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네 리뷰] 나문희·이희준 '오! 문희', 코미디라고 했잖아요

2020-09-02 00:00

2일 개봉하는 영화 '오! 문희' [사진=영화 '오! 문희' 스틸컷]

"낭만적이네요. 이 조명, 온도, 습도…."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출연자가 남긴 말이었다. 장소, 조명, 온도 등 하나하나의 요소로 어떤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의미였다.

그의 말대로 대개 추억은 여러 요소로 만들어진다. 그날의 날씨, 그날의 기분, 그날 먹은 음식이나 만난 사람들 등등. 모든 요소가 그날의 기억이 되는 셈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어떤 영화는 작품이 가진 본질보다 다른 요소들로 재미를 가르기도 한다. 혹평 받은 영화가 '인생작'으로 등극할 때도 있고, '인생영화'가 다시 보니 형편 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최씨네 리뷰>는 필자가 그날 영화를 만나기까지의 과정까지 녹여낸 영화 리뷰 코너다. 관객들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편안하게 접근하고자 한다. 


지난 31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영화 '오! 문희'(감독 정세교)의 시사회가 진행됐다. 오랜만에 시사회 일정이었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 않았다. 코로나19 속 시사회에 대한 부담, 무더위도 한 몫 했다. 마스크 안으로 땀이 맺히고 더운 숨 때문에 안경이 하얗게 번졌다. 모 배우가 예능에서 했던 말들이 입에서 맴돌았다. '도네, 나는 도네.'

시사회 전 프레스킷을 둘러봤다. 영화 정보나 출연진, 제작진의 소개와 비하인드 등이 담겨있다. 대충 둘러보면서 사실 큰 기대는 안 했다. 엄마와 아들이 딸을 친 뺑소니범을 담는다니. 그간 본 몇몇 한국 영화가 생각났다.

슬쩍 러닝타임을 검색해보는데 팟 불이 꺼졌다. 그리고 몇 분 뒤 펑펑 울었다. 속으로 외쳤다. '아! 코미디 영화랬잖아요.'

2일 개봉하는 영화 '오! 문희'[사진=영화 '오! 문희' 스틸컷]


금산의 한 마을, 보험 회사의 에이스인 두원(이희준 분)은 기억이 깜빡깜빡하는 어머니 문희(나문희 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 보미(이진주 분), 유달리 영특한 강아지 앵자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두원은 딸 보미가 뺑소니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유일한 목격자는 어머니 문희와 강아지 앵자. 무얼 물어도 속 시원한 답을 들을 수 없다. 보미는 의식 불명에 경찰은 미적지근하게 대응해 두원의 속은 타들어 간다. 믿을 건 오직 어머니뿐. 문희는 기적처럼 뜻밖에 기억을 꺼내고 두원은 단서들을 취합하며 뺑소니범을 찾아 나선다.

영화의 기본 골자는 추적극과 코미디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웃음이 터지는 충청도 화법이나 보험 회사 차장 두원이 단서들로 추리해나가는 과정이 균형감 있게 잡혀있다. 두 장르로 골자를 짜놓고 성긴 곳은 가족, 성장, 갈등 봉합과 액션 등으로 채워 넣었다.

외형이나 기본 골자는 추적극과 코미디지만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원망했던 어머니를 용서하는 아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어머니와 아들의 화해 과정과 갈등 봉합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다.

필자는 나문희 배우의 얼굴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서글퍼진다. 그간 그가 쌓아놓은 얼굴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 문희' 속 문희는 대개 천진난만한 얼굴이지만 오히려 관객들의 마음을 쓸쓸하게 만든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자식들과 춤추는 노인들을 보는 얼굴, 마주 앉은 아들의 입에 돈저냐를 물려주는 얼굴. 스크린 속 문희는 그저 가만히 상대를 바라보지만,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건 객석에 앉은 나다. 닮은 데도 없고, 비슷한 일을 겪은 것도 아닌데 스크린 속 문희가 꼭 내 가족처럼 느껴진다. 스크린 속 문희가 관객의 어머니가 되는 과정. 배우 나문희의 '마법' 덕이다.

극 중 나문희는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것뿐만 아니라 코미디, 추리, 종국에는 액션까지 소화하며 그야말로 '오! 문희'를 만든다. 데뷔 후 첫 액션이라는데. 놀랄 정도로 카타르시스를 끌어낸다.

2일 개봉하는 영화 '오! 문희'[사진=영화 '오! 문희' 스틸컷]


영화를 보며 이희준에게 여러 번 놀랐다. '오! 문희' 속 이희준은 두원 그 자체였다. 오래 원망했지만 너무나 사랑하고, 업고 가야 하지만 반대로 업혀있는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섬세하게 표현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극 중 어머니 문희와 마주 앉아 식사하는 장면이었다. 종일 폐차장을 돌며 단서를 찾았지만, 허탕을 친 두원은 막막함과 동시에 서글픈 마음을 느낀다. 어머니 문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지만, 치매 노인인 문희는 딴소리만 늘어놓는다. 문희가 준 돈저냐를 물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두원의 얼굴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그 얼굴이 사무쳤다. 

오는 길에 짜증을 늘어놓았던 게 멋쩍을 정도로, '오! 문희'가 이끄는 대로 끌려갔다. 코미디를 보여주면 웃음을 터트리고, 범죄 스릴러를 보여주면 가슴 졸였다. 가족의 화해 대목에서는 눈물도 닦았다. 정 감독이 흘려놓은 정보들이 빠짐없이 회수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즐거웠다. 

이토록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연기 구멍 하나 없는 배우 라인업 덕이다. 문희의 조카 송원장 역의 박지영은 개봉 후 관객들의 입에 오르내릴 거다. 도회적인 역도, 철딱서니 없는 역도 언제나 완벽하지만 송원장 역은 오래 기억될 정도로 사랑스럽고 매력적이다. 보미 역의 이진주는 애틋함을 끌어내도록 차진 연기를 보여주고, 강아지 앵자마저 연기한다. 이들의 '합'이 '오! 문희'를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머쓱했던 적도 있다. 영화 중간, 폐차장에서 멧돼지를 만나는 신이다. 이미 충분한데도 거하게 한 번 보여주려는 의지가 느껴져서 조금 당혹스러웠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극장가가 위축된 지금, 개봉하는 게 아깝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2일 개봉. 러닝타임은 109분이고 관람 등급은 12세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