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팬데노믹스, '기업 대반란' 시대가 오는데...

2020-08-27 17:38

 

[사진=AP·연합뉴스]

 

[곽재원의 Now&Future]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도항(渡航) 제한이 계속되면서 세계 비행기의 3분의1인 8600기가 휴가 시즌인 8월 들어서도 지상에 머물고 있다. 수요 확대를 전제로 투자해온 리스산업과 금융상품도 리스크를 맞고 있다. 항공기 제작 취소도 잇따르고 있어 관련 산업에 미친 위기는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고 있는 영향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세계 경제는 코로나19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확대되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이른바 팬데노믹스(Pandenomics)의 시대에 완연히 접어들었다.

대유행의 완전한 경제적 영향은 아직 감촉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코로나19와 세계화가 전혀 궁합이 맞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논쟁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모든 경제활동이 불황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세계적인 규모의 사업체들이 특히 심각한 위축 효과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해 올해 세계 무역의 12% 위축을 전망했다. 이는 세계 경제 전반에 대해 앞서 전망한 마이너스 4.9% 성장보다 두 배 이상에 이르는 심각한 수치다. 코로나19에 의한 경제활동의 정체로 에너지 수요도 감소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금년 수요가 작년보다 약 8% 감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1945년의 13% 감소에 이어 둘째로 큰 감소폭이다.

실제로 코로나19로 기업들은 미증유의 수입(收入) 감소를 겪고 있다. 일본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세계 1만개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2020년 2분기(4~6월)에 30% 이상의 수입 감소를 기록한 기업은 24%로 리먼 쇼크 때인 2009년 2분기의 21%를 웃돌았다. 각국에서 도시 봉쇄가 해제된 후에도 외식과 항공·운수 등 사람의 이동에 영향을 받은 업종은 회복이 둔하다. 차입금으로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각할 정도의 기업실적 악화가 드러난다. 미국 증권사들이 세계 주요기업을 대상으로 2020년 2분기 결산을 집계한 결과 3개사 가운데 1개사가 최종 손익이 적자였다. 도시 봉쇄의 직격탄을 맞은 자동차, 소매와 서비스가 업종 전체에서 적자를 기록했다. 자기 자본이 부족한 기업도 있다. 지금까지 최악의 기록은 리먼 쇼크 때인 2009년 4분기로, 2개사 중 1개사가 적자를 본 것이다.

이런 가운데서도 코로나에 의한 사회변화로 수요가 늘어난 30%의 기업들은 수익이 증가하고 있어 성장기업의 주역이 빠른 속도로 교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는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증권거래소가 발표한 국내 상장기업의 2020년 2분기 연결 결산을 보면 영업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17% 줄었다. 반도체 시황 회복으로 1분기의 31% 이익감소와 비교하면 개선된 상황이지만, 고용을 떠받치는 자동차와 조선, 철강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수출주도형 한국경제의 회복 시나리오는 잘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이러한 세계 경제의 위축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큰 변화’는 기업 간의 뚜렷한 역전 현상이다. 신·구기업 간, 전통산업·신산업 간의 우승열패(優勝劣敗) 현상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4일 미국 S&P 다우존스 인디시즈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의 30개 편입 종목에서 석유 메이저인 미국의 엑손모빌을 포함한 3개 종목을 제외시켰다. 엑손 모빌 대신에 고객관리 업체인 미국의 세일스포스 닷컴을 새로 편입시켰다. 미국 최대의 시가총액을 자랑했던 엑손 모빌의 탈락은 ‘데이터가 21세기 석유’라고 일컫는 이 시대를 상징하는 대사건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제약회사인 화이자와 방위산업체 레이시온 테크놀로지도 탈락했다. 이를 대신해 제약회사 암젠과 산업기계업체인 하니웰 인터내셔널이 들어갔다.

이 같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 편입 종목의 변동은 애플의 주식분할로 1주당 가격이 내려가 다우평균의 구성비가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지수에서 차지하는 IT(정보기술) 업종의 비율이 낮아져 이를 보정한 것이다. S&P 다우존스 인디시즈는 “새로운 형태의 기업을 새로 편입해 미국경제를 보다 잘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주가지수 종목에서 애플이 미국의 골리앗 기업들을 내쫓은 형국이다. 이에 앞서 2018년 6월에는 다우존스지수 출범 때부터 편입되었던 터줏대감 GE(제너럴 일렉트릭)가 탈락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애플은 지난 19일 시가총액이 미국기업으로는 처음으로 2조 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사우디아람코가 2019년 12월 상장 직후에 기록한 이래 둘째다. 애플의 시기총액은 7월 말 사우디아람코를 제치고 세계 상장기업 1위에 오른 것이다. 애플의 약진을 뒤따르고 있는 아마존을 포함한 IT 거대 기업들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도 주목할 대목이다. 연초부터 8월 중순까지 주요 기업들에 대한 자금 집중 현상을 보면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IT 기업에 자금이 몰린 반면 코카콜라, 포드, JP모건, 엑손모빌, 보잉 등에선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성장주에 자금이 집중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세계 최대 전기자동차(EV) 메이커 미국 테슬라가 지난 7월 1일 시가총액에서 일본 도요타자동차를 제치고 자동차업종에서 1위를 차지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테슬라는 올 1월 시가총액 1000억 달러를 돌파하며 독일의 폭스바겐을 넘어섰다. 2019년 세계 전기자동차 판매대수 37만대를 기록한 테슬라는 지난 1년 사이에 주가를 6배나 키우며 판매대수가 30배를 넘는 도요타와 폭스바겐과 같이 세계의 양산차 메이커 반열에 올랐다. 시장예상평균을 기초로 한 예상 PER(주가수익비율)의 경우 테슬라는 170배인데 도요타는 17배, 폭스바겐은 15배에 불과하다. 테슬라는 이익의 20% 이상을 소프트웨어 쪽에서 벌고 있다. 게임용 반도체 메이커인 미 국의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 계산용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데이터 센터 사업으로 매출을 늘리며 시가총액에서 미국 반도체업계에서 수위에 올랐다.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반도체 업계의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인텔을 지난 7월 추월했다.

이 같은 역전극들이 펼쳐지는 가운데서도 특히 큰 사건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은 IT와 금융을 융합한 핀테크 기업들이 거대 은행을 역전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세계 유력 금융기업의 2020년 2분기 결산에서는 핀테크 기업들의 이익이 미국·유럽·일본의 대형 은행을 웃도는 사례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미국 페이팔의 이익은 시티그룹을 상회했으며, 중국 알리바바 계열의 앤트그룹은 스위스의 크레디 스위스를 약간 앞섰다. 주식 시가총액에서뿐만 아니라 영업 실적에서도 역전이 시작됐다. 코로나19에 의한 디지털화의 가속화는 이러한 흐름을 강하게 밀고 있다. 피지컬(실물)로부터 디지털로의 전환이 일과성이 아닌 강력한 추동력을 갖고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다.

팬데노믹스의 불황기에 일어나고 있는 기업·산업의 역전극은 기업들이 탈(脫)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세계화 전략을 짜야 하는 극명한 패러독스를 연출한다. 2019년 세계시장에서의 ‘주요 상품·서비스시장 점유율’을 보면 한국은 스마트폰, D램, 대형 액정패널, 유기EL 패널, 낸드형 플래시 메모리, 박형 TV, 조선 등 7개 품목에서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수치는 거의 10년째 변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 게임업체들이 최근 크게 약진하고 있는 것 외에는 괄목할 만한 ‘파괴적 이노베이션’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확대는 이러한 문제를 현재화(顯在化)시킨다. 포스트 코로나의 사회·산업활동은 단순히 종래의 연장으로서의 정보화가 아니다. 공간적인 제약을 대폭 완화시키는 IT를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해 종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모색해야 한다. IT를 활용하는 데는 예컨대 5G(차세대 통신망) 같은 정보인프라 기반의 성능과 기능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첨단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장기적인 시야에서 지속성 있는 연구개발의 활성화가 이뤄져야 한다. 지금과 같은 단기이익의 최대화를 핵심성과지표(KPI)로 삼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의 설계부터 실용화, 운용관리까지 연결시키도록 다양한 KPI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사물인터넷(IoT), 로봇, AI, 빅데이터 등의 최신 기술을 모든 산업과 사회에 도입해 경제발전과 사회적 과제 해결을 양립시켜 가는 새로운 사회 ‘소사이어티 5.0’ 실현을 목표로 하는 일본의 국가디자인 전략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경제에 고통을 주지만 지구온난화의 원인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소시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세계에 통용되는 온난화대책을 통해 경제부흥을 일으키는 ‘그린 리커버리’의 시각도 필요하다. 팬데노믹스 시대의 새로운 접근 방식을 기업에만 주문할 일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이 2인3각으로 뛰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