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폭서 꿈틀거리는 ‘동서고금’...최민화 ‘Once Upon a Time’展

2020-08-28 17:07
‘삼국유사’ 중심으로 20여년 준비한 연작 첫 전시
“한국서 보기 힘든 전통의 일상화는 예술가들 몫“

최민화 작가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학창 시절 수업시간에 배웠지만 잊고 지냈던 역사서 ‘삼국유사’에 나오는 환웅과 주몽 등이 화폭에서 꿈틀거렸다. 최민화(66) 작가가 수십 년간 연구하고 작업한 독창적인 작품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한국의 고대 역사·전통과 현대 미술의 만남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느낌을 선사했다.

최민화 개인전 ‘Once Upon a Time’ 오는 9월 2일부터 10월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열린다. 갤러리현대가 지난 7월 막을 내린 50주년 기념 전시회 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라 더욱 주목 받고 있다.

최민화 작가가 1990년대 말 처음 구상을 시작해 20여 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동명의 연작 'Once Upon a Time'만을 모은 첫 번째 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60여 점의 회화와 40여 점의 드로잉 및 초벌그림(에스키스)을 함께 선보인다.

최 작가는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遺事)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Once Upon a Time’ 시리즈를 만들었다.

수십 년간 준비한 연작을 위해 고대 역사서를 꺼내든 이유는 분명했다. 최 작가는 28일 “해외 여행을 통해 어느 나라나 전통을 현재 일상 속에서 활용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예를들면 중국의 신단이나 납골함 등이 있다”며 “유독 한국에서는 일상에서 전통을 찾을 수 없다. 전통의 활용이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기이한 현상이다. 우려스럽다”고 진단했다.

이어 최 작가는 “전통은 ‘대중적 검열’을 거쳐 사라지지 않고 유의미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며 “전통의 일상화는 예술가들의 몫이다. 전통을 현실 속에서 향유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최 작가는 수십 년을 준비했다. 1년에 1,2회 정도 배낭여행을 떠났다. 고대문명 발생지와 그리스·터키·이집트·태국·동남아·일본 등을 방문해 자료를 모았다. 인도 힌두사원에서도 영감을 얻었다.

고대신을 현대화하는 것은 고민스러운 지점이었다. 그는 동서양의 신화적·종교적 인물 형체와 상징성을 다년간 연구했다. 이를 통해 현재 사람들과 신과의 중간 모습을 상상했다. ‘르네상스’ 시대 작품들도 도움이 됐다.

‘동서고금을 막론한다’는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전시는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최 작가는 고구려 고분벽화·고려 불화· 조선 민화와 풍속화·도속화와 탱화 등의 한국미술 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인공을 사실적으로 구현한 르네상스 회화, 힌두 및 무슬림의 종교 미술을 모두 아우른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연상시키는 ‘천제환웅-신시에 오다’와 힌두 계열의 사원에 칠해진 색감으로 채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속 인왕산 등이 흥미롭다.
 

'호녀' [사진=갤러리현대 제공]


단군 신화에 나오는 웅녀 대신 호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녀’에서는 작가의 기발함이 느껴진다. 최 작가는 “저항을 한 호녀가 현대인에게는 더 친근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해모수 전투’에는 매와 용 등 다양한 동물로 변신하는 신들의 도술이 펼쳐진다.

그는 신의 세계를 예술가 특유의 상상력과 인간들의 삶으로 채웠다. 신들의 시장에는 아리비아 상인들 유목민들, 농경인 등이 보인다. 그는 “역사서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성·궁·궐·금은 보화 등이다”며 “이들에 대해서도 그릴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도 계속 진행 중인 연작의 향후 과제다”고 설명했다.

최 작가는 색채를 통해 작품을 오롯이 전달한다. 이번에는 한국의 오방색과 서양의 색체 개념과 달리 원심력을 갖고 퍼져나가는 힌두 문화의 문화적 색감을 혼성했다. 투명하면서도 선명한 파스텔톤 색감은 압권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수십년간 경험하고 고민해 완성한 '최민화의 색채'다. 

지하 복도 전시장에는 물에 빠져 죽은 남편과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공무도하가’의 주인공인 ‘백수광부’와 ‘백수광부의’ 처를 그린 그림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신과 함께 하는 민중들에 대한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천제환웅-신시에 오다’ [사진=갤러리현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