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안 가는 방법, 100년 전 기억에 되묻다

2020-08-26 14:11

코로나19 이전에 '스페인 독감'이 있었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이른바 '대유행'이라 불릴만한 감염병의 창궐 사례는 꽤 여러 차례 있었다. 그중에서도 1900년대 초 스페인에서 시작돼 유럽 전역을 공포로 뒤덮었던 '스페인 독감'의 사례는 코로나19의 대유행 속에서 현대인들이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해 다시금 상기시켜 주고 있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1918년 10월 미국의 모습. [사진=미국 CDC 홈페이지]


스페인 독감은 1918~19년에 유행하였으며, 14세기의 흑사병과 함께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범유행전염병이다. 이 병의 증상으로는 일반적인 독감이나 폐렴 증상과 동일하나 탈산소로 인해 피부가 푸르게 괴사하는 증세를 동반한다.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날 즈음인 1918년~1919년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했으나, 당시 전쟁에 말려든 각국은 언론에 대한 보도 검열을 실시함에 따라 이에 대해 전혀 다루지 않고 있었다. 그 와중에 오직 스페인 언론만 이를 깊이 있게 보도하였고, 다른 나라들이 스페인 언론을 통해 질병에 대한 정보를 얻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스페인 독감'이라고 명명된 것이다.

현재 스페인에서는 '1918 독감 범유행', 또는 '시카고 독감' 등으로 부르고 있다. 
 
대대적인 방역+마스크 착용 생활화..."지금과 다르지 않네"
 

미국 적십자의 마스크 착용 권장 캠페인 [출처=Chronicle Achive]


스페인 독감과 관련된 각종 기록들을 찾아보면 마스크를 쓴 대중들의 사진들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무려 100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보다 공중 보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더 뚜렷해 보인다. 어쩌면 오늘날만큼의 의학적 진보가 이뤄지기 전이니 마스크를 생명과 직결시키는 생각에도 '불순물'이 섞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마스크를 쓰던지, 아니면 감옥에나 가라!"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당시 캘리포니아 로커스트 애비뉴에서 시민 단체가 마스크 착용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가디언]

당시 마스크 착용을 권장한 것은 이웃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도 1918년 가을부터 1921년 봄 사이에 3차례에 걸쳐 스페인 독감이 유행해 약 39만 명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NHK에 따르면 일본 방위연구소는 옛 일본군이 남긴 스페인 독감 관련 자료 중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있는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한 군함의 선내 일지에 해당 기록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한다. 이 군함의 선내 일지에는 싱가포르를 출항한 직후 선내에 퍼진 독감으로 승선원의 10%인 48명이 사망한 사실과 다음 기항지에서 배 안의 소독을 한 사실 등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옛 일본군 전함 '야하기(矢矧)의 선내 일지. 당시 선내에 퍼진 독감으로 승선원 다수가 사망함에 따라 선내를 소독하는 등의 대대적인 방역 작업을 한 기록이 발견됐다. [사진=연합뉴스]

또 당시 일본 내무성 위생국이 감염 예방을 당부하는 별도의 문건도 발견됐다. 영화관 등 다중 밀집 장소나 전차 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침할 때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릴 것을 권장하는 내용이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다는 의미에선 100년 전의 상식이나 지금의 상식이 그렇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건만...
코로나19에 대한 대처가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국가에서 있어선 안될 일이 벌어졌다. '광복'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메시지를 외치기 위해 서울 한복판에서 대규모의 집회가 열렸다. 집회를 이끄는 연사들은 마이크를 돌려쓰며 "밖에선 감염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청중들에게 말한다.

그들은 지금 병원 신세를 지며 이제껏 부정하고 폄하하던 국가 의료 시스템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
 

야외에선 절대 감염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던 그였다. [사진=연합뉴스]

기술의 발전으로 확진자 발생 위치도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재난 알림 문자를 받아보는 현대인들의 얼굴은 이미 공포로부터 어느 정도 익숙해진 표정을 하고 있다. 마스크는 불편하고 갑갑하다는 이유로 걸핏하면 턱에 걸치기 바쁘다.

신앙심을 인질로 삼아 성도들을 어떻게든 예배당으로 끌어내려는 일부 목사들은 저 혼자만 다른 세상에 살고있는 듯 하며,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무기한 휴업, 또는 폐업을 하며 생활고를 호소하는 가운데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의 점심시간 풍경은 여전히 주문 대기 중인 손님들로 가득하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도 믿지만 설교는 반드시 직접 봐야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100년 전의 기억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서구권도 마찬가지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과거부터 마스크 착용에 대한 법적 강제력이 남달랐던 미국이지만 정작 오늘날엔 코로나19 확진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으며, 보건 당국의 권고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통령부터가 마스크 쓰기를 꺼려 한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 속에서 지난 5월 미국 애리조나의 마스크 공장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이날 그는 마스크 대신 고글을 썼다(...) [사진=연합뉴스/AP]


한편, 지난 2주간 국내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2000명을 돌파하면서 23일 0시를 기준으로 전국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상향 조정되었지만, 현재 유행 상황에 대응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차장 겸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 25일 "이번 주가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 격상을 결정할 중대 고비로, 3단계 격상 시 일상은 물론 일자리가 무너진다"며 거듭 사람 간 접촉 자제를 촉구했다.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1차장 겸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정부와 보건당국의 당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감염의 연결고리는 좀처럼 끊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손을 잘 씻고, 실외에선 마스크 착용을 생활화하고, 각종 모임 참석 등을 자제하는 것이 현대인에게는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부터 100년이 지났지만 '감염병의 대유행'이라는 상황만 같고 그 아래 펼쳐지는 모습들은 그닥 나을 것도 없어 보인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이 또 지나 2120년이 된다면, 적어도 그때의 후손들이 지금의 이 모습들을 통해 '퇴보의 역사'를 배우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스페인 독감은 역사로서의 과거와 오늘의 자세, 미래의 방향성을 동시에 시사하고 있다.