 소위 촛불 혁명과 박근혜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며, 특례 상장이 특혜 상장이 되고 태풍의 눈으로 돌변할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비극의 시작이다.
◆한국형 테슬라법은 필연인가, 우연인가
삼바는 2011년 4월 21일 출범했다. 바이오 의약품 회사지만, 신약 개발 능력이 없는 삼성으로선 파트너가 필요했다. 바이오 의약품 연구·개발(R&D) 회사인 바이오젠을 끌어들였다. 바이오젠과 함께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라는 회사를 만들고, 나중에 지분의 절반(50%-1주)에 대해 살 권리(콜옵션)를 줬다.
삼바는 2016년 11월 코스피에 상장했다. 설립 후 계속 적자를 냈다. 자회사 에피스도 지난해 8년 만에 흑자를 냈다. 기존 상장 요건을 따르면 적자여서 상장할 수 없다. 기업이 현재는 적자 상태라도 성장 가능성을 고려해 상장을 허가하는 게 테슬라법이다. 거래소가 시가총액과 자본금만을 상장 요건으로 제시한 이유이기도 하다.
자산이 상대적으로 중요해졌다. 이는 자산재평가를 통해 가능하다. 삼바가 콜옵션 지분에 대한 평가 방식을 지분법으로 바꾼 것은 상장 요건을 맞추기 위해 기존 자산을 재평가하는 과정에서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다시 정의해야 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삼바 상장 문제는 2015년 초부터 수면으로 올라왔다. 그 이전엔 에피스를 나스닥에 상장할 계획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결과 자료(9월 1일)를 보면, 검찰은 이것을 회계부정(회계처리기준 위반)이라고 봤다. 이어 삼성물산(이하 물산)과 제일모직(이하 모직)의 합병을 통해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고(조작), 이는 승계를 위한 '의도'(목적)가 있는 것이어서 범죄가 성립한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중앙지검에선 회계부정과 관련한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의 판단 내용은 인용하지 않았다. 증선위는 검찰에 이 사안을 고발했으나, 내용이 다르다. 증선위 조치 및 고발(2018년 11월 14일) 내용을 보면, 삼바가 2015년에 바이오젠의 콜옵션 사항을 지분법으로 바꾼 회계처리를 위반이라고 판단하지 않았다.
증선위의 관련 조치 자료엔 "2015년에 에피스 투자주식을 지분법으로 처리하면서 '2012~2014년에 종속기업으로 회계처리한 오류'를 소급해 수정했어야 함에도 이를 수정하지 않고, 2015년에 지배력 변경 회계처리를 함으로써 2015년부터 2018년 반기까지 관련 자산 및 자기자본을 과대계상했다"고 적혀 있다.
다시 정리하면 2015년에 지분법으로 회계처리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 이전 종속기업으로 처리한 것이 잘못이었고, 2015년에 지분법으로 정정하면서 이를 소급해 과거 치를 수정하지 않아, 이후 자산과 자기자본이 과대계상하게 됐다는 얘기다. 증선위는 고발 조치 내용에서 2015년 지분법으로 수정 적용한 것이 물산과 모직의 합병 비율을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의도'가 있었는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그 의도에 대한 판단은 증선위 몫이 아니다. 증선위는 분식(회계처리기준 위반)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다. 검찰이 증선위의 고발 내용을 토대로 추가 수사를 통해 증선위의 분식 적용 사항이 잘못됐다고 하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다만, 그것은 법원이 판단할 문제다.
재판부가 최종적으로 검찰의 기소 증거를 채택하면 증선위는 관련 회계처리기준 위반 조치를 다시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증선위원들은 검찰과 판사보다 이 분야에선 더 전문가라고 봐야 한다. 검찰의 금융조사부에 금융감독원 직원들을 비롯해 다수의 금융 전문가들이 파견돼 일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2011년 4월과 2014년 5월이다. 삼바 출범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와병 시점이다.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승계와 관련한 의도를 가지고 삼바의 분식을 통해 물산-모직의 합병 비율을 조작한 주범은 이재용 부회장이다. 그러나 검찰은 보도자료에 '승계계획안인 프로젝트-G는 2012년 12월에 완성됐다'고 적었다. 이에 따라 2013년부터 2014년 4월까지 에버랜드 사업조정(옛 제일모직 패션사업 양수 및 레이크사이드 인수 등)이 이뤄졌다고도 했다.
이건희 회장은 병치레로 해외 요양이 잦았고,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면서 많은 의사결정을 위임했다. 그러나 그룹 승계 작업에 손 놓고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승계 작업의 시발점인 삼바의 설립부터 이후 구체 계획까지 이 회장의 의중을 배제한 채 진행됐다고 전제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승계계획안의 주범은 이 부회장이 아니라 이 회장이라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 바이오젠을 끌어들여 에피스를 만들고, 삼바를 키우기 위해 상장이 필요하다는 것은 출범 때 이미 어느 정도 교통정리된 사항이다. 이런 중대한 승계와 관련한 계획을, 이 회장이 와병으로 인해 의사결정에서 완전히 빠진 상황에서, 그때그때 이 부회장이 평소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사와 달리 경영권을 장악(?)하기 위해 진행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삼바의 테슬라법 적용은 당시 국내 경제계의 염원이 담겼었다. 미래 먹거리 아이템을 고민하던 국내 대기업들은 바이오산업에 주목했다. 거액의 자금이 들어가는 이 큰 사업을 자기 돈만으로 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이들 산업을 지원·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승계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재벌들의 큰 그림이라고 보는 측도 있다. 이 특례 상장 규정을 적용받은 곳은 단 두 곳뿐이다. 삼바와 SK바이오팜이다. 그렇게 특례 상장은 특혜 상장으로 똥바가지를 뒤집어썼다.
집값 폭등과 부동산 정책 논란으로 골머리를 앓던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우리 주식시장을 떠받치는 동학개미를 치켜세우며 나름대로 분위기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여세를 몰아 세금으로 손실을 메워주는 펀드까지 만들려다 제동이 걸리긴 했으나, 집값에서 화제를 돌려준 동학개미는 문 대통령에게 그야말로 고마운 존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간 개인투자자들이 사고 판 주식 금액은 491조원이다. 하루 평균 24조5000억원을 거래해 전체(31조원)의 79.2%를 차지했다. 이들의 회전율도 314.7%나 된다. 외국인(42.2%), 기관(37.7%)보다 월등히 높았다.
2016년 11월 삼바의 공모주 청약(공모가 13만6000원) 경쟁률은 45대1이었다. 당시 청약 열기는 예상보다 뜨겁지 않았다. 기관들이 380조원이나 투자한 것에 비하면 그렇다. 8일 삼바 종가는 77만4000원이다. 크게 뉘우친 동학개미들은 지난 6월 SK바이오팜 청약(공모가 4만9000원)에 영끌해 뛰어들었다. 경쟁률은 323대1, 31조원을 투하했다. SK바이오팜의 8일 종가는 18만8000원이다.
만약, 검찰의 기소 논거가 맞는다면 문 대통령은 구세주 동학개미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동지들, 이 두 주식은 과거 정권에서 삼성과 SK에 특혜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사기(詐欺)로, 두 재벌의 총수는 물론 당시 이런 상장 규정을 만든 관료들을 솎아내 능지처참할 것이니, 어서 난파가 불 보듯 뻔한 배(삼바·SK바이오팜 주식)에서 뛰어내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